<소설> 맨홀 (284)

골목길을 지나가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기다림은 길었다.

승민은 자신의 소설을 떠올렸다. 침투. 오늘 일어나고 있는 상황 자체가 소설의 한 부분이 되는 것이다.

어떻게 진행되든지 상관없다. 소설 자체가 세상에 대한 관조이듯이, 황금당에 어떻게 침투하든지 상관은 없다. 다만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상황만 설정되면 된다.

그러나 가능하다면 좀더 깊숙이 소설 속으로 빠져드는 것도 괜찮다. 그것은 체험이다. 체험한 것과 하지 않은 것은 소설 표현에서 많은 차이가 난다. 현실적으로 감쪽 같은 침투가 가능하다면 좀더 깊숙이 빠져들 수 있는 것이다.

순간, 승민은 누이의 집에 가 계신 부모를 생각했다. 강원도 산골짝에서 송이를 따 자신의 뒷바라지를 해준 부모.

깨진 창. 황금당 그 깨진 창문을 바라보며 승민은 순간적으로 많은 상념을 떠올렸다.

혜경. 결혼. 돈.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대학을 나왔지만 돈 안되는 소설을 쓴다고 긴 시간 다 보낸 승민이었다.

아니야. 더 이상의 비약은 필요없어. 소설은 소설일 뿐이야. 몇몇의 사람들이 지나쳤지만 깨진 유리창을 바라다보는 사람들은 없었다. 승민은 모자를 다시 한 번 눌러쓰고 천천히 골목을 빠져 나왔다. 황금당 앞쪽.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여전히 무인경비시스템을 관리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차량도 보이지 않았다. 오프라인 상태가 되어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황금당은 정말 그대로 방치되고 있는 것인가.

도로 한복판 맨홀에서는 여전히 양수기로 물을 퍼 올리고 있었다. 아직 맨홀 속으로 복구요원들이 들어가지도 못했을 것이고, 무인경비시스템의 회선을 복구하는 데에는 한동안의 시간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승민은 황금당 앞을 딴전 피듯 지나쳤다. 여전히 셔터는 굳게 내려져 있고, 그 아래 어른 주먹보다도 큰 자물쇠가 잠겨져 있을 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대로 방치되고 있는 것인가. 승민은 다시 한 번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정말 아무도 없는 것인가. 그냥 방치되어 있는 것인가.

건물 뒤편. 승민은 지나치는 사람을 자연스럽게 기다려 함께 황금당 뒤편의 골목으로 들어섰다. 천천히. 딴전을 피듯 자신이 깨트린 창문 앞을 지나쳤다. 사람의 키보다 높은 곳에 자리하여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그냥 지나치게 되는 높이의 창문이었다. 승민은 천천히 걸으면서 깨진 창문의 안쪽을 곁눈으로 살폈다.

여전히 붉은 빛 감시램프가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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