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병전이 시작됐다. 이달부터는 상대의 숨소리, 체취까지 느낄 정도로 바짝 다가선 채 몸과 몸이 부딪치는 보병들의 「인파이팅」이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다. 사상 최강의 정예군으로 구성된 휴대폰 군단과 PCS 군단이 단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밀고 밀리는 접전을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양진영은 선전포고만 한 채 전선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사령부간 원격전투만 계속해 왔다. 서로의 장단점 등을 샅샅이 분석, 일종의 「시뮬레이션 워 게임」을 벌였던 것이다.
전선이 형성된 것은 지난 10월 1일. 016 한통프리텔, 018 한솔PCS, 019 LG텔레콤 등 PCS 3사가 일제히 상용 서비스에 돌입했다. PCS군이 휴대한 개인화기는 「부가서비스가 가능한 첨단기술」과 「상대적으로 값싼 이용요금」이다. 새로운 것, 유행만을 좇는 소비 패턴을 겨냥한 「튀는 이미지」는 등 뒤에 감추고 있다.
전국 통화권과 사용 친화력을 앞세워 견고한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던 휴대폰 진영도 PCS 군단의 진격에 맞서 전투력을 더욱 강화했다. 다양한 기본요금 선택제와 10초당 사용요금 인하이다. 001 SK텔레콤은 10초에 26원, 017 신세기통신은 24원이다.
어떤 도전자라도 도저히 점령할 수 없을 것 같은 고지에 올라 느긋함을 즐길 수도 있건만 이처럼 바짝 긴장하는 것을 보면 역시 대항군의 전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어찌되었건 피할 수 없는 승부가 시작된 지 벌써 한달이 흘렀다. 아직은 분명한 접전지역이 많지 않은 탓인지 뚜렷한 우열이 가려지지 않고 있다. 전선이 무차별로 확대되는 내년 중반께에는 분명히 명암이 엇갈릴 것이다. 지금은 향후 전쟁의 향방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징후들만이 곳곳에서 포착될 뿐이다.
초반 전투는 역시 숙적간의 대결로 나타나고 있다. 먼저 기세를 올린 것은 PCS 군단. 예약 가입자가 각 사별로 2백만명이 넘는다고 법석을 떨었다. 마치 거대군단 휴대폰 사업자들을 일거에 쓰러트릴 것처럼 기세등등했다.
그러나 곧바로 병참 라인에서 문제가 터졌다. 단말기라는 총알이 절대 부족한 비상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보병간 전투에서 총알은 목숨이다. 그것에 문제가 발생했다면 전투는 그만둬야 한다.
원인은 초반 기세를 앞세운 과잉의욕이다. 당초 PCS의 진격 개시일은 내년 1월이었다. 그러던 것이 갑자기 두달이 빨라졌다. 병참 수송로는 전국 일원이다. 각 사별로 1천개가 넘는 기지국을 확보해야 수송로가 만들어진다. 이 문제는 해결했다. 아마도 경부 고속도로 건설에 비교될 만큼 세계 최단시간 전국망 구축기록이 될 것이다.
단말기에서 예기치 않은 사태가 일어난 것은 핵심부품을 거의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데 있다. 내년 1월을 기준으로 물량확보 계획을 세웠던 제조업체들은 외국 부품사에 매달렸지만 쉽지 않았다. 지난달 말까지 공급된 단말기는 기껏 30만대에도 못미쳤다.
당연히 수십만 예약 가입자는 단말기를 먼저 받겠다고 아우성을 쳤다. 총알을 제대로 보충하지 못하는 PCS군은 주춤거렸다. 상대방 진영을 밀고 들어가기보다는 현전선에서 후퇴하지 않는 수세적 전략으로 바꾸었다.
휴대폰 군단은 반사이익을 챙겼다. 수성이 목표이지만 병참지원이 부족한 PCS군의 공세를 막는 것은 백전노장으로선 「식은 죽 먹기」이다. PCS군의 전열이 흐트러지면서 답보상태를 면치 못했던 가입자수가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엄청난 화력의 「전국 통화 소통」과 「사용 친밀도」라는 미사일은 아직 무기고에서 꺼내지도 않았다.
이 싸움의 최종승자가 누가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대한민국 최정예 부대들인 만큼 서로 흘리는 피의 양을 줄이고 공존의 터를 닦을 수 있으리라는 한 가닥 기대만이 남아 있다.
양측의 전장이 시장의 전부는 아니다. 멀지 않은 장래에 이동통신 가입자 2천만 시대가 도래한다. 누가 더 큰 땅을 확보하느냐만 남았지 싸움터는 도처에 널려 있다. 더욱이 시장개방이 이루어지면 항공모함을 앞세운 외국의 대군이 쏟아져 들어올 것이다. 사실 두려운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이다. 지금은 전쟁중인 휴대폰과 PCS 군단이 그때에는 연합군으로 전략적 제휴를 해야 한다. 현재의 전투력으로 외국군에 맞서기는 벅차다.
업체당 한 해에 5천억∼1조원에 이르는 전투력 강화비용을 쏟아붓고 있는 PCS와 그에 못지 않은 재투자에 나서야 할 휴대폰 군단은 그래서 현재의 백병전으로는 남 좋은 일만 시켜줄 수도 있다. 돈은 국내기업이 대고 뒷돈은 외국 부품사와 퀄컴이 챙기는 사례는 이미 확인되고 검증된 일이다.
비록 당장의 고지점령을 위한 백병전은 불가피하지만 더 큰 전쟁이 남아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이 알아야 한다는 것이 한국 최정예 부대간의 전투를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각이다.
<이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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