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272)

거울.

혜경은 욕실 거울 앞에서 한동안 그렇게 서 있었다.

욕실에 들어설 때마다 혜경은 늘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몸을 감상했었다. 브래지어를 끄르면서도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적당한 곳에 당당하게 솟아 있는 가슴. 남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풍만하고 탄력있는 가슴은 혜경에게 세상 살아가는 자신감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또다른 갈등 요소였다. 봉긋한 봉우리 곳곳에 묻어 있는 환철의 흔적. 그것은 승민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오늘 아침, 그 흔적을 지우기 위해 씻고, 또 씻었지만 결국 다시 환철의 손아귀에 자신의 젖가슴을 맡겨야 하는 것이다.

혜경은 자신의 몸에 걸친 마지막 헝겊도 벗었다.

굴곡진 몸. 혜경은 거울에 비친 나신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어느 곳 하나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풍만했고, 팽팽했으며, 우거져 있었다.

혜경은 샤워기의 버튼을 눌렀다. 찬물이었다.

식힐 수 있다면 식히고 싶다.

끌 수 있다면 끄고 싶다.

늘 그랬다. 하지만 혜경은 한번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했다. 늘 그렇게 갈등했지만 단 한 번도 환철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 고통과 희열, 혜경에게 환철은 그랬다.

아, 찬물에 머리를 적시며 짧은 신음소리를 냈다. 혜경은 늘 찬물로 샤워를 했다. 식힐 수 있으면 식힐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오늘도 마찬가지. 두 차례, 세 차례 쏟아지는 물에 머리를 디밀어 소름끼치는 차가움을 느꼈지만 혜경의 마음은 정리되지 않았다.

벗어나고 싶다. 이제는 벗어나고 싶다.

수십 번도 더 다짐했던 순간들이 다시 떠올랐다. 하지만 이내 더 강력하고 뜨거운 것이 혜경의 온몸을 뜨겁게 했다. 어쩔 수 없는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혜경은 고개를 뒤로 젖히고 얼굴로 쏟아지는 물을 맞았다. 천천히, 손으로 얼굴을 쓸어올렸다. 눈을 감고, 천천히 턱부터 얼굴을 쓸어올렸다. 두 번, 세 번 흩어진 머리칼까지 뒤로 쓸어올리며 혜경은 눈을 감았다.

어쩌면 좋은가.

어쩌란 말인가.

차디찬 물이 고개를 뒤로 젖힌 혜경의 얼굴로 쏟아져 내려 흩어졌다. 혜경은 눈을 감았다.

승민. 승민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 뒤로 그의 보모가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가까운 곳에 환철이 있었다.

혜경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쏟아지는 물이 그 눈물을 씻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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