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관람석] 풍월

중국 제5세대 감독 첸 카이거라고 하면 관객은 우선 영화속에 내재된 중국의 역사와 민중, 그리고 그의 짜놓은 역사의식을 들여다보고 중국 전통문화에 대한 첸 카이거의 애정을 느끼고자 한다. 그러나 이런 기대로 「풍월」에 접근한다면 인간의 운명과 감정 속에서 스펙터클한 역사와 격량을 잡아내던 그의 색깔은 보이지 않는다.

「풍월」은 분명 1911년 신해혁명으로 달성된 청조 몰락과 중화민국 정부의 수립, 1차세계대전과 러시아혁명의 주변정세에 놓여 있다. 모택동에 의한 중국혁명의 과정에서 수천년동안 존속돼왔던 유교적 봉건주의 사회의 전복과 사회주의 사회로의 의식적, 구조적 변화를 겪어야 했던 격변기도 껴안고 있다. 그러나 중국을 비운의 소용돌이로 휘몰아치게 했던 역사적 배경은 「충량」(장국영 분)이라는 한 남성 마피아 소속의 제비족으로 활동하는 들러리로 겉돈다.

충량과 아편에 취한 그의 누이, 그리고 씨족공동체인 방씨 일가의 대를 이은 「류이」(공리 분)와 그녀의 사촌동생 단오와의 성적 욕망과 파멸은 은밀하면서도 강렬하고 파괴적이다. 근친상간과 범죄의 정신적 상처를 안고 유부녀를 농락하고 돈을 갈취하는 충량의 욕망은 허무하고, 그를 통해 성에 눈을 뜨며 정체성을 찾아가는 류이의 사랑은 위태하다.

카메라는 내내 충량의 애처로운 사기행각과 감정의 빗나간 폭발, 그의 뒤를 는 류이의 눈길만을 뒤에 서서 그들과 같은 시선으로 따라간다. 그 욕망의 몸짓과 시선이 끝나는 곳에는 파멸이 기다린다. 영화는 두 사람의 사랑도 허락하지 않고, 사랑을 거절한 류이를 충량은 식물인간으로 만들어버리고, 충량은 충성을 다해왔던 조직에 의해 죽는다.

홍등가의 현란한 불빛으로 상장되는 상하이는 타락한 서구 자본주의의 상징이며, 아편으로 몰락해가는 방씨 일가는 격변기에 정체성을 상실한 거대한 중국대륙일 수도 있다. 또 몸을 팔아 유부녀를 등쳐먹으며 조직에 기생하여 살아가는 충량은 역사의 희생제물이었던 홍콩의 메타포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거대한 역사의 의미는 개인적 「성과 욕망」이라는 상업성에 가려 뒤편 저만큼 물러나 있다. 크리스토퍼 도일의 현란하고 섬세하며 격정적인 영상과 조명, 고독감을 증폭시키는 포커스 아웃, 사물(자전거, 시냇물, 비)들의 소리가 주는 감정의 능란한 조종속에 첸 카이거는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심지어 그가 붉은 색채로 표현하는 중국 민중의 삶과 시대정서도 서구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상업적인 오리엔털리즘에 불과하다.

공리도 이제는 너무나 상품화돼버렸다. 16세의 순수함에서 성과 욕망에 점차 눈을 떠가는 여인으로의 매력을 느끼기엔 이미 우리는 비슷한 경험을 많이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버리면 「풍월」은 그저 깔끔한 한편의 동양적 멜로드라마다.

<김혜원,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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