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 영화마니아 입맛 다양해졌다

관객들의 영화 취향이 다양해지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 그것도 독립영화가 아닌 이른바 「블록버스터」라 불리는 흥행작만 편식해 오던 우리 관객들이 차츰 유럽과 아시아권 영화에 관심을 쏟게 된 것.

올해도 여름 극장가를 주도한 것은 SF를 내세운 스필버그의 공룡이야기 「주라기공원」, 사상 최고의 수입가로 물의를 빚었던 「제5원소」, 외계인 사냥군 「맨 인 블랙」 등 헐리우드 영화들이었다. 그러나 몇 년전만 해도 설 자리조차 없던 유럽 예술영화와 이란, 인도 영화들 역시 서울시내 개봉관에서 관객들과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이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읽게 한다.

유럽 예술영화의 대중화가 시작된 것은 지난 92년 프랑스의 젊은 감독 레오 까락스의 「퐁 네프의 연인들」이 소개되고 다음해 크쥐쉬토프 키에슬롭스키 감독의 「불루」 「화이트」 「레드」 3색 시리즈가 잇달아 개봉되면서부터. 이후 한동안 영화마니아를 중심으로 레오 까락스는 영화천재,키에슬롭스키는 동구권의 거장, 그리고 쥴리엣 비노쉬는 연기파배우의 대명사로 불리면서 유럽영화 열풍이 거세게 불었다.

비슷한 시기에 중국계 영화 붐도 일었다. 93년 말 칸느 영화제 수상작인 첸 카이거 감독의 「패왕별희」가 전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키며 한국에서도 성공을 거뒀고, 장이모는 「붉은 수수밭」 「귀주이야기」 「홍등」으로 연타석 흥행을 기록했다.

이어서 등장한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은 가히 신드롬이라고 불릴 만 했다. 왕가위는 CF처럼 감각적이고 현란한 스텝프린팅 기법으로 젊은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칸 영화제 수상이후 공윤의 수입불가 판정을 받은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개봉도 안된 상태에서 왕가위 영화의 또다른 신화를 만들어 내고 있을 정도.

「조이럭클럽」으로 여성관객을 불러모은 후 신작 「차이니즈 박스」를 부산영화제 개막작품으로 선보인 홍콩출신 웨인 왕 감독과 「그런 인생」으로 제42회 아시아태평양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차지한 대만 창치융 감독,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인 「애정만세」로 마니아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차이밍량 등 중국계 감독들은 앞으로도 우리관객의 지지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몬트리올부터 칸느까지 세계영화제 대상을 휩쓸다시피 한 이란영화도 국내시장에서 각광받고 있다. 지난해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는 이란영화의 존재를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소박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으로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는그의 작품은 전혀 새로운 영화문법에 대한 관객들의 호기심과 감탄을 자아냈다. 그후 신혼부부의 러브스토리를 그린 「올리브 나무 사이로」가 올해 아트전용관에서 장기상영됐으며 칸영화제 수상작 「체리 맛」도 곧 선보일 예정이다.

이같은 이란영화 열풍은 곧 개봉될 로카르노영화제 대상 수상작 자파 파나히의 「거울」과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가베」가 부산 국제영화제에 미리 선보여 매진사태를 빚고 있는 등 당분간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연간 8백편의 작품을 양산해내며 『흔한 것은 소, 종교, 그리고 영화』라는 말이 있을 정도인 인도영화도 최근 우리관객과 가까워지고 있다. 동성애를 통해 부조리한 인도 사회와 억압된 저항하는 여성의 모습을 그린 「화이어」는 올해 젊은 여성 관객 사이에 화제가 됐고 칸 영화제 신인감독상 출신 여성 감독 미라 네어의 「카마수트라」도 개봉되어 원색의 화려한 화면과 16세기 인도왕가의 눈부신 의상으로 인도영화붐을 예고했다.

이처럼 관객의 저변이 넓어진 배경으로는 우선 코아아트홀, 동숭아트센터 등 예술영화 전용관이 자리를 잡았고, 부산국제영화제, 부천국제영화제 등 페스티벌 형식의 다양한 영화제가 마니아층을 넓혔으며, 할리우드 상업영화에 식상한 관객층의 입맛이 변화한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이제 철학적 신비와 정신세계의 깊이를 보여주는 아시아영화가 세계영화의 변방에서 중심으로떠오르면서 우리영화도 세계인을 관객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적극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게 영화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이선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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