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가전제품이 본격적으로 수출되기 시작한 80년대 초에 있었던 일이다. 미국의 투자자문회사들은 자국의 전자회사들에 한국이 수출하는 가전제품과 동일한 품목은 앞으로 생산을 중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보고서를 제출, 미국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당시 잘 알려져 있지도 않은 한국산 가전제품을 주목하라는 투자회사들의 보고서에 대해 다소 회의적이었던 미국인들조차 이를 납득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미국 가전업체가 성능은 비슷하지만 가격면에서는 엄청난 경쟁력을 무기로 한 한국산 가전제품과의 시장경쟁에서 살아남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격으로 판가름났던 것이다.
요즘 국내 가전시장을 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80년대 초 당시 미국에서 벌어진 시장상황과 비슷하다. 언제부터인지 국적 불문의 일본 가전제품이 우리나라 내수시장을 뒤흔들어놓고 있다. 품질면에서는 다소 떨어지지만 저가격을 무기로 중국이나 남미에서 생산한 일본 가전제품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은 상황이다. 국산품 애용이란 슬로건으로 소비자에게 호소하던 시대는 지났다. 게다가 이같은 구호는 이제 소비자들에게 먹혀들지도 않는다.
국내 가전업계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이뿐만이 아니다. 내수침체와 수출 채산성 악화 등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있는 형편이다. 그래서인지 최근들어 가전업체마다 살아남기 위한 전략 마련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적자를 최소화하기 위해 필요경비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군살빼기 전략에 나선지 오래다.
여기에다 최근에는 혁신모델 개발이 한창이다. 품질과 성능이 결코 동급 기존 제품보다 떨어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기본전제로 무려 30% 이상의 생산성 향상효과를 꾀한다는 전략이다. 원가절감에 집착한 나머지 본래 의도와는 달리 품질 신뢰성이나 내구성이 희생되지 않을까 염려하는 시각도 있다. 그렇다고 가전업계가 불황타개를 위해 그냥 넋놓고 하늘만 처다볼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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