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258)

승민은 컴퓨터 화면을 Page Up시켜가며 원고의 내용을 다시 살폈다. 순서대로 읽는 것이 아니라 한 페이지씩 거꾸로 읽어가는 것이었다.

용의자의 죽음, 섹스. 온라인망을 통한 거액인출사건, 맨홀화재로 인한 통신망 두절.

Ctrl, Page Down.

Ctrl키와 Page Down키를 동시에 누르자 글의 마지막 부분이 다시 열렸다. 침투. 어떻게 침투시킬 것인가.

TV에서는 아직도 맨홀화재와 관련된 내용을 보도하고 있었다. 시민들의 불편사항에 대한 인터뷰였다.

하지만 승민은 글의 내용으로 빨려들고 있었다. 통신망 장애로 무인경비시스템이 장애를 일으킨 「황금당」에 어떻게 침입하여 수억원대의 귀금속을 빼낼 수 있을 것인가. 얼마만큼 객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이미 은행의 온라인망에 관련된 내용과 자료는 혜경을 통해서 확보할 수가 있었다. 그녀의 단말기 패스워드까지. 그러나 이 무인경비시스템에 관한 사항은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회사를 직접 방문하기도 했었지만 구체적인 자료를 확보할 수가 없었다.

무인경비시스템. 일반 통신망을 이용하여 경비망을 구성하고, 그 통신망을 이용하여 경비담당 회사에서 감시하다 이상 상황이 발생하면 출동하는 무인경비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통신이다.

통신회선에 고장이 발생하게 된다면 경비를 맡은 회사에서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경비원들이 나와서 지켜줄 것인가. 오늘과 같이 대량으로 통신망이 끊겼을 때는? 승민은 컴퓨터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생각에 빠져들었다. 소설은 내용상 균형이 맞아야 한다. 한 부분이 약하면 구체적이며 강하게 표현된 부분도 문제가 된다. 통신망을 이용하여 온라인을 통해 거액의 현금을 인출하는 과정과, 무인경비시스템이 끊긴 「황금당」의 금은보석을 빼내가는 과정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그 구체성과 깊이에 차이가 있으면 안된다. 소설도 전체적으로 균형이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승민은 ↑키를 눌러 글의 내용을 한줄한줄 거꾸로 확인해 나갔다. 글자 하나하나가 승민의 의도에 의해 선택된 것들이었다.

버릇이었다. 이미 수십 번도 더 읽어보았을 글들은 거꾸로 읽어도 그 줄거리를 읽어내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다시 Ctrl키와 Page Down키를 동시에 누르자 글의 마지막 부분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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