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TV 시대는 과연 우리나라의 전자업계에 새로운 기회로 작용할 것인가.
국내외 공장에서 연간 2천7백만대 가량의 컬러TV 생산능력을 확보하고 있는 한국 전자업계는 일본과 함께 세계 최대의 TV공급자다.
이제 막이 열리고 있는 디지털TV 시대에도 과연 한국이 TV시장에서 세계적인 위상을 누릴 수 있을지 디지털TV가 미치는 방대한 산업적 영향을 고려할 때 향후 세계시장 판도는 중요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디지털TV 시대의 진입을 앞두고 세계적인 핫이슈는 미국과 유럽연합측이 제시한 방송방식을 놓고 전세계적으로 양립 구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중에서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은 전송방식을 둘러싼 양측의 주도권 경쟁이다. 즉 미국의 「VSB(Versitile Sideband Modulation)」방식과 유럽측이 제시하고 있는 「COFDM(Coded Orthogonal Frequency Division Multiplexing)」방식이다. 이 두가지 기술은 전반적인 성능은 비슷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나 각각 일장일단이 있어 각 나라마다 방송환경과 산업적인 전략이 달라 선택하는데 많은 진통을 겪고 있다.
미국의 제니스사가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VSB는 기존 미국과 한국 등에서 아날로그 방송방식으로 활용돼 온 NTSC방식과 공존할 수 있고 이미 오랫동안의 실험을 거쳐 신뢰성이 입증된 기술이라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또한 유럽방식에 비해 전송속도가 빠르고 위성, 케이블방송 등 여타 미디어와의 확장성도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 유럽의 COFDM방식은 국토가 협소하고 산악지형이 많은 유럽 국가들의 방송환경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주파수 자원이 넉넉하지 못한 나라에 적절한 방식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 차량이나 휴대형 수신기와 같은 이동체에서 방송수신 능력이 미국방식보다 탁월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 두 가지 전송방식을 둘러싼 논쟁은 그동안 국내에서도 뜨거운 감자로 인식되어 왔으나 최근의 대세는 미국의 VSB방식을 선택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그동안 국내 업체들이 미국의 방송규격을 토대로 디지털TV 개발프로젝트를 진행해 왔고 향후 디지털TV의 수출을 고려할 때 실리가 클 것이라는 주장이 많은 지지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럽측의 COFDM방식을 지지하는 세력도 세계적으로는 무시할 수없은 상황이다. 유럽을 비롯한 중남미, 아프리카 등 아날로그 시대에서 NTSC방식을 채택하지 않은 나라들은 대부분 COFDM방식을 선택할 것으로 예상되며 일본도 VSB가 아닌 유럽방식을 선택했다. 이러한 추세는 현재의 아날로그 방송이 미국을 중심으로한 NTSC진영과 유럽을 중심으로한 PAL진영으로 양분된 상황을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TV세트 제조업체로서 한국 업체들이 미국방식뿐만 아니라 유럽방식에 대한 기술축적도 게을리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디지털TV에 관한한 국내 전자업계 관계자들은 국내 업체들이 일본이나 유럽에 손색없는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일본이나 유럽이 차세대 TV에 대한 연구는 먼저 시작했지만 디지털 방식이 아니었다는 점과 디지털 방식으로 지난 90년부터 착수한 HDTV 개발프로젝트와 95년에 착수한 HDTV용 주문형반도체(ASIC) 개발프로젝트에 착수하면서 국내 업체들이 국내외에 출원한 특허건수만해도 1천여건에 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TV는 고화질뿐만 아니라 컴퓨터에서 구현되고 있는 멀티미디어 기술이나 네트워크 기술이 가미돼야하는 점을 감안할 때 결코 자만할 수만은 없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디지털TV와 관련된 핵심기술이 매우 방대한 점을 고려할 때 특허료 부담 역시 국내 전자업체에 큰 짐으로 작용될 전망이다.
<유형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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