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관람석]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

당신에게 사춘기는 희망찬 미래를 꿈꾸는 장미빛이었는가.

때로 악몽 같기만 했던 사춘기의의식이 신랄하게 그려진 코미디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는 유머가 있지만 슬프고 짓궂다. 이 영화로 96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토드 솔론즈 감독은 중산층의 스위트홈 신화에 반기를 들며 결코 희망적이지만은 않았던 성장의 아픔에 관해 이야기한다.

알려진 대로 선댄스영화제는 「저예산 독립영화」를 지지하며 스티븐 소더버그나 쿠엔틴 타란티노와 같은 스타들을 배출하면서 어느덧 세계영화의 흐름을 주도하는 하나의 줄기가 되어버렸다.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는 지극히 평범한 소재지만 「선댄스」에 거는 영화광들의 기대를 결코 저버리지 않는 독특한 재미가 살아 숨쉬는 영화다. 도수 높은 안경을 끼고 뚱뚱하며 별로 똑똑하지도 않은 중학생 소녀 돈 워너. 그녀에게 학교와 집은 따돌림과 무관심 속에서 자신을 지켜나가야 하는 투쟁의 장소다. 학교 식당이나 화장실에서도 돈은 친구들의 「놀림」을 피해 다녀야 하고 집에 와도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은 온통 인형같이 예쁜 동생과 공부밖에 모르는 오빠 몫이다. 여기에 돈의 반항과 복수는 동생이 갖고 놀던 인형의 목을 몰래 톱으로 자르거나, 엄마의 메모를 전해주지 않아 동생을 곤란에 빠뜨리는 것 뿐이다.

그러던 어느날 오빠의 밴드에 싱어로 참여하게 된 스티브를 좋아하면서 돈에게도 잠시 가슴 떨리는 「행복」의 순간이 찾아온다. 그러나 부모님의 결혼기념일 파티에 한껏 멋을 부리고 스티브의 방을 두드리지만 「성년의 문」을 넘고 싶은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다른 여자와 벗고 있는 스티브의 모습이다. 상처 입은 돈은 연민을 느끼던 브랜든을 찾아가 친구가 되어 줄 것을 요구하지만 그도 「이젠 너무 늦었다」고 얘기하며 떠난다. 자기혐오와 고통의 세계에서 그녀를 구원 해 줄 천사는 어디에도 없다. 이제 남겨진 돈의 유일한 구원은 그저 참고 기다리는 것 뿐. 『2학년이 되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라는돈의 물음에 오빠는 냉정하게 『다 똑같애』라고 말한다.

감독의 자전적인 정서를 담고 있는 이 영화는 「성장영화」로 분류될 수 있지만 그 한계를뛰어넘는 독특한 시각이 놀랍다. 영화에 그려진 어른들의 모습과 다양한 성적 코드는 평범하지만 오히려 그 사실감이 잔인성과 폭력성을 더욱 극명하게 느끼게 한다. 또한 다소 낯선 등장인물이나 거친 듯한 화면은 마치 한 편의 재미있는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고 그것이 작품의 주제를 부각시키는 훌륭한 장치로 이용되고 있다.

87분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영화지만 이제는 잊혀진 사춘기의 일기장을 훔쳐 보는 듯한 가슴 떨림과 쓸쓸함의 감성이 오래도록 남는 영화다. 이 영화의 등장 이후 97년 선댄스는 10대 영화의 유행을 낳기도 했다.

<엄용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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