柳在哲 충남대 컴퓨터과학과 교수
최근들어 세계 최대 정보조직 중 하나인 미국 CIA가 재조명되고 있다. 공산주의의 몰락 이후 CIA가 경제, 산업 및 과학정보의 수집분석에 치중해야 한다는 역할 전환론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이는 지금까지는 CIA의 정보수집 대상이 아니었던 국내 기업들도 더 이상 정보전쟁에서 안전하지 못하다는 의미이고 기업 및 정부, 더 나아가 개인정보에 대한 보안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것이다.
과거에는 보안이라 하면 군사 혹은 외교 등 한정된 분야에서만 필요한 일인 줄로 알고 있었다. 그러한 이유로 일반인들의 관심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고 일반인들의 접근이 통제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자의반 타의반으로 보안이라는 단어와는 격리되어 있던 상황이 이제는 크게 변하여 일반인들도 보안이라는 단어에 익숙해져야 하는 시대가 왔다.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컴퓨터 네트워크에 일반인들의 사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홈쇼핑, 홈뱅킹 등 개인의 경제정보를 다루는 서비스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컴퓨터 네트워크의 보안을 구축하지 못한다면 작게는 개인이요 크게는 국가적 손실이 계속해서 발생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우리들이 알지 못했을 뿐이지 이미 많은 손실이 발생했는지도 모른다.
컴퓨터 및 네트워크 보안분야에서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입장에서 볼 때 그래도 지금은 과거와는 환경이 많이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다. 보안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기업, 연구소 등에서 이제는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명하고 있고 공부하려는 학생들의 수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며 보안 분야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세미나나 워크숍이 등장할 정도다. 이러한 변화의 요인은 무엇보다도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개인 또는 기업간의 안전한 정보 교류에 대한 필요성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전자상거래가 각광을 받으면서 이 분야의 핵심기술인 보안문제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전자상거래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이미 암호기술, 암호기술을 이용한 인터넷 기술 등을 확보한 상태에서 그 위에 전자상거래를 구현하고 있지만 국내는 암호기술은 어느 정도 확보가 되어 있으나 암호기술을 이용한 인터넷 기술은 미천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전자상거래라는 응용기술을 구현해야 하는 개발자는 그 해결책으로 국내 개발보다는 외국 기술의 수입으로 눈을 돌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수입 업체들은 국내외 암호정책에 따라 수입제품의 판매가 어렵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보안산업을 포기하면서 정부 정책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곤 한다.
정부 정책에 대한 불만은 다른 국가에서도 마찬가지다. 보안관련 정책은 철저하게 자국의 이익을 중심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미국에서조차 많은 민간기업에서는 불만이 대단하다. 그 대표적인 기업이 SSL이라는 WWW 보안 솔루션을 개발한 넷스케이프사이다. 미국의 암호정책에 따라 자국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버전에 비해 외국 수출용 버전의 보안 강도가 약하여 수출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와 민간기업이 서로 대립되면서도 국익을 위해 서로 조금씩 양보를 할 줄 하는 현명함을 미국은 갖고 있다. 그 예로 얼마 전에 방문한 미국 백악관의 전자상거래 특사를 들 수 있다. 앞으로 전개될 전자상거래 사업은 민간을 중심으로 진행토록 하여 정부의 개입을 배제하도록 하자는 협박 아닌 협박을 하고 갔다. 전자상거래 기술을 이끌고 있는 미국기업이 세계 시장의 석권을 노리고 정부와 함께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내용 중에는 전자상거래의 활성화를 위해서 국가적으로 호환성 확보를 위해 표준이 중요하다면서 시급히 준비되어야 할 표준으로는 보안 기술을 들고 있다. 각국이 서로 달리하는 보안 정책으로는 전자상거래가 활성화되기 어렵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전개될 보안기술 표준에서는 세계시장에서 안전하다고 인정할 수 있는 즉, 민간에서 주장하는 강력한 암호기술의 사용과 정부가 주장하는 키위임 혹은 암호화 대상 데이터의 범위 설정 등이 고려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표준이 제정되면 미국은 이를 따를 것을 강요할 것이고 그러다보면 국내의 보안산업은 외국에 의해 이끌려갈지 모른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와 같이 미국은 정부와 기업이 앞으로의 전자상거래 시대의 도래를 예상하고 호흡을 맞춰 세계시장 석권을 계획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을 하든지간에 기회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어렵게 만나게 된 기회를 놓치게 되면 그 다음의 기회를 기약할 수 없다. 만약 우리가 그나마 형성된 보안산업의 발전을 꾀할 수 있는 지금의 이 기회를 놓치게 된다면 돌이킬 수 없는 후회만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산, 학, 연, 관이 함께 지혜를 모아 정부의 정책과 민간의 요구를 서로 보완하여 다가오는 21세기 국가경쟁력 확보에 노력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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