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중순 국내 산전업계에 신선한 충격이 던져졌다.
전체 종업원이 30여명밖에 되지 않는 한 중소기업이 웨스팅하우스, GE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세계적인 외국업체들을 제치고 제어분야 중에서도 고정밀, 고난도 기술을 요구하는 원자력 디지털경보시스템 수주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한국전력이 발주한 이 시스템은 원전 주제어실에 설치돼 원전의 24시간 가동상황을 한눈에 감시하는 원전 운영의 핵심설비로 우리나라의 중소기업이 미국 RONAN, 웨스팅하우스, GE 등 내로라하는 외국업체들을 제치고 수주, 외국업체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한마디로 국내 산전업계의 앞날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었다.
그동안 이른바 빅4라 불리는 지멘스, GE, ABB, 슈나이더 등 외국 산전업체들에 내수시장을 고스란히 내주고 부스러기 줍기에 바빴던 국내 산전업계가 90년대 후반 들어 산전시장이 본격 성숙해지면서 그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
올해 국내 산전시장 규모는 공장자동화, 자동제어, 빌딩설비, 공작기계, 계측기 등과 공항, 항만, 철도교통, 전력기기 등 사회간접자본 부문을 포함해 대략 10조원 이상으로 늘어나고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20% 이상 높은 신장세를 보일 전망이다.
90년 이후 연평균 23% 이상 높은 신장세를 유지해 온 우리나라 산전산업은 오는 2000년경부터는 국내 전자산업의 핵으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공장자동화, 자동제어, 교통, 항만, 빌딩설비 등 대부분의 산전 업종이 국민소득이 높아질수록 그에 비례해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산전시장은 큰 폭의 신장세를 보일 것이 분명하다.
국내 산전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외국업체에 의존해 온 첨단기술들이 벤처기업에 의해 서서히 국산으로 대체되고 있다.
빌딩자동화, 엘리베이터, 원격감시제어, 공장자동화기기, 물류기기 분야의 경우 국내업체들의 기술수준이 선발업체들의 수준에 근접해가고 있는가 하면 엘리베이터, 바코드시스템, 공정모니터링시스템, 교통운영시스템 등 첨단기기와 소프트웨어가 기술종주국에 역수출되는 쾌거를 거두고 있다.
이러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국내 산전업계는 내수시장 중심에서 중국 및 동남아 지역으로 서서히 발길을 돌리면서 이들 지역을 전략시장으로 집중공략해 나가고 있다.
엘리베이터, 전력기기 등을 중심으로 한 산전업계의 해외진출은 가전, 정보통신 분야에 비해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최근 들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고 해외진출을 계기로 재도약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특히 승강기산업의 경우 그동안 내수포화에 따른 저가수주 경쟁으로 더 이상 내수에 의존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여건이 해외진출을 가속화하는 요인이 됐다.
어쨌든 국내 산전업계의 해외진출은 바람직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국내 산전업계의 기술수준을 한마디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선발 외국업체와 견줘봤을 때 고난도기술은 떨어지지만 중급제품의 경우 품질에 비해 가격이 낮은 데다 중국 등 국내 전자산업을 위협하고 있는 후발국들의 제품개발 및 생산기술이 낮아 해외시장에서의 경쟁력은 상당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러나 일부 분야는 중국이나 동남아산 제품에 가격면에서 밀리고 어떤 것은 일본, 대만에서 투자한 업체들에 기술적으로 뒤지고 있어 국내업체들의 생산합리화를 통한 비용절감, 그리고 기술개발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중전기기의 경우 중소형 범용기기는 한, 일간 기술격차가 거의 없으나 초고압, 대용량 제품의 경우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처럼 기술격차가 생기는 근본원인은 설계해석기술이 부족하고 소재, 부품 등 기초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공장자동화기기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컴퓨터 수치제어(CNC) 공작기계다. 국내에서는 주로 공장자동화가 공작기계의 자동화, 무인화 방향으로 진행됨에 따라 이에 대한 기술력 확보가 기계공업 전반의 성패를 판가름하는 요소로 등장하게 되었다.
국내 공작기계 산업도 급속한 신장세를 보여 최근에는 고속가공 및 미크론 단위의 高精度로 가공할 수 있는 기술수준이 되었고 최대 72시간까지 무인생산을 할 수 있는 유연생산시스템(FMS)도 국내업체들에 의해 활발히 개발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우리나라 공작기계 생산액은 주요 경쟁국인 중국과 대만에도 뒤져 세계 9위로 한 단계 밀려나는 등 주춤한 상태다.
미국 가드너연구소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공작기계 생산액은 지난 95년 11억5천만 달러로 세계 8위였는데 지난해에는 11억9천만 달러로 소폭 늘긴 했으나 영국에 밀려 9위로 떨어졌다.
이처럼 우리나라 공작기계 산업이 위축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내수시장에서의 불황이 장기화되고 있는 데 따른 것이지만 CNC장치 등 핵심부품과 소재산업의 대외의존도가 높은 것도 큰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계측기기 산업도 21세기를 주도할 정보통신, 반도체, 우주항공, 생명공학, 환경산업 등 관련산업의 발전과 함께 그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으며 시장규모도 크게 확대되고 있다. 국내 계측기기 시장규모는 연평균 20% 정도 성장하면서 현재 약 4조∼5조원에 달하고 있으며 오는 2000년에는 8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계측기기 산업은 생산시설 중 계측기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한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고 산업고도화로 높은 측정정밀도와 다양한 기능을 가진 계측기기가 요구되면서 새로운 기술의 도입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국내 계측기기 산업은 기반기술이 취약한 국내 1백50여개 업체가 난립하면서 독자적으로 기술변화에 대처하기 힘든 실정이다. 국내 기업형편상 기업이나 기업부설연구소의 독자노력으로 계측기기 국산화 연구개발을 수행, 상품화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상황이며 특히 내수공급의 한계성으로 신기술 개발이 외면당하고 있다.
또한 설계 및 상호처리기술, 성능평가기술이 아직은 초보단계이고 설계 및 신호처리 분야도 계측기기에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응용하는 것 또한 초기단계다. 센서 및 핵심부품 관련기술도 낙후돼 계측기기 산업의 발전을 받쳐주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이 독자적으로 계측기기 국산화에 나서 상품화하는 것은 어려운 실정이므로 핵심 계측기기 및 부품 개발의 촉진을 위해 정부가 기술기반 조성을 주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계측기기 기술의 특성상 10년 이상의 계측관련 경험이 축적된 전문 기술인력이 필요한 가운데 전문인력 양성도 시급한 실정이다.
특히 외국 선진 계측기업체들이 지능화, 고정밀, 광응용, 미세단위측정, 다기능화 및 초소형 등 고부가가치 계측기기 생산에 주력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부문에 대한 기술투자를 집중하는 한편, 성능 및 신뢰성이 뛰어나면서도 가격경쟁력을 갖춘 제품개발에 주력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오는 2000년대에는 산업이 고도화할 것임에 따라 환경오염에 대한 각종 국내외적 규제가 날로 강화되고 생활용품에서부터 첨단산업에 이르기까지 과학적인 계측이 요구되고 있다.
이와 관련, 21세기를 이끌어갈 정보통신, 신소재, 컴퓨터, 우주, 환경 산업에 발맞춰 국내 계측기기 연구개발 방향을 고도의 신뢰성을 갖춘 첨단 통신, 전자 계측기를 비롯해 환경용 계측기 등에 무게중심을 둬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영하 기자>
전자 많이 본 뉴스
-
1
'게임체인저가 온다'…삼성전기 유리기판 시생산 임박
-
2
LS-엘앤에프 JV, 새만금 전구체 공장 본격 구축…5월 시운전 돌입
-
3
'전고체 시동' 엠플러스, LG엔솔에 패키징 장비 공급
-
4
LG전자, 연내 100인치 QNED TV 선보인다
-
5
필에너지 “원통형 배터리 업체에 46파이 와인더 공급”
-
6
램리서치, 반도체 유리기판 시장 참전…“HBM서 축적한 식각·도금 기술로 차별화”
-
7
소부장 '2세 경영'시대…韓 첨단산업 변곡점 진입
-
8
필옵틱스, 유리기판 '싱귤레이션' 장비 1호기 출하
-
9
비에이치, 매출 신기록 행진 이어간다
-
10
정기선·빌 게이츠 손 잡았다…HD현대, 테라파워와 SMR 협력
브랜드 뉴스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