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제품에 권장소비자가격이 표시되지 않을 경우 어떠한 일들이 벌어질까. 최근 정부의 공산품 가격표시제 개정 추진에 대해 전자업계가 2,3년 연기시행을 요청함으로써 가전제품 권장소비자가격이 새삼 관심사가 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전제품에 권장소비자가격을 표시하지 않을 경우 가전유통시장에 일대 파란이 예상된다. 또 가전산업 자체도 엄청난 회오리바람에 휩싸일 것이 확실시된다.
현재 가전제품에는 공장도가격에다 20% 내외의 유통마진을 붙여 권장소비자가격을 표시하고 있다. 따라서 권장소비자가격을 표시하지 않는다는 것은 유통업자의 마진이 다양해지고 소비자들의 제품 구입가격도 상당한 차이를 보이게됨을 의미한다. 지금 현재도 유통점의 경영방식에 따라 판매마진에 차이를 보이고 있고 이로인해 소비자가 가전제품을 구입하는 가격도 달라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여기에다 권장소비자가격 표시마저 없어지면 가전제품 가격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 된다. 이는 곧 유통업체간 무한경쟁을 예고하는 한편으로 경영 노하우와 자금력 등에서 앞선 대형 유통점들이 가전 유통시장을 장악할 확률이 높다. 가전 유통시장에 시장원리가 제대로 적용되는 긍정적인 측면과 함께 이제까지 가전 유통시장을 지탱해온 전속대리점의 붕괴를 시사한다.
또 유통업체간 치열한 가격경쟁이 소비자들에게 모두 유리한 것은 아니다. 대도시 등 중심상권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가전제품을 상대적으로 싼 값에 구입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만 농어촌과 산간벽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지금보다도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게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가전제품을 직접 생산하는 메이커들 입지는 더욱 좁아진다. 이제까지는 전속대리점을 기반으로 가전 유통시장을 주도하면서 비교적 안정적인 이윤을 누리고 가격정책을 펼쳤으나 양판점을 비롯한 대형유통점의 급부상으로 가격결정권을 잃게될 것이 뻔하다. 특히 메이커간 시장 점유경쟁은 지금보다도 더 치열해져 유통시장에 출혈공급하는 사태가 확산됨으로써 채산성은 극도로 악화될 전망이다. 이 경우 그렇지않아도 국내 가전산업을 리드하는 삼성전자, LG전자, 대우전자 등 3사 중 삼성전자와 LG전자의 행보가 탈가전쪽으로 기울어가고 있는 것을 더욱 부채질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의 이번 가격표시제 개정안 내용중에는 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제품의 공장출고 가격산정시 하청업자의 판매관리비와 제세를 제외하고 있어서 중소 가전업계의 엄청난 타격이 불가피하다. 현재 가전제품 공장출고 가격은 제조원가에다 제조업자의 판매비 및 일반관리비, 제세, 이윤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OEM 제품의 경우는 여기에다 하청업체의 판관비 및 제세가 추가돼 있다. 따라서 하청업체의 판관비와 제세를 제외할 경우 소형 가전제품과 같은 OEM 제품의 판매가격이 현재보다 3,4% 정도 인하되는 효과를 거두게될 것으로 가전업계에선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중소 가전업체(하청업자)의 경영수지에 치명타로 작용하게 된다. 가전3사 등 대기업에 제품을 OEM 공급하면서 제대로 이윤을 챙길 수 없으며 그렇다고 광고, 판촉 능력은 물론 영업인력, 물류, 서비스 등 자체적으로 유통력을 갖출 수 있는 자금력이 태부족해 독자적인 판매가 곤란하다. 가전3사도 최근 사업구조 조정을 실시하면서 가전제품을 중소기업으로 확대 이관하려는 움직임을 다시 수정할 수 밖에 없다.
결국 정부의 공산품 가격표시제 개정안을 가전제품에 당장 적용할 경우 가전 유통과 산업이 송두리째 흔들릴 것이라는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이윤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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