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231)

거미처럼 직접적인 보조기구를 사용하지 않는다 해도 동물들은 자연적인 기구를 이용하여 짝을 찾든지, 욕구를 충족시켜 왔다. 발정이 나 암내를 통해 섹스 메시지를 띄워도 얼른 상대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나뭇가지에 음부를 비벼대고, 수컷도 마치 암컷 등에 올라타듯 나뭇가지를 올라탄 채 요란하게 몸을 흔들어 대어 욕구를 충족시킨다.

하지만 거미의 경우 아무리 섹스 보조기구가 그럴싸하더라도 수컷의 심벌이며 존재의 상징과 같은 성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극복하기 어려운 비극이다.

섹스 보조기구.

인간들도 섹스 보조기구를 이용해 왔다. 고대 이집트의 유물 가운데 발견된 다양한 형태의 인공 페니스를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섹스 보조기구는 문명이 싹튼 이래 줄곧 사용되어 왔다. 섹스 보조기구가 만들어지게 된 원래의 목적은 정상적인 섹스과정에서 쾌감을 증대시키거나 성기능이 온전치 못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도구였다. 하지만 이러한 보조기구는 이제 단 한순간 극도의 쾌락을 위해 변태적으로 사용되어 성문화를 문란하게 한다는 것 때문에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사내는 깊게 담배연기를 빨아들인 후 길게 내뿜었다.

화면에는 거미줄에 매달린 채 온몸을 암컷에게 뜯어 먹히는 수컷 거미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덩치가 작은 수컷 거미가 덩치가 큰 암컷 거미에게 버둥거리지도 못하고 그대로 먹히고 있었다.

사내는 다시 한 번 길게 담배연기를 뿜어냈다.

거미의 사랑행위는 가학적 피학대성(마조히즘)이 다분히 배어 있다. 인간들처럼 채찍과 긴 가죽부츠, 하이힐, 쇠사슬, 수갑, 면도날을 동원하지는 않지만 거미는 고통과 죽음의 예감 속에서 성적 쾌락을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인간의 마조히즘은 자연법칙에 역행하는 속성을 지니지만 거미의 마조히즘은 오히려 자연에 순응한다. 사랑행위를 마치고 거미줄에서 바둥대다가 탈출에 성공하지 못하고 암컷 거미에게 야금야금 먹히는 수컷, 수컷을 잡아먹고 배를 두드리다가 알을 낳은 후에는 다시 제 새끼들에게 먹히기도 하는 암컷. 거미의 마조히즘은 자연법칙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죽음을 향한 사랑행위.

자신의 죽음을 예측하면서도 수컷 거미가 섹스를 동경하는 것 자체야말로 그 어떤 동물들의 사랑행위보다 강한 가학성 피학대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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