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가 한국산 컬러TV의 반덤핑 철회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미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 데 따른 한, 미간 양자협의가 시작됨으로써 이제 한국산 컬러TV가 반덤핑 사슬에서 풀려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지난 8일 제네바 WTO 사무국에서 열린 첫번째 회의에선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았지만 미국측이 자국의 반덤핑 법규와 관행이 전반적으로 WTO협정에 합치함을 주장하면서도 한국의 제소에 대한 정면반박과 같은 대립양상을 보이지는 않아 양자협의를 통한 타결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특히 미국은 한국산 컬러TV 반덤핑조치 철회와 관련한 재심과 우회덤핑 조사가 거의 완료단계에 있어 「매우 가까운」 시일 안에 최종 결과가 나올 것임을 밝히면서 한국의 인내를 요구, 의외로 쉽게 해결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한국정부의 미국에 대한 WTO 제소발언이 그동안 몇번씩 나왔는데도 이를 지연해온 것은 미국측 설명대로 단순한 인력부족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 우리 업계의 시각이다. 멕시코와 태국산 한국 컬러TV 우회덤핑 조사의 경우 거의 마무리해 놓고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우선 멕시코산 한국 컬러TV가 상당 부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규정을 충족시키고 있어 우회덤핑 판정을 내릴 경우 NAFTA의 기본정신을 위반하는 결과를 빚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업계에선 꼽고 있다. 더욱이 이번 컬러TV 우회덤핑에 대해선 한국과 멕시코정부가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어 미국으로서도 섣불리 우회덤핑 확정판정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또다른 이유로는 미 상무부에 우회덤핑을 제소한 장본인이 컬러TV업체가 아니라 관련 노동조합이어서 한국측이 제소자격에 대해 계속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도 미국정부의 행동을 어렵게 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또 미 상무부내 일선 책임자들이 일본 NEC 슈퍼컴퓨터 덤핑문제에 매달려 있어 이번 양자협의 때 미국측이 밝힌 것처럼 인력부족도 한 이유가 되고 있다.
특히 한국 가전업체들의 컬러TV 우회덤핑 문제를 무혐의로 확정판정할 경우 한국 삼성전자의 컬러TV 반덤핑 명령철회(Revocation)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 무엇보다 미국측을 불편하게 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반덤핑 명령철회와 우회덤핑 문제는 별개의 사안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미국측은 그동안 이를 동일한 개념으로 처리하려 들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번에 한국정부가 미국을 WTO에 제소함에 따라 8일 양자협의를 시작으로 양국간 협의를 통해 합의점을 찾아내지 못할 경우 약 한 달 후에는 WTO 패널단계로 넘어가게 되고 일반적으로 6개월, 최장 9개월 내에 패널(전문가그룹)검토를 거쳐 분쟁해결기구(DSB)의 패널보고서로 채택되거나 상소기구를 거쳐 결정나게 된다. 제소일로부터 DSB 보복조치 승인까지는 결국 15개월 이상 소요될 수 있다.
여기에는 그러나 한 가지 미묘한 사안이 얽혀 있다. 지난 95년 WTO 출범 때 미국은 유럽연합(EU)이 시행해온 5년 「Sun-set Review」를 채택, 내년 7월부터 오래된 사례를 시작으로 이를 적용할 예정인데 한국산 컬러TV가 우선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우리 업계의 분석이다.
이 Sun-set Review는 최종 덤핑판정을 받은 지 5년이 지나면 이를 다시 조사해 산업피해가 없으면 종료시키는 제도인데, 6년 이상 대미수출이 전무한 한국산 컬러TV에 대해 이를 적용할 경우 삼성전자 컬러TV도 반덤핑 규제대상에서 자연스럽게 풀려나지 않겠냐는 얘기다.
이번 제소는 또 한편으로 첫번째 제소일 뿐 아니라 그 대상이 미국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WTO 출범 이후 우리나라는 그동안 7건을 피소당하면서도 이번 제소 전까지는 단 한 건도 제소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만큼 국제무역분쟁에 대해 수동적이었음은 물론 대응력도 약했음을 반증하고 있다. 특히 7건의 피소 중 4건이 미국이었으며, 그동안의 한, 미 통상협상에서도 대부분 방어적인 입장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번 제소는 국제 통상문제에 공격적으로 대응하는 첫 사례가 된다.
아직 섣불리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WTO 반덤핑규정 제11조 1항과 2항 등을 종합해볼 때 미국 상무부(DOC)의 연례심사에서 6년 연속 미소마진 판정을 받은 삼성전자의 컬러TV에 대해선 당연히 반덤핑 명령철회 결정이 내려졌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또 확정판정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우회덤핑의 경우도 현지 조립국인 멕시코와 태국 등 이해당사국까지 나서서 미국의 우회덤핑 조사가 WTO협정에 위배된다고 주장하고 있을 정도여서 이번 제소는 우리 정부가 확신을 갖고 행동으로 옮긴 것으로 풀이된다.
<이윤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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