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기도 인근에 공장을 새로 짓고 입주한 한 반도체 장비업체 K사장은 회사 방문차 들른 업계 관계자들로부터 「농담반 진담반」의 충고를 들었다. 공장 입구에 대리석도 좀 깔고 굳이 필요는 없더라도 클린룸도 흉내 정도는 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의였다. 반도체 관련 장비를 생산하는 공장으로는 너무 구경거리(?)가 없다는 것. 이날 이후 몇달을 두고 고민한 K사장은 결국 공장 치장을 위해 몇 억원의 추가비용을 들였다.
지난달 부지선정을 막 끝내고 설비공사에 들어간 한 장비업체 P사장도 이와 비슷한 고민에 빠졌다. 경쟁사인 S사가 최근 코스닥시장에 등록하면서 무려 1백억원을 투자, 새로운 공장을 건설할 것이라는 소문을 들은 것. 아무리 따져봐도 자사와 같은 소모성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가 공장건설에만 그렇게 많은 돈을 투자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지만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이런 이유로 현재 P사장은 이미 착공된 공장의 일부 설계를 변경하더라도 클린룸의 설치면적과 외부 조형물을 좀 더 확장하는 방안을 심각히 고민중이다.
최근 반도체 장비 및 재료 업체들의 공장신축이 잇따르면서 이처럼 「내실」과 「외형」문제로 고민하는 업체들이 부쩍 늘고 있다. 반도체가 최첨단 산업이라는 일반적인 인식과 함께 내실보다는 외형을 중시하는 우리나라의 풍토가 이러한 「자기 과시형」의 공장건설을 부추기고 있는 것. 「그래도 명색이 반도체를 하는 회사인데」하는 마음과 「경쟁심리」가 업체의 목을 죄고 있다.
현재 공장을 건설중이거나 추진중인 반도체 관련 업체들의 공사비 규모를 보면 이러한 과대투자의 의혹은 더욱 짙어진다. 대부분의 반도체 관련 중소업체들이 부지임대 및 매입비용를 포함, 현재 책정해 놓고 있는 평당 공사비는 평균 1백50만원 수준. 이는 일반 제조업체들의 공장건설 투자비(평당 45만원 수준)의 3배가 넘는 액수다. 반도체가 아무리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라 하더라도 공장건설에만 이처럼 과다한 투자를 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국내 장비업체 사장들조차도 『일본에 있는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업체들을 방문해 봐도 우리처럼 이렇게 잘 꾸며진 공장은 보기 힘들었다』고 말한다. 또 다른 장비업체 사장은 『가령 1백명의 직원을 가진 회사가 1백억원을 투자해 공장을 건설한다고 할 때 5%의 연간 이자율만 적용하더라도 그 액수는 5억원에 달한다. 이를 만약 연구개발에 투자한다면 박사급 인력 10명은 더 쓸 수 있는 돈』이라며 최근의 추세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그럼에도 외형을 중시하는 이같은 분위기가 쉽게 가라앉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국내의 경우 어쨌든 꾸며 놓으면 그 만큼 또 거둬들이는 것이 상례다. 수요업체나 금융기관에서 왔을 때 기술력은 차체하고 일단 그럴 듯하게 보이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느냐』는 한 업체 사장의 말이 전혀 틀린 얘기만은 아닌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주상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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