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대덕 과학단지

成琦秀

대덕 과학단지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부족한 것 같다.

우선 긍정적인 면을 보면 국방연구, 원자력, 과학기술, 인력양성, 통신기술 등의 자립기반을 확립한 것이 대덕의 가장 큰 업적이다. 이들 분야는 박정희 정권 때부터 역점사업으로 추진돼 온 것으로 과학기술정책의 일관성이 성공의 필요조건이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방위산업의 경우 항공기 등 일부를 빼고는 많은 품목이 이미 국산화되고 있고 그 기초가 바로 대덕에 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후진국을 면치 못했던 통신기술의 경우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중심으로 국산 전자교환기 TDX를 성공적으로 개발, 10년 만에 2천만대의 현대식 전자교환 통신망으로 변모시킨 것은 참으로 통쾌한 일이었다. 최근 실용화에 들어간 코드분할다중접속(CDMA)방식의 휴대형 디지털 전화기 핵심기술을 발전시킨 것은 국가경제를 견인하는 시원한 홈런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앞으로 미래형 교환기(음성, 문자, 동영상 동시처리) ATM이 상용화에 성공한다면 제3홈런으로 기록될 것이다.

원자력기술의 경우 원자력 발전소의 핵심기술인 원자로 설계기술과 핵연료 생산기술이 확립된 것은 대덕 원자력연구소의 빛나는 성과이다. 전기생산에 필요한 핵연료가 실제로 국내에서 생산되고 있으니 대덕은 우리나라의 에너지 공급기지의 산파역을 한 셈이다. 북한에 설치하기로 한 경수로형 원자력발전소는 그 기술의 뿌리가 대덕이고 세계가 공인한 한국 기술이다. 한국 최초의 연구중심, 대학원 중심 교육기관으로서 세계적 명문으로 성장한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인력양성 측면 또한 대덕 과학단지의 중요 구성요소이다.

교육개혁, 기업세계화에 1백만 우군역할을 하며 전국적으로 번져나가고 있는 인터넷의 뿌리도 대덕이다. 80년대부터 가꾸어온 KAIST의 「하나-net」과 시스템공학연구소(SERI)의 연구망(Kreo-net)이 바로 그것이다.

SERI의 슈퍼컴퓨터 1호기(88년)와 2호기(93년)는 한국의 슈퍼컴 파워를 지금의 1초당 1천5백억번으로 끌어올리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한국의 연구풍토를 선진국형으로 바꾸는 데 기여하고 있는 인터넷과 슈퍼컴 시설은 신 사회간접자본(신 SOC)으로서, 정신노동의 중장비로서 선진국들이 앞 다퉈 투자하고 있는 분야이다. 일본의 슈퍼컴 파워가 한국의 40배 이상임을 감안할 때 이 분야(인터넷 통신속도와 슈퍼컴 파워)의 보강이 시급함을 알 수 있다.

대덕 과학단지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직후 즉 80년대 초부터 생겨났다. 국방연구소에서 8백여명이 일시에 해고당하는 일과 잦은 연구소 통폐합, 평가, 감사, 임금억제, 인원동결 등 일련의 연구소 두들겨패기가 5, 6공화국을 거쳐서 오늘날까지도 그대로 계속되고 있다. 연구시설과 환경이 잘 가꿔진 대덕 과학단지에서 수많은 연구원이 직장을 다른 곳으로 옮겨갔는데 그 중에는 연구시설이 더 열악한 곳으로 옮겨간 경우도 허다하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과학 기술자 푸대접의 대표적 사례로서 대덕의 연구원들에게는 정년퇴직후 공무원, 군인, 교직자들에게 있는 연금혜택이 없다는 것이 가장 많이 거론되고 있고, 이것이 연구원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있는 게 사실이다.

대통령이 수시로 연구소를 방문해 연구원들을 격려하던 70년대에 비해 5공 이후는 임기 중 한두 번 방문이 고작이었고, 이 소중한 기회마저 연구원들에게 별 도움을 주지 못했다. 연례 행사처럼 반복되고 있는 과학기술 담당 장관의 잦은 교체 또한 정책의 일관성 유지를 어렵게 했다.

과학기술을 키우는 일은 나무를 키우는 것과 흡사하다. 한 10년 동안 공들여 키워야 제대로 된 나무 하나가 뿌리를 튼튼히 내리게 되는 것이다. 인위적인 규제는 정상적인 성장을 저해할 뿐이다. 새 나무(과학단지)를 지역마다 심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미 심은 나무 즉 대덕 과학단지와 대덕의 모체로서 황금의 알을 낳고 있는 홍릉단지(KIST)를 잘 가꾸는 일은 더욱 중요하다.

기술경쟁이 국가 생존과 직결될 21세기를 목전에 두고 있는 지금 거국적으로 기술개발 목표와 지원체제를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동명정보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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