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정통부, 지역번호 광역화 왜 못하나

시외전화 지역번호를 현재의 1백44개에서 15개 정도로 단순화해 번호권을 광역화하는 문제가 사실상 백지화됐다.

정통부는 20일 열린 「중장기 번호관리정책 방향에 관한 공청회」에서 당초 상반기 중으로 시행방침을 결정하기로 했던 지역번호 광역화 문제에 대해 『올해 말까지 더 검토한다』고 밝힘으로써 이 문제를 현 정부 임기안에 해결할 생각이 없음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정통부는 ▲전체가입자의 최소 40% 이상이 지역번호나 국번을 변경해야 하는 불편 ▲번호만 광역화하고 요금체계는 현행 유지할 경우 초래될 혼란 ▲시외전화 시장 축소 ▲시외교환망 체계의 전면 변경 필요성 ▲대국민 홍보에 소요되는 비용등을 고려할 때 지역번호체계를 개편하는 것은 시급하지 않은 일이라고 설명했다.

정통부는 이와 함께 지역번호 광역화 방안으로 2개권(남한 지역을 중부권 02, 남부권 05로 구분), 5개권(광역도단위 광역화), 15개권(광역시, 도 단위 광역화) 등 3개 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고 2개권 및 5개권 광역화의 경우 1천4백50만명, 15개권 광역화의 경우 9백28만명이 번호를 바꾸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통부 관계자는 더욱이 변경 번호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15개권 광역화 방안에는 『한국통신의 불순한 의도가 숨어 있다』며 검토안에서 배제할 뜻을 밝히고 있어 이래저래 광역화 논의는 물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결국 정통부가 지역번호 광역화 문제를 차기 정권으로 떠넘긴 것이다.

정부의 이같은 어정쩡한 태도에 대해 통신업계의 한 관계자는 『불과 일 주일 전에 새로운 시외전화 사업자를 허가한 정통부로서는 시외전화 시장을 축소할 수도 있는 지역번호 광역화 문제를 다루기가 껄끄러울 것』이라며 일면 이해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15개권 광역화 방안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한국통신은 광역화 유보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통신의 한 관계자는 『15개권 안 외에 2개권, 5개권 안을 느닷없이 들고 나온 것은 지역번호 광역화 논의를 희석시키기 위한 술책』이라면서 『2개권이나 5개권으로 광역화하면 국내 통신망체계가 붕괴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역번호 광역화 논의 뒤에는 정부나 개별 통신사업자들마다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복잡한 의미들이 숨어 있다.

정통부는 지역번호 광역화 문제를 주로 번호자원 확보의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지난해 PCS사업자들의 식별번호를 세자리수로 하느냐 네자리수로 하느냐를 두고 반 년 이상 골머리를 썩히는 곤욕을 치른 정통부는 두 번 다시 이같은 전철을 밟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번에 통신사업자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지 않고 개별 가입자들이 번호를 변경할 필요가 없는 특수번호(1XX)를 대거 회수, 통합키로 한 것도 번호자원을 좀더 확보해 놓기 위해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호자원 확보가 용이한 지역번호 광역화에 정부가 선뜻 손을 대지 못하는 이유는 「시외전화 시장축소」를 우려한 시외전화사업자들의 반발 때문이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한국통신은 이에 대해 『어차피 시외전화 사전지정제를 실시할 마당에 번호권과 요금권이 다르다고 해서 시외전화 시장이 축소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번호권을 광역화해 놓고 요금권을 현행대로 과연 유지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통신도 번호권이 광역화되면 시내전화요금을 인상하고 시외전화요금을 인하할 수 있는 여건이 좀 더 쉽게 조성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숨기지 않고 있다.

정통부 관계자가 말한 「한국통신의 불순한 의도」라는 표현은 이 대목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최근 한국통신과 데이콤이 공동으로 한국갤럽에 의뢰해 조사한 「지역번호 광역화에 대한 설문조사」결과에 대해 눈길이 쏠리고 있다.

아직 공개되지 않고 있는 이 설문조사 결과에 대해 한국통신은 『90%이상이 광역화에 찬성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정통부는 『요금체계를 현행대로 유지한다면 반대라는 의견이 많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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