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진단] 가정용 젖은 쓰레기 처리기

젖은 쓰레기 처리문제가 최근 우리 사회의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관계 당국은 이 문제에 대한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한 채 가정에서의 젖은 쓰레기 방출을 억제한다는 대책 아닌 대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식생활 습관상 젖은 쓰레기 발생은 불가피하다. 때문에 각 가정에서는 젖은 쓰레기를 스스로 건조시켜 방출해야 하는데 악취는 물론 건조공간 확보조차 어려워 주부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가정용 젖은 쓰레기 처리기가 그 모습을 나타내고 있으나 아직 이에 대한 인지도는 미미한 상태이다.

우리와 식생활 습관이 비슷한 일본에서도 젖은 쓰레기는 큰 골칫거리 중 하나다. 우리나라에 비해 다소 빨리 이 문제에 접근한 일본에서는 최근 가정용 젖은 쓰레기 처리기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이 시장이 본격 형성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가정용 젖은 쓰레기 처리기는 크게 미생물분해방식과 건조방식으로 나뉜다.

미생물분해방식은 음식물찌꺼기가 대부분 탄소와 물로 구성돼 있다는 점에 착안, 미생물을 이용해 이를 이산화탄소와 물로 분해하는 것이다. 칼륨과 인 등의 원소가 남지만 쓰레기용량은 80∼90% 줄어든다. 이 방식을 채택한 쓰레기 처리기는 현재 히타치제작소, 마쓰시타전공, 산요전기 등이 생산하고 있다.

건조방식은 젖은 쓰레기의 약 80%가 수분이라는 점을 이용, 젖은 쓰레기를 가열해 수분을 증발시켜 쓰레기 용량을 줄이는 방식이다. 마쓰시타전기가 이 방식의 제품을 출하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역시 사회 통념상 쓰레기에 돈을 들이려는 가정은 많지 않다. 따라서 젖은 쓰레기 처리기 시장의 본격 형성과 제품 단가는 밀접한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를 인식한 생산업체들은 저가격의 보급형 제품을 투입하기 시작했다.

마쓰시타전기가 기존제품보다 30% 이상 싼 보급형 제품을 5만9천엔에 내놓은 것을 시작으로 산요전기와 마쓰시타전공도 자사 기존 제품의 절반가격인 6만4천엔과 7만8천엔에 새 모델을 선보였다. 또 가전업체인 파로마도 3만5천엔대 제품을 선보이면서 이 시장에 뛰어들었고, 업무용 젖은 쓰레기 처리기시장에 진출해 있는 NI테크노社도 한국 가전업체에 생산을 위탁해 가격을 5만엔대로 낮춘 가정용 제품을 시판할 계획이다.

아직 시장성이 불투명한 가정용 젖은 쓰레기 처리기 시장에 신규 업체까지 가담하고 나서는 데는 정부 시책도 일조를 하고 있다. 도쿄도 오우매시는 지난 95년부터 젖은 쓰레기 처리기를 구입하는 가정에 대해 5만엔을 상한으로 제품가격의 3분의 2를 지원해 왔다. 이같은 정책은 다른 자치단체로 파급돼 현재 1백43개 지역 자치단체가 5만엔에서 2만5천엔까지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이 같은 추세는 앞으로 더욱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에는 아파트를 중심으로 건설 당시부터 젖은 쓰레기 처리기를 설치하거나 시스템 키친의 일부로 이를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이를 추진하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업체는 주요 자동차 부품업체인 덴소. 이 회사는 최근 미생물분해방식을 채용하고 쓰레기를 잘게 부수는 장치를 설치한 고성능 가정용 젖은 쓰레기 처리기를 내놓았다. 이 제품은 별도 설치장소가 필요한 기존 제품과 달리 싱크대 하수구 부분과 직접 연결해 사용할 수 있다는 특징 때문에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제품은 또 쓰레기 분쇄장치를 설치해 기존 제품이 처리하지 못했던 큰 뼈와 조개껍데기 등도 한번에 분해한다. 그러나 문제는 가격. 이 제품은 타사 제품의 거의 3배 수준인 24만엔이다. 덴소 관계자는 이 제품이 『시스템 키친의 일부로 판매되기 때문에 가격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변하고 있으나 이 제품이 일반화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젖은 쓰레기 처리기의 시스템 키친화 구상은 일본의 정부시책, 제품의 저가격화와 맞물려 이 시장 형성에 크게 기여할 것임에 분명하다.

일본 관련업체들의 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가정 가운데 현재 젖은 쓰레기 처리기를 사용하고 있는 가정은 0.5% 미만이다. 그러나 조사대상의 40% 이상이 성능에 확신이 서고 가격이 낮아진다면 구입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본 국민생활센터와 도쿄도청소연구소가 공동으로 현재 시판된 가정용 젖은 쓰레기 처리기의 성능을 테스트한 결과 이들 제품이 쓰레기 양을 줄이는 데 뚜렷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한번에 많은 양을 집어 넣거나 수분이나 단백질이 많은 쓰레기를 넣을 경우에는 이를 제대로 분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젖은 쓰레기 처리기는 앞으로 저가격화와 동시에 성능 향상이 필수적이다.

젖은 쓰레기 문제는 앞으로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없는 한 우리 사회의 큰 골칫거리 중 하나로 남게 된다. 그리고 이 골칫거리를 해결하는 방안의 하나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 젖은 쓰레기 처리기의 보급 확대다. 젖은 쓰레기를 처리하는 장치가 음식을 보관하는 냉장고처럼 각 가정의 필수품으로 자리잡을 때 더 이상 젖은 쓰레기는 우리 사회에서 문제시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제품이 가정 필수품의 하나로 자리잡는 데는 앞으로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젖은 쓰레기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 확산, 관계 당국의 적극적인 개입, 그리고 각 기업의 저가격, 고성능 제품 개발 노력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심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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