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및 시스템에서 시작된 제조업체간 생산분업체제가 이제 단위 부품에까지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반도체의 경우 이미 알맹이(칩)만을 생산하고 외관(패키지)은 전문업체에 맡겨 완성품으로 만들어내는 「기업간 분업체제」가 확고히 자리잡은 지 오래고 외국의 중견 반도체업체 가운데는 아예 칩 생산까지 외부에 위탁하고 설계와 마케팅에만 주력하는 경우도 적지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국내의 경우는 부동산 집착 성향과 생산현장을 중시하는 제조업 문화의 영향으로 공장이 없는 업체는 뿌리를 내리지 못한 불안한 업체로 간주돼 사업상의 거래는 물론 각종 정부기관의 지원이나 금융 측면에서도 보이지 않는 불이익을 받는 것이 통례였다. 그 때문에 새로 사업을 시작한 기업가들의 「번듯한 내 공장」에 대한 집착은 클 수밖에 없었고 자연히 외국의 경우와 같은 「무공장 제조업체」는 현실적으로 생각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국내에도 벤처기업을 중심으로 설계와 마케팅에 주력하고 생산은 외부에 맡기는 「머리」만 가진 제조업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고 이에 따라 기업간 분업체제가 일반 부품에까지 확산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제조라인이 없기 때문에 조직의 슬림화가 가능하고 연구개발에만 몰두할 수 있어 앞서 나갈 수 있다는 것이 이들 업체의 주장이다.
이같은 경향은 특히 무엇보다 기술력과 아이디어가 사업성패를 좌우하는 정보통신 기기나 부품분야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으며 최근에는 굴지의 대기업 계열사까지 2000년대 초까지 생산라인을 단계적으로 철수, 연구 및 마케팅 중심 기업으로 전환하겠다는 전략을 발표하는 등 대기업에까지 확산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자체 생산라인이 없는 탓에 긴급한 납기나 정책적인 소량주문 등에 대한 대응력이 다소 떨어지고 바이어들이 제품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공장 제조업」이 확산되는 조짐을 보이는 것은 조직의 효율성을 높이고 투자를 집중함으로써 공장을 운영하는 업체보다 1인당 매출액을 2배 이상 끌어올릴 수 있다는 「모험성」이 리스크를 안고 시간과의 경쟁을 통해 남다른 결실을 거머쥐려는 벤처기업들의 구미에 맞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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