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164)

러시아 함대가 인천 앞바다에서 격침된 것은 1904년 2월 9일이었다.

당시 인천에 정박중이던 러시아 함대 코레츠(Koryetz)호와 바리아크(Variak)호는 여순에 있는 러시아 극동사령부의 지휘 아래 있었다. 일본과의 전운이 짙어지자 사령부와 인천항의 함대, 공사관, 부산 주재 영사관에서는 서로 전보를 통해 연락을 긴밀히 주고 받았다.

이때 우리나라의 통신권을 강제로 선점한 일본은 선전포고도 하기 전에 전쟁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일본의 장기, 부산, 인천 등지의 전신국에서 고의로 러시아측의 전보를 지연시키고, 이를 압류하여 배달하지 않았다.

일본의 이러한 획책을 알지 못하고 인천항에서 대기중이던 코레츠호와 바리아크호는 아무런 연락도 주고 받지 못한 채 기다리고만 있었다. 하루 이틀. 이틀 동안을 아무런 연락을 주고 받지 못한 채 기다리고 있던 러시아 함대는 일본측의 전보 횡취를 예감하고 군함으로 여순까지 정찰하겠다는 뜻을 주한 러시아공사에 청했다. 하지만 공사는 조선 내에서의 전력 약화를 우려하여 다시 이틀을 더 기다리도록 하였다.

결국 나흘간이나 연락이 끊긴 러시아 함대는 초조한 나머지 2월 9일 여순을 향하여 출항하게 된다. 그러나 인천 외항에서 대기중이던 일본 군함에게 불의의 기습을 받고 침몰하고 말았다.

일본이 압류한 전보에는 함대의 철수명령도 있었는데, 그 전보가 정당히 배달되었을 경우 러, 일전쟁의 전황에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통신시설이 적에게 넘어갔을 경우 전쟁의 승패는 이미 결정난 것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실례로 보여주고 있다.

당시 일본은 러시아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우리나라의 통신망을 완전히 독점하고 그 통신망을 통과하는 전보를 검열, 지연, 폐기하는 등 비열한 수단을 자행하였다.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러시아는 동년 2월 22일 일본에 대해 일본군이 중립국인 우리나라에 상륙하였음과 선전포고 전에 통신시설을 강탈하고 통신을 방해한 부당성을 들어 국제법을 위반하였음을 항의하였지만, 일본은 그러한 사실이 없었다고 잡아떼고 만다.

진기홍 옹은 골목을 걸어나오며 건너편 아파트단지 내의 공중전화 부스로 들어섰다.

수화기를 들고 공중전화 카드를 넣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케이블TV와는 달리 아직도 일반 통신회선은 회복되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광화문 네거리 맨홀.

진기홍 옹은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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