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에 대해 잘 모르는 윗분들을 이해시키며 업무를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힘들다. 또 이런 분일수록 성과를 챙기기 때문에 홍보용으로 한 건 될만한 것들을 골라 보고하다가 세월이 가고 실질적인 장기 프로젝트 추진은 요원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통상산업부 관계자)
비메모리산업은 선진외국에서 볼 수 있듯이 설계인력을 비롯한 기술인력의 뒷받침이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같은 기술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투자되는 엄청난 시간과 돈을 개별업계 차원에서 감당하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관계당국이 업계보다 핵심사안에 대해 더 모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인정한다. 문제는 실질적인 육성책보다는 보여주기 위한 지원책이 대다수를 차지한다는 것이다.』(산업연구원 한 관계자)
그 대표적인 일화 하나. 지난해 10월 H전자 이천공장에는 작은 소란이 있었다. 당시 D램 가격급락을 막기 위한 감산조치의 하나로 일요일 휴무를 실시중이었던 이 공장에 갑자기 주무장관이 찾아온다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당시 P 통산부 장관은 자신의 스케줄에 맞춰 공장을 방문하겠다고 우겼다. 명분은 산업일선의 애로사항을 직접 방문해 들어보겠다는 것. 쉬던 라인은 그날 높은 분을 맞기 위해 감산의지와는 달리 돌아야만 했다.
업계가 관계당국에 가장 아쉬워하는 것은 전문가가 없다는 것. 뭔가 서로 핵심사안에 대해 알아들을 만하면 사람이 바뀌어 모든 것이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이러기를 몇 차례하면 기업은 지치게 되고 결국 포기하고 만다.
「밥그릇 싸움」을 연상시키는 부처 이기주의 행정도 걸림돌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반도체 경쟁력 제고의 관건으로 떠올랐던 공장부지 문제는 결국 적시증설을 원하는 업계의 바람과는 달리 통산부, 건설교통부, 환경부의 협의를 거치는 동안 맥빠진 골격만 남았다.
올 들어 비메모리육성 지원사업을 놓고 통산부, 정보통신부가 벌이는 신경전도 업계에는 또 하나의 힘겨루기로 비친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정부 육성책이라고 하는 것이 자기 계열연구소 먹여살리기 위주고 기업들은 그저 들러리 역할밖에는 한 것이 없다.』(A전자 한 임원)
실제로 통산부는 KETI, 정통부는 ETRI, 과학기술처는 STEPI 등으로 나뉘어 산업에서 필요한 연구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 국가연구기관의 경쟁력이 민간기업보다 떨어진다는 데 있다. 과기처가 선도기술 개발을 위한 G7과제로 2백56MD램 개발을 서두르고 있을 때 이미 민간기업은 1기가 제품을 개발해 놓고 있었다는 사실은 단순 해프닝으로 볼 수만은 없는 일이다.
『국가연구기관이 한건주의에 집착해 제품개발 등에 매달려서는 안된다고 본다. 이보다는 민간기업이 하기 힘든 기초기반기술 개발에 힘쓰는 것이 진정 산업에 기여하는 역할분담식 지원이라고 생각한다.』(반도체산업협회 한 관계자)
하지만 관계당국의 시각은 좀 다르다.
『업계는 한결같이 간섭은 싫고 그저 관계기관이 돈만 주기를 바란다.』 올 들어 대대적인 ASIC산업 육성책을 펴고 있는 정통부 K과장의 불만이다. 그는 또 『유관기술을 가진 업체끼리 협력하기 보다는 독식하겠다는 의지가 강해 어느 정도의 교통정리는 불가피하다』고 덧붙인다.
국내 비메모리산업은 올해를 원년으로 삼을 만큼 분위기는 성숙돼 있다. 관계당국의 지원방침과 함께 업계의 주력사업화 의지도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 하지만 이같은 분위기와는 달리 지원주체인 당국과 사업주체인 기업간의 시각차는 여전하다. 바로 이 점이 비메모리산업 조기육성을 위해 풀어야 하는 또 하나의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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