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벤처기업과 첨단산업

지금 우리는 여러 언론매체를 통하여 벤처기업 육성이니 첨단기업 지원이니 하는 정책성 발언을 자주 접하게 된다. 신문지상에서는 그럴 듯하게 첨삭된 통신사업이니 정보통신이니 하는 언어들에 휩싸여 있는데 도대체 무엇이 첨단이고 무엇이 벤처기업인지 반문하고 싶다. 지금까지 중소 제조업을 운영하던 대부분의 기업들은 첨단산업이 아니라서 또는 벤처기업이 아니라서 지원을 할 수 없었는지, 그렇다면 대다수의 이들 중소업체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지 묻고 싶다.

실제로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하는 정책의 담당자, 국책연구기관 및 대학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실무자들은 과연 산업의 현실을 제대로 알고서 업무를 수행하는지 궁금하다.

아무리 국경없는 시대라고 해도 중소 제조업이 자국내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고 하면 그 국가의 미래는 자명한 결과를 맞게 될 것이고 다음 세대의 기반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와 가장 비교되는 대만을 보면 대만은 중소기업의 천국처럼 보인다. 대만 중소 제조업의 형태를 산업이나 정책적 기반으로 비교하지 말고 세계적인 전시회에 가서 직접 느껴보자. 세계적인 첨단산업의 전시회에 가보면 대만이라는 국가관의 규모에 놀라게 된다. 미국, 프랑스, 영국, 캐나다 등의 국가관의 규모야 선진국이니까 하고 당연시해 보아도 「CeBIT 97」 첨단 박람회를 통해 본 대만의 실체는 우리나라 실정으로 보면 도저히 이해가 안간다. 곳곳의 박람회 섹션마다 부스가 적게는 30∼40개, 많게는 섹션의 3분의 2가 넘는 1백여개 부스가 대만이라는 국가관 아래 많은 중소 제조업체들이 세계에서 몰려든 바이어를 상대로 개미떼처럼 상담을 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우리나라는 소수의 대기업 말고는 전시관을 다 돌아도 겨우 몇 부스의 무역 오퍼상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대만에서 출품한 대부분의 제품이 첨단산업의 독특한 아이디어가 있는 벤처기업의 제품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들의 제품은 지극히 범용적이며 지극히 기초에 충실한 제품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독특한 아이디어 제품도 있지만 대부분은 중소업체들이 하기 좋은 컴퓨터 및 통신기기의 사소한 기구물이나 하우징 또는 일반적 제조에 필요한 부품이다. 그러한 일반적 제조물로 세계의 구매자들과 실질적인 상담과 수출을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중소 제조업을 운영하는 이들에겐 세금을 깎아준다든가 금융지원을 해준다든가 하는 요란한 정책이 능사는 아닐 듯싶다. 실질적으로 제조업을 어떻게 육성해야 할지 정책실무 담당자들을 세계의 유명 전시회에 내보내 전시회 곳곳에 숨어있는 중소업체들의 국가경쟁력에 점수를 매겨가며 우리나라 기업의 장래를 계획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필자가 운영하는 무정전전원장치(UPS) 산업만 해도 CeBIT97 박람회에 대만의 중소기업은 40여개사에서,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은 30여개사에서 출품했다. 1981년에 창립한 미국의 A회사는 UPS 단일품목으로만 지난해 7억달러어치를 판매하는 등 첨단산업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는데도 국내서는 첨단산업이 아니라서 정보화촉진자금을 지원해줄 수 없다고 한다.

무엇이 첨단산업이고 무엇이 벤처기업인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의 미래를 보아 어떤 제조업을 육성해야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것인지 다함께 생각해보자.

<權容珠 크로스티이씨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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