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진단] 日, 디지털 TV방송 왜 앞당겨 추진 하나

일본 우정성이 최근 TV의 디지털방송을 2000년부터 시작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같은 발표는 당초 계획보다 5년 앞선 것이어서 관련업계에서 상당한 충격을 받은 눈치다.

그러나 방송의 디지털화가 세계적인 추세라는 점을 감안, 업계에서도 정부의 계획에 따른 투자시기 조정 등 전반적인 계획수정에 나서고 있어 일본의 지상TV의 디지털화는 갑자기 활기를 띠고 있다.

일본 정부가 이번에 TV방송과 관련, 새로운 계획을 내놓은 방식은 극히 이례적인 것이었다. 그동안 일본의 정책결정은 의회에서 사전에 간담회를 개최해 관계자들의 의견을 집약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였다. 특히 방송정책의 경우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은밀히 물밑에서 사전조정을 하는 것이 당연시 돼왔다. 그런데 새로운 정책의 발표가 정례 기자회견장에서 우정성 행정국장에 의해 터져나왔다.

이번에 발표된 새로운 정책은 표면적으로는 TV방송의 디지털화를 5년 앞당기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어지러울 만큼 빠른 속도로 기술이 발전하고 있는 시대에서의 5년은 10년이나 20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처럼 중요한 정책이 한 번의 사전조정도 없이 결정돼 발표된 것이다.

과거 일본에서는 하이비전정책 추진과정이 물의를 빚은 적이 있었다. 사전조정이 이뤄지지 않은 가운데 당시 담당국장의 실수로 내용이 공개됐다. 이는 결국 하이비전 논쟁의 불씨가 돼 한동안 업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이번 우정성의 TV방송 디지털화 정책도 또다른 하나의 실수였다면 또 다시 논쟁거리가 될 뻔 했다. 그러나 이번 정책발표는 우정성의 계획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는 점이 하이비전의 경우와 다르다. 우정성은 이번 발표과정의 당위성으로 「행정부가 정책을 내놓고 이후 의견을 모으는 서양의 정책결정방식이 투명성이 높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업계의 불만을 일축하고 있다. 따라서 업계에서는 논쟁의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충격이 가라앉으면서 당국의 결정에 맞춰 계획 앞당기기에 나서고 있다. 업계에서도 경쟁국에 비해 떨어지고 있는 기술경쟁력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정성이 이처럼 전례없이 기습적인 신정책 발표를 하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우선 디지털 방송부문 주요 경쟁국인 영국과 미국의 경우 TV방송의 디지털화 도입시기가 내년으로 다가와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일본 방송계는 지난 90년에 하이비전이 미국의 차세대TV 규격경쟁에서 패배하고 난 뒤 TV방송의 디지털화 추진을 위한 각종 기술에서 위성을 제외하고는 뒤처진 형세를 만회하지 못하고 있다. 우정성은 기존 계획대로는 이 격차를 만회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격차를 메워나가기 위해서는 방송시기를 앞당기고 동시에 업계에서 경각심을 줄 수 있는 충격요법으로 전례없이 기습적인 발표라는 방법을 선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또다른 관점에서는 2000년께 운용을 시작할 차기 방송위성(BS-4 다음 위성)의 이용방법을 결정한 것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정성은 TV방송의 새 정책을 발표한 지난 10일 이 위성을 디지털방식으로 이용한다는 결정을 같이 발표했다.

이는 지상파와 위성이라는 2개의 기간방송미디어가 같은 시기에 디지털로 변화된다면 한꺼번에 채널 수가 증가하는 이점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고려됐다.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가다.

현재 상태로라면 지상파 미디어의 방식은 연속성을 고려해 기존 방송국에 일임될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기존 방송국들은 우정성과는 다른 생각을 해왔다. 따라서 그들은 지상파 미디어는 물론 위성미디어부문까지 참여하겠다는 요청을 강하게 제기할 것으로 예상돼왔다.

우정성의 입장에서는 기존 방송국에 양쪽 모두를 승인하는 것을 바람직하지 않게 보고 있다. 이렇게 되면 기대하고 있는 방송의 다양화 및 경쟁촉진이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책의 기습적인 발표는 기존 업체에 두 마리의 토끼를 쫓을 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사전 조정작업을 거칠 경우 논란을 거치는 동안 이번 결정처럼 디지털방송 시작시기를 대폭 앞당기는 것이 어렵게 되고 이는 방송국에 지상파는 물론 위성미디어까지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게 해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전격 발표작전을 치른 우정성 수뇌들의 머리 속에는 「지상파는 기존 방송국, 위성파는 신규사업자」라는 밑그림이 이미 그려져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이번 우정성의 TV방송 디지털화 기습발표는 어쨌든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향후 영국과 미국을 따라가기 위한 일본업계의 노력이 어떤 형태로 가시화할지 주목된다.

<박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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