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경쟁력 향상을 위해서는 현재 우리 경제에 만연되어 있는 저효율, 고비용 구조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최근 빈번하게 제기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때일수록 연구소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기업부설 연구소를 회원사로 둔 협회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요즈음 연구소와 연구원들이 겪고 있는 애환을 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민간부문의 연구개발비(R&D) 투자가 국가 전체 R&D 예산의 80% 이상이기 때문에 기업체 부설 연구소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외부적인 관심과 기대수준이 높아질수록 일선에서 R&D 관련업무를 진두지휘해야 하는 연구원들이 최근 겪고 있는 고충은 일반인들의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최고 경영진의 기대수준이 너무 높다』고 지적한다. 사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80년대 중반부터, 특히 90년대 이후 연구소에 앞다투어 대규모 투자를 감행했다. 그들이 요즈음 「그동안의 투자에 부응할 만한 연구 성과물을 내놓아야 할 것 아니냐」고 강조한다.
따라서 기업의 발전을 획기적으로 앞당길 수 있는 최첨단 수준의 기술개발 실적을 올리지 못한 연구원들은 요즈음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 실토한다. 그들은 그동안 공정개선 등을 통해 기업의 전반적인 기술수준을 높였다고 주장하지만 이러한 공헌을 높이 평가하는 경영자는 그리 흔하지 않다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새로 개발된 기술이 상품화까지 성공할 확율이 지극히 낮은 화학, 소재분야 연구원들에게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미국 MIT대학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 두 분야에서 앞으로 개발될 수 있는 혁신기술은 거의 고갈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즉, 30∼40년대 이 두 분야의 기술혁신은 약 40건 이루어졌으나 50,60년대에는 20건, 그리고 70,80년대에는 불과 3건만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처럼 기술개발의 어려움이 증가함에 따라 최근들어 기술개발 전략마저 「핵심기술만 자체 개발하고 그밖의 기술은 모두 외부조달(Outsourcing)하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관점에서 경제협력이 유행처럼 번지고 연구개발뿐만 아니라 판매망의 확충, 부족한 자원의 상호보완, 공동의 시장석권을 목적으로 기술개발의 전략적 제휴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나라 기업이 가지고 있는 핵심기술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전략적 제휴가 대등한 기술력을 보유할 때에만 기능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핵심기술은 자체 개발, 나머지 기술은 외부조달이라는 전략은 일부 기업을 제외하고는 무의미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기업의 연구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기술개발전략의 수단은 크게 한정되어 있다. 연구원들은 무슨 과제를 어떻게 연구해야 할지 몰라 큰 고민이라고 실토한다. 또 R&D 부문의 구조재조정(Restructuring) 문제가 최근 여러 연구소에서 「뜨거운 감자」로 부상함에 따라 연구원들의 고민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가 기술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일종의 통행세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경우에도 80년대 중반 일본의 추격에 시달릴 때 R&D 부문의 불필요한 조직을 통, 폐합하는 구조재조정을 단행하는 한편 동시공학적 엔지니어링 등 새로운 개념의 연구개발 기법을 과감하게 도입, 큰 성과를 거둔 바 있다. 세계 최고의 기술보유국인 미국도 R&D부문의 생산성을 제고를 위해 한때 이처럼 「제 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겪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金勝宰 산업기술진흥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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