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소비자 보호연맹이 해적판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무단으로 판매하는 얌체 상인들의 적발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법원이 해야 할 일을 소비자보호 단체가 이같이 맡고 나섬으로써 소송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손해보상이 빨리 이루어져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모스크바에서 해적판 소프트웨어가 주로 나도는 장소는 미친스크 라디오 시장 등 일부 공개 시장과 지하 통로들의 키오스크로 손꼽히고 있다. 이곳에서는 디스켓이나 컴팩트 디스크에 담긴 최신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정상 가격의 수십 배 내지 수백분의 1밖에 하지 않는 값싼 가격에 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다.
소비자 보호 연맹의 직원들은 이들 무단 복제품 소프트웨어 유통시장을 돌면서 인기가 있는 제품을 표본으로 구입, 소프트웨어 제작자의 허가를 받지 않고 팔리는 제품으로 판명되면 러시아 정부기관인 「반독점 정책과 새로운 경제 구조 정착을 위한 위원회(약칭 반독점위원회)」에 고발,소비자들에게 물질적인 손해 보상과 정신적인 피해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무단 복제 소프트웨어를 구입한 사람이 정신적 피해까지 받는 이유는 정식 제품과 해적판을 구별할 수 없는 소비자들이 일정한 시일이 지난 뒤 소프트웨어 판매회사에 새로운 버전으로 교체하러 갔다가 『이 제품은 해적판이기 때문에 우리가 새 버전으로 교환해 줄 수 없다』고 거절, 모욕을 당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최근 떠들석했던 「회계 소프트웨어 1S」 소동도 러시아 소비자 연맹으로 인한 것이다. 시장경제로 돌아서면서 중소 법인들이 셀 수 없이 많이 생겨나고 있지만 러시아에서는 그동안 중소 기업의 회계 처리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대표적인 컴퓨터 프로그램이 없었다. 그런데 지난해 1S사라는 조그만 소프트웨어 개발회사가 회계소프트웨어 1S를 개발, 중소 기업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자연히 이 프로그맴의 해적판이 대도시를 중심으로 나돌기 시작했다.
그런데 소프트웨어 개발회사가 저작권보호를 내걸면서 사법당국과 법원에 아무리 컴퓨터범죄를 고발해도 검찰과 법원은 묵묵부답이었다. 『살인사건이 판치는 세상에 우리더러 소프트웨어 절도 사건을 다루라는 말이냐? 그럴 시간과 인력이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기 때문이다.
남의 소프트웨어를 무단으로 복제하고 이를 판매하는 행위가 러시아 저작권법으로 엄연히 금지되어 있는데도 법원이 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자 이번에는 소비자 단체가 소비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직접 범법자 색출에 적극 나섰다. 소비자보호연맹은 오랜 추적끝에 모스크바의 모스콥스키 백화점에서 영업하고 있는 나이스라는 한 컴퓨터 제품 취급점이 진품과 전혀 구별되지 않는 회계 소프트웨어를 판매하고 있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나이스 가게에는 허가받지 않은 제품이라는 기미를 보이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디스켓 상에 소프트웨어 제작회사의 고유 번호까지 색인, 소비자들을 속여온 사실이 조사결과 드러났다. 이 가게는 곧바로 소비자 보호연맹에 의하여 정부 반독점 방지 위원회에 고발되어 백화점과 이 가게와의 임대차 계약이 파기되고 제품을 구입한 소비자들에게도 판매가 반환과 정신적인 피해 보전을 위해 막대한 금액을 지불해야만 했다.
러시아에서 컴퓨터 범죄가 처음으로 처벌된 것은 1991년 에카테린부르크 시에서 「아그르프롬 시스테마社」라는 한 기업의 컴퓨터 프로그램 제품을 「콘루르」라는 금융회사가 무단으로 사용했다가 법원에 의해 벌금과 손해 배상을 판결받은 사건이다. 그 이후 소프트웨어 무단복제와 무단 판매를 비롯한 컴퓨터 범죄가 속출하고 있으나 법원은 앞서 언급한 대로 이들 컴퓨터 범죄가 소송으로 비화하는 것을 스스로 꺼려왔다.
한편 컴퓨터범죄는 갈수록 정교해져서 디스켓상으로 진품과 가짜 제품을 식별하기가 점차 어려워져 가고 있다. 해적판 소프트웨어들 또한 원래의 소프트웨어 제작자의 주소와 전화 번호는 물론 원 제작자의 등록번호까지 명기하고 있어서 소비자들은 현혹당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최근 모스크바를 찾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스티브 발머 부회장 또한 『소비자 보호연맹이 해적판 소프트웨어의 속출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이 우리들 소프트웨어 제작 회사들에게 물질적으로 큰 도움은 되지 않고 있지만, 소프트웨어 유통시장을 정상화한다는 의미에서는 뜻이 있다』고 평가하고 『이런 운동이 러시아 전역으로 확대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1S사의 보리스 누라리예프 대표도 『우리 회사 또한 모스콥스키 백화점이나 나이스 가게로부터 일체의 금전 배상은 받지 못했지만 소비자 보호 연맹의 활동과 정부 반독점 위원회의 조치를 환영한다』고 말하고 『그러나 앞으로는 이런 지적 재산권 절취 사건이 법원에서 다루어져서 컴퓨터 소프트웨어 유통 질서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희망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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