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99)

국가 안위와 정권유지를 위해 시행된 우리나라의 봉수통신제도는 국민은 물론 국왕도 관심이 지대하여 목멱산 정상(지금의 서울타워 부근)에 봉수대를 설치, 항상 국왕이 잘 볼 수 있도록 하였다.

하지만 봉수통신제도는 관리와 운용의 어려움으로 더 이상 진보를 이룩하지 못한 채 16세기 이후 거의 황폐화했다. 그렇게 된 간 가장 큰 원인은 봉수통신의 구조적 문제 때문이었다. 엄한 처벌에도 불구하고 거의 희박한 변란에 대비하여 봉졸이 항시 전방을 바라보고 있을 수 없었고, 일기 불순 등으로 봉화신호를 주고받지 못할 경우 반드시 이전 봉수대까지 쫓아가 봉수가 중절된 사유를 알아내어 이후 봉수대로 거화해야 하는 등, 봉수통신제도의 근본적인 어려움 때문이었다.

긴급통신망으로서 그 역할을 다하던 봉수통신은 이후 말을 이용하여 사람이 직접 정보를 전달하는 파발(擺撥)제도에 그 역할을 넘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다. 하지만 봉수통신 자체는 허구화되었으나 법적으로는 계속 존재했다. 그 이유는 봉수 자체가 각 고장의 가장 높은 곳의 전략적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그곳까지 법령이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어 당시 정치와 왕권이 계속적으로 유지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봉수통신제도는 외세의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일어난 의병 활동과 독립투쟁에 일부 활용되기도 하였으나 19세기 말 전기통신이 도입되고 난 후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최 과장, 절체 이상 없이 진행되고 있소?』

김지호 실장은 광단국으로 들어서면서 최 과장에게 물었다. 통신 회선을 직접 절체하는 곳은 광 단국이었다.

『아, 실장님.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절체코드도 추가로 확보되었습니다.』

『위성회선은 그대로 두고 절체하고 있는 것이지?』

『그렇습니다. 위성에 걸려 있는 회선은 절체하지 않고 있습니다.』

『남산중계소와 연결되어 있는 마이크로 웨이브는 절체 끝났나?』

『예, 마이크로 웨이브 회선의 절체는 이미 끝냈습니다. 한강 이남지역에서 올라오는 중요회선을 절체시켰습니다. 회선 상태 양호합니다. 하지만 회선수가 적어 통신망의 흐름에 도움은 주지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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