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위기가 곧 기회

지난 3, 4년간 PC수요의 증가로 호황을 누렸던 반도체 산업은 96년 PC수요 감소와 윈도95의 예상외 판매 부진으로 급격한 가격 하락세를 맞게 됐다. 특히 지난해 반도체 가격의 하락은 D램이 주도했는데, D램에 많이 의존돼 있는 국내업체들에는 큰 충격이었다. 그로 인해 지난해 한국경제가 겪게 된 총체적 위기의 원인은 반도체 산업의 부진한 실적 탓으로 돌리는 의견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90년부터 연평균 30% 이상의 수출 신장으로 국가 전체 수출의 약 20%를 차지하며 한국산업의 기둥역할을 하고 「산업의 쌀」 「마법의 돌」 등으로 불리며 호황을 구가하던 반도체 산업의 수출이 96년에는 예상치의 절반에 그쳤던 것이다. 한국경제가 총체적 위기를 맞게 된 원인을 반도체 산업에만 돌리는 것에는 문제가 있겠지만 국가 경제의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침체 국면에 있는 국가 경제의 회생을 위해 술기롭게 위기를 극복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할 것이다.

반도체의 가격하락이 현재의 위기상황을 초래하긴 했지만 이것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반도체 호황기에 반도체 사업진출을 발표했던 여러 기업들이 투자를 보류하게 됐고, 기존업체들 중에서도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업들은 도태되고 경쟁력 있는 소수 기업의 생존으로 인해 업계가 재편되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D램 위주의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이 불황을 계기로 메모리 위주에서 탈피해 사업구조를 개편하는 움직임을 활발히 진행하게 된 것도 불황이 가져온 긍정적인 측면이라 하겠다. 이와 같이 기업경영에 있어서 위기는 항상 존재하게 마련이지만 위기에 어떻게 대비하느냐에 따라 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반도체 불황으로 인한 어려움보다는 긍정적인 측면을 살려 위기를 기회로 승화시킬 때, 세계적인 초우량 반도체 회사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어려운 시기라 할지라도 연구개발(R&D)투자가 꾸준하고도 적극적으로 수행돼야 할 것이다. 반도체 산업은 다른 어떤 산업보다도 기술진보가 빠르고 제품 사이클이 짧아 적기투자가 요구되는 최첨단의 대규모 장치산업인 만큼 어려운 때일수록 정확한 판단력으로 적극적인 R&D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자체 개발력을 강화하기 위해 우수한 인재를 발굴, 양성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선진업체 및 벤처기업과의 기술협력 또는 분담을 위해 투자하는 것도 중요하다. 스스로 소유하지 못한 것이라면 다른 기업의 능력을 재빨리 활용할 줄 아는 것도 경쟁력이 될 것이다. 자체 개발에만 의의를 두고 자원을 집중할 것이 아니라 최고의 효율을 고려해 선진기업을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R&D기지도 국내에만 둘 것이 아니라 고객의 니즈를 즉시 파악, 반영할 수 있고 선진기술 습득이 용이한 해외에 설립해 세계적인 R&D네트워크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제품의 대부분을 수출하는 국내 반도체 업체들로서는 세계의 고객을 상대로 최고의 만족을 제공하기 위해 R&D뿐 아니라, 생산, 판매 등 비즈니스 프로세스 전반에 걸친 세계화가 필수적이다. 특히 납기가 생명인 반도체를 적시에 공급하고 적극적인 서비스 활동을 전개하기 위해, 또한 적극적인 통상마찰 대응을 위해 생산 및 영업의 현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이러한 사실을 일찍이 인식해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해외투자를 전개했고 앞으로도 단계적으로 현지화를 진행할 것이다.

또한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제품구조의 혁신은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공통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약 34%를 차지하는 메모리 분야에서 국내 업체들은 확실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이제는 메모리 분야에서 갖춘 경쟁력을 가지고 비메모리 분야를 공략할 때다. 비메모리 반도체는 그 시장이 광범위하고 적용분야도 다양하며 불황으로 인한 타격이 그다지 크지 않은 시장이다. 향후 성장성과 가능성이 무한한 비메모리 분야를 집중 육성하기 위해 지속적인 R&D투자와 함께 해외 선진업체와의 전략적 제휴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비메모리 분야의 성공을 위해서는 창의성과 뛰어난 설계력을 갖춘 인재가 밑받침돼야 한다. 그러므로 산학지원 등을 통해 우수한 인재를 조기에 발굴하고 육성해야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위기를 기회로 승화시키는 힘은 인재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기를 단순히 위기로 보지 않고 그것을 성공을 위한 기회로 보며, 또한 한 번의 성공이 또 다른 성공을 보장하지 않음을 인식하고 끊임없이 발상의 전환을 추구하는 인재들이 요구된다. 이들이 제품구조 혁신을 위해 R&D를 주도하고 세계적인 감각으로 전세계의 고객을 상대로 활동할 때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은 반드시 극복될 것이며 세계적인 초우량 반도체 회사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文程煥 LG반도체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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