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가 그런 경쟁업체들과 맞설 수 있다고 스스로 생각했던 근거가 무엇일까? 그것은 간단하다.
그는 자신의 뛰어난 언변을 믿었던 것이다. 넥스트스텝 486 소프트웨어의 이름을 바꿔 불렀던 인텔을 위한 넥스트스텝은 객체지향형 운용체계라는 특수분야에 속하는 기계라고 잡스는 말했다. 잡스는 윈도즈NT 같은 것은 신경쓸 필요도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윈도즈NT의 후속 주자가 될 카이로와 IBM과 애플의 합작회사인 텔리전트사가 곧 발표할 소프트웨어가 넥스트스텝의 유일한 경쟁 상대였다. 그러나 카이로와 텔리전트사의 소프트웨어가 발표되려면 아직 멀었기 때문에넥스트는 93년 2월 한 잡지에서 "적어도 2년 동안은 우리의 경쟁 상대가 없다"고 큰 소리쳤다.
넥스트가 소프트웨어 회사로 전환하려고 할 당시 한 말들을 되새겨 보면 잡스는 그 전해 참가했던 컴덱스 쇼에서 다른 업체들과 다르게 행동하는 것만이 좋은 해결책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것 같다.
넥스트는 또 2월에 "넥스트스텝 소프트웨어는 완벽하게 완성되어 발표될 준비가 되었다"는 광고를 너무 성급하게 게재했다. 사실 그것은 완벽과는 거리가 멀었다. 버그가 발견되었기 때문에 인텔을 위해 넥스트스텝의 발표를 지연시켰던 것이다.
"오늘 우리는 오랫 동안 검은 상자 속에 숨겨졌던 넥스트스텝 소프트웨어를 발표할 것입니다"라는 광고를 냈을 당시 넥스트는 아직 베타 테스트도 받지못한 상태였다.
소비자들은 또 잡스가 마이크로소프트, IBM 및 애플과의 한판 승부를 선언해 놓고 경험있는 경영진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남아 있던 피터 반 큐렌버그를 왜 내쫓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잡스는 일년전만 하더라도 "내가 만일 교통사고를 당하면 반 큐렌버그 사장에게 모든 업무를 맡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를 신임했었다. 잡스가 다른 사람을 반 큐렌버그의 자리에 앉히기 위해 그를 내쫓은 것은 아니었다.
잡스는 회장직과 사장직을 겸임하고 싶었던 것이다.
잡스가 회사의 모든 권력을 독점하기로 결심함에 따라 반 큐렌버그의 자리가 없어지고 말았다. 넥스트 직원 대다수를 감원하는 일을 충성스럽게 수행해 온 그는 자신도 감원 대상에서 제외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잡스는 넥스트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공격을 개시한 시점에서 반 큐렌버그를 제거함으로써 왜 스스로를 고립시켰을까? 잡스는 빌 게이츠와의 오랜 경쟁을 극적으로 청산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과 게이츠, 일대일의 승부가 돼야 했다.
잡스가 홀로 남았다는 소식이 퍼지자 사람들은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잡스의 고립은 사업상으로 볼 때 심각한 문제였다. 93년 3월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즈NT 발표가 임박했을 무렵 수십억 달러의 자본 규모를 가졌던 선 마이크로시스템즈, 노벨, 휴렛 패커드 그리고 IBM조차도 혼자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위협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들 4개 업체와 산타 크루즈 오퍼레이션사는 93년 3월 한자리에 모여 앞으로는 더이상 소모적인 경쟁을 하지 말자는 약속과 함께 그 대안을 구상했다. 이들은 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 시스템이 하나의 "대쉬보드"를 공유하여 서로 다른 유닉스 컴퓨터에서 같은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인터페이스, 네트워킹 및 여타 분야에서 서로 다른 유닉스 제조 방법을 조정하는 일정을 발표했다. 소비자들은 그 발표 내용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서로 경쟁했던 업체들이 협력체제를 구축할만큼 마이크로소프트는 컴퓨터 업계에 위협적인 존재였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넥스트가 그들에 합세하지 않은 것은 큰 실수였다고 지적했다. 선사의 소프트웨어 담당자였던 에드 젠더는 넥스트 소프트웨어가 5개업체에 의해 표준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것으로 검토됐지만 좀더 폭넓은 고객층을 확보한 업체가 대신 선정되었다고 말했다.
잡스는 넥스트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 뉴스에 대한 불만과 괴변 섞인 해명을 했다. 잡스는 얼마 남지 않은 넥스트 직원들에게 "월스트리트 저널"지는 선사 홍보실의 농간에 놀아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선사 홍보실은 5개업체의 협력체제에서 선사가 가장 핵심적 역할을 맡고 있다는 이미지를 주기위해 밤늦게까지 작업을 시켰을 뿐 아니라 넥스트의 평판을 떨어뜨리기 위해 "거짓말과 비방"도 서슴지 않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는 직원들에게 소문에 개의치 말라고 당부했다. 그날 잡스는 사실상 "넥스트의 승리"를 표명했던 것이다. 잡스는 선사가 "더욱 절박해지고" "가장 유력한 소프트웨어 업체가 되려는 그들의 열망"에 넥스트가 큰 위협이 되었기 때문에자신들을 공격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거절당하고 겁먹고 절박해하며 거짓과 비방에 의존하는 것은 넥스트가 아닌항상 다른 기업이었다. 넥스트를 수십억달러 규모의 회사로 키우려는 꿈을 가진 잡스가, 얼마 남지 않은 직원들과 아직 완성되지 못한 제품을 가지고 2억5천만달러를 투자하고도 8년 동안 계속된 적자를 해결하지 못한 잡스가, 그의 추종자들을 계속 이끌어 가기 위해 남들을 비방하는 것에 의존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는지도 모른다. 잡스는 비난 상대만 바꾸었을 뿐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그는 항상 빛과 어두움, 탁월함과 미천함, 혁신과 평범함의논리로 사물을 보았다. 악한 사람은 항상 선한 사람으로부터 위협당하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못미더워 하기 때문에 선한 사람을 잡으려고 애쓴다는 것이다.
자신을 집요하게 방어하려는 이런 사고방식은 과연 생존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 환경에 적합한 것일까? 아니면 부적합한 태도일까? 박람회의 성격상 라스베이거스는 아주 어울리는 개최지였다. 넥스트는 안전하게 보호된 사무실이나 심포니홀에서와는 다른 컴덱스의 경쟁적 분위기 속에서 경쟁이 치열한 퍼스널 컴퓨터시장에 입문하게 되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넥스트는 주사위를 다시 던지면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경쟁업체 가운데서 생존을 위한 싸움을 하기 위해 넥스트는 10명 중 한명은 죽는다는 다윈의 이론을 무시했다.
이 이론은 원래 폭동을 일으켰거나, 병사들이 의기 충만한 용기를 보이지 않을 때 그에 대한 처벌로 10명 중 한명의 병사를 제비 뽑아 대표로 죽였다는 것에서 유래된다. 이런 무작위 선출은 자연에서는 더욱 잔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연에서는 10개의 생명체중 9개가 사라지기 때문에 생존을 더욱 소중한 것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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