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컴퓨터 파노라마 (44);정착기 (8)

국가기간전산망사업 추진 계획 (하)-행정망 사업

지난 회에 언급한 것처럼 5대 국가기간전산망사업 추진계획 가운데 규모나 파급효과 면에서 압도적 비중을 차지했던 것은 행정전산망이었다. 정보산업에 대한 정부의 육성의지를 가장 잘 나타내 보이려고 했던 것도 행정전산망이었다. 그런 만큼 행정전산망사업 추진과정은 다른 4대망에 비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사전에 단 한 푼의 소요자금도 마련해 놓지 않고서 사업계획부터 만들어 낸 것이 말도 많고 탈도 많게 된 요인이었다.

행정전산망 사업계획에 대한 종합적인 윤곽이 처음으로 드러난 것은 85년 12월 청와대 비서실 경제수석실이 작성한 「국가기간전산망사업 관련사항 보고」 문건에서였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행정망에 대한 추진목표는 「작고 효율적인 정부의 구현」 「전국 어디서나 공평한 정보전달로 주민편의 증대」 「정보산업의 육성」 등 3가지였다. 또 주민관리, 부동산관리 등 각 부처에서 추려낸 42개 업무가 전산화 대상업무로 지정됐다.

일부 사업이 시작되는 86년부터 사업이 마무리되는 95년까지 10년간 소요될 자금은 모두 7천6백7억원이었다. 여기에 소요되는 주전산기는 2백83대, 다기능 사무기기(워크스테이션)는 2만7천9백24대, 전문인력은 2천8백30명이었다. 86년부터 5천대의 워크스테이션이 일선 기관에 보급되고 87년까지 2년에 걸쳐 국산 주전산기와 소프트웨어의 개발이 완료된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추진일정도 있었다.

행정전산망사업의 부처별 책임자는 각 부처 차관으로 정해졌고 총괄부처는 총무처, 전체 설계와 기술지원 전담기관은 한국데이타통신(현 데이콤)이 각각 맡도록 했다. 보고서 내용의 백미는 행정망사업에 참여하는 관련 부처가 많고 업무내용이 다양해 종합적인 조정통제기능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해 놓은 부분이었다. 이 보고서의 결론은 결국 당분간 이 조정통제기능을 대통령 직속의 국가기간전산망조정위원회가 맡게 된다는 애기였다.

물론 이같은 내용의 보고서가 87년 2월 완성된 최종판 「행정전산망 종합계획(안)」에 1백% 그대로 수용됐다는 것은 아니다. 86년 12월 「전산망 보급확장과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시행령」이 제정되고 난 직후 작성된 「행정전산망 종합계획(안)」은 85년 12월의 보고서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구체적으로 자세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러나 이 때의 보고서 내용 가운데는 후일 행정전산망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는 과정에서 없어서는 안될 결정적인 단서 하나가 들어 있었다. 바로 행정전산망사업 추진을 위한 자금조달방안이었다. 이 보고서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보면 이렇다.

1. 소요자금은 행정전산망 전담관리기관(한국데이타통신)을 통하여 선투자하고 행정망 완성 후 사용료로 정부예산에서 연차적으로 상환함.

2. 행정전산망 소요 컴퓨터시스템의 개발비, 구입비, 운영비의 종합지원이 가능토록 행정망 소요자금지원 전담회사를 한국전기통신공사 자회사로 설립해서 운영.

이 두개 항 가운데 1번 항은 이전 보고서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언급된 바는 있었으나 2번 항은 이 보고서를 통해 처음 제시된 자금조달방안이었다.

행정전산망에 대한 일련의 보고서나 계획안 내용은 그렇지 않아도 당시 정보산업계로부터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던 터였다. 기업 관계자들은 보고서의 자구 하나하나에 의미를 달리할 만큼 신경을 쓰던 터였다. 앞서 설명한 행정전산망사업의 목표에도 나와 있듯이 정부는 정보산업 육성을 위해 행정전산망과 관련해 가능한 모든 부분에 대해 민간업체 참여를 개방할 방침이었다. 당시로서 총소요자금 7천6백억원은 어마어마한 액수였다.

더욱이 그 규모만큼의 컴퓨터가 도입되고 소프트웨어가 개발될 경우 파급효과나 연계수요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었다. 그러나 구체적인 시행계획은 하나도 확정되지 않고 있었다. 기업들의 답답한 심정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이었다. 당시 삼성전자에서 컴퓨터영업을 담당하던 O씨(현재 미국체류중)의 회고는 다음과 같다.

『기업들은 국가기간전산망조정위원회나 청와대 비서실의 일거수 일투족에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기업의 관심사는 역시 하드웨어를 국산화해 공급하는 것과 소프트웨어의 수주개발 용역이었죠. 그러나 사실 행정전산망에 소요될 하드웨어가 국산이란 원칙만 정해졌을 뿐 구체적인 규격이나 개발방법은 제시돼 있지 못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전담기관으로 지정된 한국데이타통신 관계자들은 기업들의 집중적인 로비대상이 됐죠.』

85년 12월의 보고서에서 적시된 자금조달방안이 초미의 관심사가 된 사정도 이같은 분위기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사실 행정전산망사업 추진의 성패는 이 자금조달방안의 실현 여부가 쥐고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정부는 앞서 옮겨 놓은 보고서 내용 1번 항에서처럼 행정전산망사업에 예산의 선투입은 할 수 없다는 것이 기본방침이었다. 물론 그럴만한 정부 예산이 마련돼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야당이나 언론은 『단 한 푼의 예산확보도 없이 무슨 심산으로 행정망사업을 추진하려느냐』며 연일 청와대측에 화살을 퍼부어 댔다.

원래 행정전산망사업 관련 자금조달방안이 처음 문건화한 것은 84년 12월 국가기간전산망조정위원회가 작성한 「행정전산망사업 추진계획(안)」에서였다. 이 보고서에서 언급된 것은 그러나 「한국데이타통신이 선투자하면 사업완료 후 정부예산에서 사용료를 지불」한다는 식이었다.

그나마 이 정도라도 언급한 것은 다행이었다. 83년 7월부터 행정전산망 사업추진계획이 대내외에 공표되면서도 청와대나 국가기간전산망조정위원회는 각종 문건에서 자금소요 내역은 적시해 놓고 있으면서도 자금조달방안은 제시하지 않아 혼선을 초래했다.

행정전산망사업 추진에 대한 청와대와 국가기간전산망조정위원회측의 이같은 이중성은 85년 정기국회 예산심의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85년 5월 국가기간전산망조정위원회의 「국가기간전산망 중간보고 및 행정전산망 추진계획(안)」과 85년 12월의 「국가기간전산망사업 관련사항 보고」에서는 이미 86년부터 5천대의 워크스테이션을 일선 기관에 보급키로 하는 일정을 잡아놓고 있었다. 이같은 일정을 진행시키려면 당장 86년부터 정부예산이 집행되도록 해야 하는데 청와대 등은 85년 정기국회 예산심의안에 워크스테이션 구입비용안을 아예 상정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실제 워크스테이션 보급계획은 상당한 차질을 빚어 87년부터 본격적인 보급이 이루어기 시작했다).

85년 12월의 「국가기간전산망사업 관련사항 보고」에서 제시된 자금조달방안은 본격적인 행정전산망사업 추진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해 준 것은 사실이었지만 이를 구체화하는 데는 무려 1년이란 세월을 소비해야 했다.

한편 시스템설계와 소프트웨어개발 책임기관인 한국데이타통신은 예산이 확보되지 못해 2년여가 지나도록 행정전산망사업과 관련된 실질적인 업무는 단 한건도 처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용역사업분야는 국가예산에서 배제돼 있었고 예산회계법상 모든 예산은 사전심의를 거친 곳에만 집행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따라서 개발결과를 봐야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등 용역사업에는 예산집행을 위한 사전심의나 감리는 어떤 형태로든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 경제수석실이 행정전산망용 컴퓨터의 개발, 구입, 운영 등 소요자금을 지원할 전담회사를 한국전기통신공사 자회사 형태로 설립하겠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 자회사를 통해 모든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것이 청와대나 국가기간전산망조정위원회의 기본방침이었다. 한국데이타통신도 사업추진에 당장 활기를 띠었다.

한국전기통신공사가 직접 한국데이타통신에 투자할 수 없었던 것은 자금투자방식이 나중에 상환받는 금융사업의 형태를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전기통신공사 정관에는 금융사업을 할 수 없게 돼 있었다.

이런 배경 속에 86년 11월 한국전기통신공사가 1백% 출자해 출범한 회사가 한국통신진흥주식회사다. 한국통신진흥은 출범과 함께 86년 76억원, 88년 6백83억원, 88년 7백54억원 등 모두 1천5백13억원의 자금을 한국데이타통신에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역사적인 행정전산망사업 추진에 대한 물꼬가 터지는 순간이었다.

이어서 86년 12월에는 이같은 정부예산(한국전기통신공사는 엄연한 정부기관이었으므로)을 집행해주기 위한 사전 감리(심의)기관인 한국전산원의 설립이 완료된다.

한국통신진흥주식회사와 한국전산원 설립에 대한 법적 근거는 무었이었을까. 이 근거가 바로 오명 전 체신부 장관이 『이 법이 통과됐으므로 이제 하나의 줄거리가 잡힌 셈입니다』(본란 제42호 참조)라고 표현했던 「전산망 보급확장과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시행령」이다.

<서현진 기자>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