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96 전자산업 부문별 결산 (4);정보통신

올해는 한국 정보통신 1백년사상 가장 파란만장한 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그만큼 안팎의 변화가 극심했다는 의미다.

96년 국내 정보통신업계를 결산하면서 가장 먼저 짚어야 할 것은 통신사업분야의 구조개편작업이다.

27개에 달하는 신규 기간통신사업권 허가로 1백년 동안 외형적으로 독점 또는 과점형태로 유지돼온 국내 통신시장이 완전경쟁의 틀로 탈바꿈하는 기회를 맞게 된 것이다.

신규 사업자 선정으로 국내 정보통신업계는 엄청난 변화가 예상된다. 특히 개인휴대통신(PCS)을 비롯한 이동통신분야에는 예상하기 어려운 수많은 변수가 자리잡고 있다.

이처럼 많은 숫자의 사업자를 무더기로 선정한 기본적인 목적은 98년으로 예상되는 대외시장개방에 효과적으로 맞서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장개방 이전에 국내 사업자들에게 경쟁상황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외국업체와 경쟁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겠다는 의미다. 경쟁에 따른 기술력 향상 등 부수적인 효과도 기대한다는 것이다.

통신장비를 제조하는 대기업에까지 PCS라는 대형 통신사업권을 허가한 것도 같은 이유로 풀이된다. 신규 사업자 가운데 무선통신분야는 PCS 3개 사업자를 비롯, 무선데이터통신 3개, 발신전용휴대단말기(CT2)부문에 11개(한국통신 포함), 주파수공용통신(TRS) 6개, 무선호출 1개 등 24개에 이른다. 기존 2개 이동전화사업자와 10개 무선호출사업자, 한국TRS 등 13개 사업자를 포함해 총 27개의 무선통신사업자가 물고 물리는 싸움을 벌이게 되는 것이다.

이번 사업자 선정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첫 단추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경쟁력」이라는 최종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거쳐야 할 난관이 수없이 많다는 뜻이다. 이미 사업자 선정 이전부터 미국은 물론 유럽국가들까지 급팽창할 것으로 예상되는 국내 통신장비시장에 파상적인 개방압력을 가해온 것에 통신업계는 긴장하고 있다.

우선 가장 급한 불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인력과 낙후된 통신장비산업을 일정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일이다.

우선 인력 문제의 경우, 신규통신사업자들이 사업개시를 위해 97년말까지 필요한 기술인력은 약 2천7백명으로 추산되는 데 비해 신규 사업자들이 확보한 인력은 1천5백여명에 불과하다. 당장 1천명이 넘는 인력이 부족한 셈이다.

통신장비 및 인력확보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경쟁체제에 따르는 각종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준비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무려 40개가 넘는 통신사업자가 사활을 건 경쟁을 벌이면서 발생하는 각종 분쟁을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마련이 대표적인 현안이다.

PCS, CT2 등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통신수단의 등장과 다수의 사업자 출현은 이제 소비자들로 하여금 통신서비스 이용의 폭을 크게 넓힐 수 있도록 했을 뿐 아니라 품질의 향상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올해부터 본격적인 경쟁체체에 돌입한 이동전화와 시외전화는 소비자들에게 경쟁의 수혜를 만끽하게 했다.

특히 한국이동통신과 신세기통신의 이동전화시장 쟁탈전은 「구경꾼들에게는」 올해 국내 통신서비스시장의 백미라 할 만했다.

제2사업자인 신세기통신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가 사치품으로 여겨질 정도로 서민들에게는 쳐다보기 힘든 물건이었던 이동전화기 가격을 최하 10만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떨어뜨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에 따라 이동전화기를 공짜로 주는 상황이 조만간 현실화될 것이라는 데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연말부터 10초당 8원짜리 발신전용휴대전화(CT2)가 선보이는 데다 내년은 개인휴대통신 서비스를 앞둔 사업자들의 신경전이 극에 달할 전망이기 때문이다.

이동전화시장의 경쟁은 코드분할다중접속(CDMA)방식이라는 디지털 이동전화의 신기술이 한국땅에서 꽃을 피우는 데에도 결정적인 몫을 했다.

CDMA라는 하나의 실탄만으로 시장진입에 성공한 신세기통신의 사례나 양사를 합쳐 70만명에 달한 CDMA이동전화 가입자수를 볼 때 CDMA는 누가 뭐래도 상용화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CDMA기술의 성공은 정부와 기술자들의 고집과 땀을 바탕으로 한국의 통신기술을 한 단계 끌어올린 사례로 한국 통신사에 기록돼야 할 것이다.

한국통신과 데이콤의 시외전화 경쟁도 올해 통신시장을 결산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최근 회선자동선택장치(ACR)의 무단철거여부를 놓고 법정공방에까지 이르게 된 한국통신과 데이콤의 경쟁은 이동전화처럼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양사로서는 사활을 건 싸움이었다.

물론 소비자들에게는 시외전화 및 국제전화 요금인하라는 혜택을 가져다 주기는 했지만 고발사태까지 이른 양사의 싸움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예측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

올해는 98년 통신시장 대외개방을 앞두고 국내업계의 경쟁력 강화라는 대전제 아래 출발한 구조조정 게임의 전반전이었다. 후반전이 될 97년에는 올해 선정된 신규통신사업자들이 일제히 서비스를 개시할 예정이어서 통신시장 전면경쟁의 메인 이벤트는 내년에 이루어질 전망이다.

통신서비스부문의 경쟁확대가 내적인 변화라면 세계무역기구(WTO)로 상징되는 외적인 변화의 흐름도 96년의 핫 이슈라고 할 수 있다.

세계로 향하는 문이 열리면서 동시에 우리의 문을 개방해야하는 WTO체제에서 생존할 수 있는 다각적인 방안이 추진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표적인 정책이 바로 초고속정보통신 기반 구축을 통한 정보통신 하부구조의 마련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이에 따라 지난 6월 정통부내 각 실, 국과 각 정부부처 파견조직인 초고속정보통신기획단에 분산돼 있던 정보화촉진 관련 기능 및 체제를 정보화기획실로 일원화하는 충격요법까지 동원했으며 급기야는 대통령의 정보화전략이라는 거창한 행사를 통해 정보통신기반 구축사업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올해는 정보화촉진기본법이 본격 시행되는 정보화 원년이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기록이다. 이와 관련, 정부는 지방화시대 본격화에 대비한 지역정보화와 국민편익증진과 정부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공공부분 정보화, 그리고 산업경쟁력 강화를 지원하기 위한 산업 정보화 등 다각적인 정보화 시책을 펼쳤다.

다만 기본 인프라의 부족과 시행착오로 실질적인 정책보다는 「전시행정」이 주류를 이뤘다는 따가운 비판도 적지 않았다.

최근 정부는 정보통신기반 구축과 정보통신산업 육성이 최근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경기불황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해석을 내리고 있다.

통신부문을 필두로 컴퓨터, SW, 영상소프트웨어 및 방송에 이르는 정보통신 전분야에 강력한 육성의지를 시간이 날 때마다 강조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규제 일변도 정책의 대명사였던 무선통신분야를 중심으로 정부의 규제가 대폭 완화되기 시작한 것도 96년도 정보통신 정책의 큰 흐름으로 분석된다.

결론적으로 국내 정보통신부문의 96년은 국경없는 자유무역시대라는 대외적인 환경변화에 대한 내성을 기르기 위해 치열한 내부적 변혁을 추진한 한 해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최승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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