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분야의 기술발전 속도가 하루가 다르게 빨라지고 있다. 정부주도의 기술개발체제에 익숙해져 있는 국내 기업들의 연구개발 환경도 이에 맞는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정부 및 국책연구소가 모든 기술을 개발하고 여기에 일부를 투자하는 방식으로 참여한 기업이 기술을 전수받아 상품화하면 이에 대한 판로를 정부가 직접 책임져 주는 지금까지의 방식은 정보화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돼고 있다.
전자신문사가 마련한 「정보통신의 미래를 생각하는 모임」은 여덟번째 모임의 주제를 「정보화 시대의 기술개발」로 정하고 향후의 바람직한 기술개발체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편집자 주>
▲백만기(특허청 항고심판관)=정부가 심판자, 조정자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얘기는 80년대부터 있었으나 앞으로는 진정한 의미의 민간 주도가 정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과거의 국책 프로젝트 가운데 메모리 반도체가 성공사례로 꼽히는 것은 민간기업의 역량을 1백% 활용했기 때문으로 봅니다. 정부가 민간의 기술개발 기반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제공하느냐의 여부가 세계무역기구(WTO)체제 하에서 성공하는 국가로 남느냐를 좌우할 것입니다. 그러나 중소, 중견, 벤처기업에 대해서는 이들의 성장기 리스크를 정부가 지원해 주어야 합니다. 대기업에 대한 직접 지원은 줄이고 중소기업의 스타 비즈니스를 키우는 정책을 수행해야 합니다.
▲김성철(LG전자 커뮤니카토피아연구소 책임연구원)=정보화가 진행되면서 지나치게 미디어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어떤 정보를 생산할 것이냐보다 어떻게 치장하고 얼마나 영향력을 확대하느냐에만 매달려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진정한 정보복지를 이룩하려면 정보의 가공에만 치우치지 말고 원천정보를 많이 생산하려는 노력도 뒷받침돼야 할 것입니다.
▲이홍순(삼보컴퓨터 전무)=앞으로 한국기업의 기술개발도 세계시장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고 볼 때 시스템 중심의 개발전략은 무리라고 봅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등 세계적인 기업들도 시스템이 아닌 부분품 업체라는 점을 상기해 볼 때 국내 기업도 컴포넌트 즉 부분품 중심의 개발전략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요.
▲이종희(모다정보통신 대표)=중소기업 육성 이야기를 자꾸 하면 중소기업에 특혜를 주라는 얘기처럼 비칠까봐 우려됩니다만 중소기업의 생존능력을 키워달라는 이야기입니다. 옛날에는 아이를 낳아도 백일이 지나기 전까지는 호적에도 올리지 않았던 것처럼 요즘 중소기업 사정도 마찬가집니다. 많은 중소기업이 호적에 오를 수 있도록 생존능력을 키워주는 것, 이것이 정부가 해야 할 중소기업 육성정책입니다.
▲유영석(한국정보공학 대표)=한국의 대기업은 중소기업과 협력하기보다는 기본적으로 중소기업을 먹으려고 하는 자세를 버리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괜찮은 기술을 가진 중소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아웃소싱을 확대할 생각보다는 기업 인수 및 합병(M&A)이나 인력 스카우트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죠.
▲최양희(서울대 교수)=대학이 고급 기술인력 양성에 실패하고 있다는 지적은 우선 교수들이 잘 가르치지 못했다는 반성을 하게 합니다. 하지만 몇가지 변명을 하자면 외부 요구에 부응할 만한 여건이 안되고 있다는 점을 얘기하고 싶군요. 교수들이 연구에 전념할 만큼의 지원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는 유행성 연구를 좇아갈 수밖에 없겠죠. 물론 원천기반기술 개발에 전념하는 연구실도 많습니다만 현재 국책 연구과제들은 정보기술 개발과 맞지 않는 측면이 많습니다. 정보기술을 1년, 3년 단위로 설정해 프로젝트를 설정하는 것은 정보기술 개발에 맞지 않는다는 얘깁니다. 교과과정 한 번 바꾸려면 5년이 걸린다든지 기업의 지원으로 수행한 연구결과가 기업에 귀속돼 지속적인 연구가 불가능하도록 만든다든지 하는 제도상의 문제점도 지적하고 싶습니다.
▲송관호(한국전산원 표준본부장)=국책연구소에 대해 여러 가지 지적을 해주셨습니다만 국책연구소가 나름대로 발전하려면 평가제도가 재확립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공한 과제뿐만 아니라 실패한 과제도 드러내야 합니다.
▲김천사(두산정보통신 대표)=정보사회에는 알아야 할 게 너무 많아졌습니다. 기업도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이나 제역할을 못찾고 있는 혼돈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서 지적된 바와 같이 기업에는 노하우보다 노웨어(know-where)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노웨어를 알아야 기술개발 실패확률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죠. 정부나 국책연구소가 이러한 역할을 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나운환(재활정보센터 소장)=기술개발의 궁극적인 목표는 삶의 질 향상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정보사회가 진전될수록 사회적 약자층은 더욱 소외되는 경향이 심해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선진국에서는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층을 위한 기술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적어도 국책연구소에는 기술 휴머니즘을 실현하기 위한 이같은 연구부서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정리=최상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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