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한국인들은 각종 카드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다. 「플라스틱 머니」로 불리면서 화폐 혁명을 일으키고 있는 신용카드를 비롯 직불, 선불카드, 의류카드, 주유카드, 버스카드 심지어 최근에는 미장원, 빵집 등에서조차 회원제 카드 도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얼마 전 모 은행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성인 직장인들은 평균 4개의 신용카드를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여기에 회사의 신분카드, 백화점 카드, 기타 회원제 카드 1, 2개를 갖고 있다면 금방 10개를 넘어선다.
어지간한 직장인이라면 도대체 본인이 보유하고 있는 카드가 총 몇 개인지조차 알지 못할 정도다. 이 때문에 카드가 꽂혀 있는 지갑을 분실이라도 하면 카드회사에 분실신고를 하느라 엄청난 홍역을 치러야 한다. 정보화시대에 생활 편리성을 겨냥해 등장한 카드가 오히려 관리가 어려운 골칫덩이로 전락하고 있다.
카드 사용자들이 가장 불편하게 느끼는 것은 종류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아예 하나의 카드에 모든 기능을 집어 넣고 이를 통용시키면 훨씬 편리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이처럼 각종 카드가 홍수를 이루는 것은 카드 발행업체나 기관에도 문제가 있다. 이들 입장에서는 카드발행이 소비를 유도하고 관리를 손쉽게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굳이 통합형 카드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
실제로 현금인출기능까지 부가한 신용카드를 발행하고 있는 은행의 경우 올들어 직불카드를 선보이면서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다. 올 2월부터 6월까지 6백31만명의 회원을 확보했지만 이 기간 중 실제로 이를 사용한 사람은 30명당 1명에 불과했다.
카드 통합화를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요인은 운영 시스템의 개별화라고 할 수 있다. 즉 카드를 관리하는 컴퓨터 시스템을 기관별로 독자 구축, 호환성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호스트 컴퓨터 간의 프로토콜을 만들고 호환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기술적으로도 난제이지만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도 엄청나다.
국내 은행들이 현금 인출카드의 공동 사용을 이루는 것도 필요성이 제기된지 수년 만에 완성됐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이같은 시스템 도입을 체계적으로 조정할 기관이 없다는 것이다. 카드도입 주체에 따라 독자적으로 시스템을 결정하다보니 호환성 문제는 아예 뒷전으로 밀린다.
최근 서울시에 도입된 버스카드로 지하철을 이용하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일반 업체가 아닌 정부기관이 통제하는 곳일 경우 정부 차원의 종합 마스터플랜 아래 체계적으로 시스템이 도입되어야 추후 신규 서비스 및 확장시 호환성을 유지할 수 있지만 이런 장치가 없다.
특히 호스트컴퓨터를 비롯 대부분의 관련 장비를 외국업체의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에 호환성 문제가 대두될 경우 심각성은 더욱 커진다. 수년 전까지 만 해도 30만 달러 이상의 컴퓨터를 도입시 전산망 조정위의 승인을 받도록 해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했지만 최근에는 이마저도 없어진 상황이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반도체 칩을 부착, 여러가지 복합기능을 하나로 묶는 IC카드(스마트카드)가 등장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전자주민증이 대표적이다. 카드 하나에 사용자의 운전면허 의료보험 등을 비롯한 모든 행정기록, 인적사항 등을 담겠다는 것이다. 또 일부 기업의 경우 사원증을 아예 이같은 IC카드로 대체한 곳도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비판도 많다. 인터넷 쇼핑이 결제 카드의 보안성 취약으로 아직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개인의 모든 신상정보를 집약한 IC카드도 보안 문제를 해결할 못할 경우 정착이 어렵다는 것이다.
기술적 신뢰성 역시 아직 충분히 확보되지 못한 상태이다. 업계에서는 오는 2000년에 국내 IC카드 시장만 5천억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지만 전세계적으로 신뢰성 문제가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그래서 당분간은 지갑에 넣어두어야 할 카드의 숫자는 늘어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이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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