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를 웬만큼 사용할 줄 아는 사람으로 그래픽카드 스텔스(Stealth)를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대부분의 컴퓨터 내부에 내장되어서 우리에게 아름다운 그래픽영상을 보여주는 회로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미국의 실리콘밸리에 있는 다이아몬드 멀티미디어사의 제품으로 세계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그래픽카드이다. 그러나 이를 개발한 사람이 재미 한국인이라는 사실을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 주인공이 바로 허형희 수석부사장(42)으로, 그는역시 재미 한국인이 지난 82년에 설립한 다이아몬드 멀티미디어사에 그 이듬해인 83년에 입사하여 공동창업자로서 이 회사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해 왔다. 이번에 본지 창간 14주년을 맞아 한국과학기술원 전산학과 李光炯 교수가 허 수석부사장을 만나봤다.
〈편집자〉
미국 새너제이 북부에 위치한 다이아몬드 멀티미디어사 건물은 대규모 3층건물로 산뜻한 느낌을 주었다.
회사 입구에서 「미스터 허」를 찾았다. 경비원은 수석부사장인 「허」를말하냐고 하면서 친절하게 안내했다. 세계 최첨단 제품을 만드는 사람은 어떻게 생겼을까. 실리콘밸리의 다른 스타들처럼 텁수룩하게 수염을 기르고 약간은 괴퍅스럽게 생기지 않았을까. 아니면 대회사의 수석부사장답게 정장을하고 위엄을 부리고 있지나 않을까.
2층으로 안내받아 들어간 허형희 부사장의 사무실은 한마디로 기대 이하였다. 명성에 맞게 화려하게 생겼으리라고 기대했던 사무실이 그저 그랬다. 좁은 칸막이 방에 책과 자료가 가득 쌓여 있다. 자료들은 책상 위의 모든 공간을 점령하고 바닥까지 차지하기 시작했다. 낯선 방문객은 조심스럽게 바닥을살펴가며 걸어야 했고 주인이 마련해준 책상 모서리 공간에 간신히 휴대품을올려놓을 수 있었다.
세계적인 회사의 수석부사장실에서 느낀 두번째의 실망은 부사장 자신이었다. 서류더미 속에 있는 그의 모습은 고참 대학원생을 연상시켰다. 머리카락은 앞으로 흘러내리고 티셔츠와 막바지차림은 전세계 시장을 장악한 주역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더욱이 먼길을 찾아오게 해 미안하다고 수줍게 말하는모습이 방문객을 편하게 느끼게 했다.
이광형:다이아몬드 회사의 규모는 어느정도 됩니까.
허형희:처음에는 그래픽카드만 주로 취급했는데 작년에 팩스모뎀회사인 수프라(Supra)와 독일의 그래픽카드회사인 스피아(Spea)를 인수했습니다. 1년매출이 4억달러 정도이고 직원은 5백명 정도 됩니다.
이:그래픽카드는 언제부터 개발하기 시작했습니까.
허:88년부터 관심을 가지고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IBM PC와애플컴퓨터 사이에 소프트웨어를 호환해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제품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멀티미디어시대의 서막을 내다보고 그래픽카드에뛰어들었습니다. 당시에는 이름도 없는 회사였는데 약 1년간의 노력으로 기존의 제품보다 뛰어난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이:개발과정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시죠.
허:멀티미디어분야에서 뭔가 할 것이 없을까 찾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새로운 분야에 갑자기 뛰어들 수는 없었습니다. 기초지식이 없기 때문이죠. 공부도 할겸 해서 다른 회사에서 만든 그래픽카드를 사다가 팔기로 했습니다.
다른 회사의 VGA카드를 사다 원리를 연구하고 어떻게 하면 기본제품보다좋게 만들 수 있을까 연구했습니다.
그러던 중 쳉(Tseng)이란 회사에서 나온 그래픽칩을 봤습니다. 쳉에서 나온 칩이 가장 빠르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사다 조립해 그래픽카드 제품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이:상품으로 나온 칩을 사다가 회로를 만들면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할 것아니겠습니까?
허:그렇습니다. 남들보다 뭔가 다른 아이디어를 넣어서 만들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승산이 없습니다. 쳉의 칩을 분석해보며 칩의 부족한 점을 찾았습니다. 단점을 찾아 이것을 보완하는 보드를 만들면 남들보다 앞설 것이기 때문이죠.
드디어 시제품이 나왔습니다. 테스트해보니 다른 회사의 제품보다 25% 정도 빠른 속도로 그림을 그려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에 스피드스타(Speed Star)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다이아몬드가 그래픽카드업계에 등단했고, 그후 바이퍼(Viper), 스텔스 등의 히트작을 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어떻게 해서 이런 최첨단 제품을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됐습니까?
허:저는 학교 다닐 때나 다른 회사에 다닐 때 특별히 잘 한다는 소리를 들은 것은 아니고 다른 것에 비해 회로를 잘 만지는 편이었습니다. 그리고 한번 붙잡으면 끝까지 해내는 성격이 있다고 할 수 있죠.
이:경쟁회사에서는 어떻게 나오던가요?
허:우리가 스피드 스타를 만든 기본아이디어는 그래픽칩의 단점을 보완해보드를 만드는 것이었죠. 그런데 아이디어가 한 번 이렇게 제품으로 만들어지면 공개되어 버리죠. 경쟁업체에서는 좋다는 제품이 나오면 즉시 구입해서뜯어 보죠. 그래서 자기네 제품을 그것보다 더 좋게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이:그런 경쟁은 끝없이 계속되지 않겠습니까?
허:사업은 끝없는 경쟁입니다. 금년에 잘된다고 해서 내년에도 잘 된다는보장이 없습니다. 특히 기술발전이 빠른 첨단산업의 경우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픽카드의 경우 약 9개월에 하나씩 신제품이 나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회사도 9개월에 하나씩 경쟁사를 이길 수 있는 제품을 내놓아야 선두대열에 낄 수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하도 영리해서 조금이라도 부족한 점이 있으면 사 주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업을 할 때는 단발성 아이디어보다 지속적으로 경쟁자를 이길수 있는 아이디어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아이디어가 히트하기 위해서는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한국말로 이야기하다 보니 처음에 들어올 때 가졌던 긴장감도 없어지고 한국에 와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이런 사람이 미국에 있지 않고 한국에서 일했더라면 그런 성과를 낼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 여기에 대해서 그의 대답은회의적이다. 신제품 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기획인데 한국에 있으면 정보가 늦어 앞선 제품기획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경쟁회사들이 밀집되어 있는 실리콘밸리에 있으니까 옆 회사들의 동향을 빨리빨리 알아내 그에대응했을 것이라고 한다.
어려운 길을 왔으니 자기집에 가서 식사를 같이 하자고 해서 따라나섰다.
허씨의 집으로 향하는 차 속에서도 궁금한 것이 많다.
이:장래 새로운 구상이라도 있습니까?
허:글쎄요. 여기 사람들은 내가 앞으로 무엇을 만들지 궁금하게 생각하고있는 것 같습니다. 당분간은 더좋은 그래픽카드를 만드는 일을 계속 하겠지요.
이:한국에는 갈 계획이 있습니까?
허:언젠가는 고국에 가서 일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이제 회사도 커졌으니 직접 개발작업에 파묻히지 않아도 되지 않습니까?
허:글쎄, 그것이 그렇게 되지 않더군요. 이제 연구인력이 수십명이 되지만마음에 들지 않아요. 깊이있게 근본적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겉으로만대강 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니 할 수 없이 지금도 중요한 사항은 내가봐줘야 진행이 됩니다.
이:한국인이 세운 회사인데 직원 중에는 한국인이 많이 있습니까?
허:별로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체직원 중에 20명도 안될 겁니다.
이:취미는 무엇입니까?
허:취미요? 그런 것 없어요. 사람들은 여가시간을 이용하기 위해서 취미생활을 한다고 하는데 나는 지금까지 남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요즈음 들어 주위에서 뭐라도 하라고 해서 골프를 배우고 있습니다. 토요일마다 강습을 받죠. 그런데 토요일은 아침에 눈만 뜨면 창밖을 봅니다. 혹시 비가 오면 휴∼하면서 좋아합니다. 골프장에 가지 않아도 될 핑계가 생겼으니까요. 도무지재미를 느끼지 못하겠어요. 공이 안 맞아 땅만 쳐서 스트레스 쌓이고 거기에다 한번 치러 필드에 나가면 하루가 없어지고….
자동차로 어느 정도 달리며 이야기를 마치자 언덕 위에 어림잡아 3백평은돼 보이는 프랑스풍의 저택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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