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HDTV 프로젝트 표류

미국판 고선명TV(HDTV)의 개발프로젝트가 갈팡질팡하고 있다. 美 정부는지난 5월 통일규격을 정리해 발표했으나, PC관련업체들이 「PC와의 일체화에적합지 않다」며 반발하고 나서 마무리단계에서 규격논의 자체가 공중에 떠버렸다.

바로 1, 2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판 HDTV가 곧 일본판 HDTV인 하이비전을추격하고 나설 것으로 예상됐으나, 이제 미국판 HDTV는 그 자체가 PC라는 새로운 세력에 걷어 채이는 형상이 연출되고 있다.

美 애틀랜타올림픽. 최첨단을 지향하는 올림픽에 걸맞지 않게 주경기장인육상경기장에 설치된 스크린은 HDTV가 아닌 일반TV였고, 공식스폰서인 일본마쓰시타社의 제품이었다.

미국판 HDTV를 개발하고 있던 미기업들이 당초계획을 변경, PR활동을 일절전개하지 않았다.

고선명TV는 지금까지 항상 올림픽에 보조를 맞춰 개발이 추진되어 왔다. 일본방송협회(NHK)는 88년 서울올림픽을 일본판 HDTV인 하이비전의 보급기회로 활용했다.

따라서 자국이 개최한 올림픽에서의 「HDTV부재」는 미국판 HDTV가 현재처한 입장을 잘 나타내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의 HDTV개발은 80년대 말부터 시작됐다. 당시 일본의 하이비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뒤처져 있었으나, 93년 표준화를 둘러싸고 대립해온 관련업체들이 규격통일에 합의하면서 미국과 일본의 상황이 역전되는 듯싶었다.

93년 당시 일본 하이비전의 경우, 프로그램제작은 디지털방식이지만 가정에의 전송은 아날로그방식이다. 이에 반해 미국판 HDTV는 이들 모두에 디지털방식을 채용키로 했다. 이때문에 일본에서는 「이로써 하이비전의 세계표준화는 물건너 갔다」라는 비관론이 비등했다.

일단 뜻을 합친 미국의 제너럴 인스트루먼트, 제니스 일렉트로닉스, AT&T등은 기업연합을 결성, 2년에 걸쳐 규격원안을 정리해 美 연방통신위원회(FCC)에 제출했다. 이 원안을 FCC가 지난 5월 「통일규격안」으로 발표했다. 이에 따라 97년께에는 미국판 HDTV가 첫선을 보일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이 스케줄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애플컴퓨터 등 PC업체들이 통일규격안에 강력히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TV와 PC용 모니터는 언뜻 보기에 비슷하나, 화상 표시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이 때문에 인터넷의 문자정보를 TV로 띄우면 흐려지는 현상이 자주 나타난다.

PC업체들은 『이 규격을 그대로 채용할 경우 PC와의 접속에 상당한 어려움이 발생한다』며 FCC에 재검토를 요청했다.

이같은 PC업체들의 움직임에 깜짝 놀란 것은 美 3대 네트워크와 가전업체들. 『당초안대로 하루 빨리 규격을 통일해야 한다』며 크게 반발, FCC를진퇴양난의 길로 몰아갔다.

이번 대립의 직접적인 원인은 TV업체들이 규격통일을 논하고 있는 동안, PC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가정에 보급됐다는 데 있다.

TV와 PC의 각기 다른 발전추세를 보인다. TV의 경우는 흑백·컬러·고선명(HD)TV로 진화될 때마다 신형단말기를 구입해야 한다. 그러나 PC는 업그레이드가 기본. 소프트웨어와 카드 등을 사용하면 본체를 바꾸지 않아도 성능과기능을 높일 수 있다.

즉 많은 정황을 놓고 볼 때 규격통일안이 확정되느냐 안되느냐에 더 민감한 쪽은 가전업체들인 것이다.

유연성 있는 PC분야에 있어 정부주도의 규격통일확정은 기술혁신의 한 장애요인 정도에 불과하다. 「규격은 시장이 결정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사고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TV의 경우는 급속히 확대되는 방송설비가 전제되는 일종의 인프라산업이기 때문에 이번에 규격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대형 설비투자가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종단계에서 걸고 넘어지는 PC업체들의 주장을 무시할수 없는 것은 그만큼 PC업체들의 힘이 강화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HDTV가 특별한 예는 아니다. 차세대기록매체인 디지털 다기능 디스크(DVD)에서도 규격통일 최종단계에서 美 PC업체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이제 가전업체들끼리 어떤 규격을 결정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다. AV기기의 디지털화로 가전제품과 PC가 서로 연관성을 가지게 되면서, PC업체의 발언력이 한층 높아져만 가고 있기 때문이다.

<심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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