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기업-中企간 역할분담으로 불황타개

과거 미국 AT&T가 독점적인 통신사업자였을 때 MCI라는 조그마한 벤처기업이 「AT&T의 반값」을 내걸고 AT&T에 도전장을 냈다. 주위에서는 다들 무모하다고 말했고 AT&T는 코웃음 쳤지만 지금은 모두가 이 회사를 AT&T의 경쟁자라고 부른다.

자본과 인력, 기득권 등 모든 면에서 절대 열세였던 MCI가 AT&T의 경쟁자로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중소업체의 장점인 빠른 결정력과 적응력, 그리고적은 비용에 따른 가격경쟁력 등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전봇대를 설치하는 데도 AT&T와 MCI는 몇 배의 비용 차이가 났다. AT&T는 설치공사에 앞서직원들이 사용할 간이식당·화장실 등 부대시설을 설치하고 전기를 끌어오고전화를 가설하는 등 적지 않은 비용이 드는 데 비해 MCI는 이같은 작업을 생략했기 때문이다.』

AT&T와 MCI의 이같은 일화들은 사실 여부를 떠나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차이와 「역할」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흔히 대기업은 1인당 매출이 연간 1억원, 중소기업은 7천만원 정도면 그런대로 괜찮다는 말을 한다. 이는 바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비용 차를 말하는것이다. 대기업의 큰 덩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에 물량이나 부가가치가 일정수준 이상 되지 않는 제품은 별 메릿을 주지못하는 경우가 많다. 가전제품 업체들이 커피메이커·휴대형 녹음기·밥통을비롯한 소형제품들을 직접 생산하지 않고 중소업체들에 위탁생산하는 것도이같은 이유에서다.

지금은 세트는 물론 부분품이나 부품의 경우도 위탁생산 및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사업품목 이관 움직임이 일고 있다. 특히 다품종 소량이면서도부가가치는 그다지 높지 않지만 세트 기술발전과의 밀접한 연관 등 기술적인문제로 국내에 생산기반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이 우선 대상이 되고 있다.

전자재료 전문업체인 대주정밀화학이 최근 삼성전기의 단결정 성장 및 가공설비를 이전받아 VCR헤드용 등 각종 전자재료용 단결정을 생산하기 시작한것은 부품업체간 협력의 좋은 예다. 삼성전기는 자체 생산에 비해 보다 적은비용으로 안정적으로 공급받게 됐고, 중소업체인 대주정밀화학으로서는 새로운 사업기회를 갖게 되는 등 서로에게 득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부품 대기업과 중소업체간 이같은 품목 이전은 불경기를 극복하고 범용 부품시장에서의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 후발국가들의 추격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의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종합 전자업체들의 계열 부품업체들은 외형이 적게는 수천억원에서많게는 조단위에 이른다. 이같은 매출규모는 대기업 중에서도 상위권에 들어가는 수준이다. 이는 거꾸로 과거에 비해 몸이 무거워져 비용부담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 매출이 2천억∼3천억원 하던 시절에는 괜찮았지만매출이 조를 넘어서자 鷄肋으로 변해버린 품목들이 적지 않은 것이다. 근래들어 종합 부품업체들에서 「이전」이니 「제품 구조조정」이니 하는 말들이자주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국내 대부분의 부품업체들은 중국 및 동남아산의 시장잠식 등으로 국제경쟁력과 채산성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품목을 최근들어 과감하게 정리하거나 축소하는 한편 후발국가들과 경쟁하기 위해 고기술·고부가 제품으로의 도약을 다방면으로 모색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똑같은 품목이라 할지라도 대기업의 실험실이나 일부 부서에서 관장할 때와 중소기업이 맡아 전력을 기울이는 것은 큰 차이가 있으며 기술을 이전한 대기업도 그 제품에 대한 끈을 놓지 않으면서도 고부가 분야에여력을 집중할 수 있어 장기적으로 이득을 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부품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사업이전을 포함한 실질적이고 동반자적인 협력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 볼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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