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특강] 뇌를 모방한 정보처리계 구현

인간과 거의 구별할 수 없는 로봇, 사람과 대화를 자유자재로 나누는 자동차나 컴퓨터 등은 SF영화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이것은 지금인류가 바라고 또 준비하고 있는 차세대 정보기술의 실현 예가 된다. 지금까지 우리가 사용하던 기계와는 달리 이들은 인식 지각, 더 멀리는 사고의 기능까지 가지고 있다.

좀더 신속하고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받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는 정보산업의 인간화를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 차세대 정보 처리계의 핵심, 원천 기술은 인간 본위의 지능적 정보처리에 있고, 이것은 휴먼 인터페이스 기술, 인간화(Humanized) 기술이라는 전문용어로 표현된다.

우리에게 아직 상상 단계에 있는 이러한 기술의 열쇠는 어디에 있을까. 그답은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와 인간의 뇌를 비교하면 쉽게 얻을수 있다. 미리 프로그램화되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는 컴퓨터에 대해 인간의뇌는 새로운 환경에 매우 유연하게 적응하는 정보처리계이다. 논리적인 정보만을 처리하는 컴퓨터에 비해 뇌 신경계는 확률론적이지 않고 앞뒤가 일치되지 않는 정보까지 처리할 수 있다. 컴퓨터의 순차정보처리 과정에 비해 뇌에서는 여러개의 정보가 동시에 처리되는 평행 정보처리를 수행하여 매우 빠르다. 생물학적 신경계는 컴퓨터에 비해 부피가 훨씬 작고 에너지가 적게 든다.

인공 신경회로망에 비해 이렇게 큰 이점을 지니고 있는 우리의 뇌를 우리는 과연 어느 정도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서 노벨상을탄 크릭 박사는 인간의 사고는 뇌의 활동이고 이것은 신경세포들과 그것에달린 분자들의 상호작용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했다.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이면서 저명한 우주론자인 펜로즈 교수는 한 단계 더 나아가 뇌의 활동은 현대물리학인 양자물리학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하였다. 최근 미국의 주간지「타임」에는 「기계가 과연 생각할 수 있는가?」 라는 제목의 글이 실리기도 했다. 인간의 사고, 생각, 더 나아가 정신이라고 하는 과거의 심리적, 철학적 관심사였던 문제에 과학자들은 과감히 그들 특유의 귀납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이제 신경과학이라는 과학의 한 분야로 자리잡고 있으며 우주과학과 더불어 프런티어분야로 인식되고 있다. 한국 전자통신연구소의 기초기술연구부에서도 이 분야에서 앞서가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인공 신경회로망과 생물학적 신경계의 차이는 근본적으로 그 소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전자의 경우 단위 소자는 단순한 과정을 거쳐 입력된 정보를다음 소자에 전달하도록 고안됐다. 후자의 경우 각각의 뇌세포가 매우 복잡한 동역할을 보이고 세포들의 결합계는 집단적인 협동역학을 보인다. 뇌세포들 간의 상호작용은 물론 세포 하나하나의 활동이 매우 복잡해 일률적으로설명할 수 없다. 일반적인 생물학적 신경계의 정보전달 과정을 보면 수상돌기로부터 어떤 문턱값 이상의 자극을 받게 되면 세포핵에서 활동전위가 만들어진다.

축색돌기에는 Na, K, Cl, 등의 이온 채널이 있는데 이 채널을 통한 이온의출입으로 세포내외의 전위차가 형성되어 활동전위의 진행을 유도하게 된다.

축색돌기의 끝은 다른 세포의 수상돌기와 시냅스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축색돌기의 끝에서는 신경전달물질(Neurotransmiiter)이 시냅스로 분비된다.

이 물질은 다음 세포의 수용기(receptor)와 결합하게 되고 이것은 주위의 수상돌기에 있는 이온 채널을 활성화시켜 도달된 정보(전위)가 이어지도록 한다. 이같이 뇌세포의 주요 업무는 신호를 받아 다음 세포에 전달하는 것이고신호는 전기적→화학적→전기적으로 바뀌면서 전달된다.

뇌세포가 자극을 받아 활동전위를 만드는 것을 「발화」라고 한다. 외부로부터의 자극이 없어도 개개의 뇌세포는 항상 1~5Hz 정도의 불규칙적인 배경발화를 한다. 이것은 자극이 들어왔을 때 신속히 반응하기 위한 것이다. 흥분되면 뇌세포는 약 50~1백 헤르츠의 발화를 하며 최고 약 5백헤르츠까지 가능하다. 이 수치로 볼 때 뇌세포의 처리속도가 매우 빠른 것으로 보이지만컴퓨터에 비하면 매우 느린 것이다. 이것은 컴퓨터에 비교할 수 없이 월등한정보처리 능력을 지니고 있는 뇌신경계의 뇌세포 개개가 신속하지 못한 능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유의하여야 한다.

인간의 뇌에는 약 1천억개의 뇌세포가 있고 한개의 뇌세포는 약 1만개의다른 세포와 결합을 하고 있다. 뇌세포들간의 결합형태는 꼭 흥분적 상태가아닌 억제성 결합형태도 있다. 억제성 결합이란 전 세포에서 자극이 들어왔을 때 오히려 발화를 억제하는 결합상태이다. 뇌세포는 각기 다른 진동수로또 다른 형태의 발화를 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정보는 그대로 다음 세포로 전달되지 않는다. 각 세포는 자신이 받은 정보의 결합에 반응하는 정보를새로 만들어 자신의 축색돌기의 끝에 결합되어 있는 많은 수의 다음 세포들에게 전달한다. 이것은 세포결합계의 집단적 행동이 뇌신경계의 정보처리시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말해준다.

뇌의 활동을 측정하는 가장 오래된 방법 중 뇌에서 나오는 전기장(Electroencephalogram, EEG)을 측정하는 실험장치가 있다. 뇌에서는 많은 전기적 활동이 있다. 한 개의 전극이 보이는 신호는 수 천만 개의 세포의 활동을 나타낸다. 현재는 약 70개까지 전극을 꽂아 뇌의 활동을 스캔한다. 최근에는 변하는 자기장을 측정하는 SQUIDS(Superconducting quantum interference devices) 장치를 이용, 국부적인 활동까지 관찰한다.

이밖에 양성자 개수의 밀도를 측정, 뇌의 3차원 모양을 재구성할 수 있는MRI(Magnetic resonance imaging) 스캔 방법, 양전자를 측정해 국부적인 뇌의 활동을 보는 PET(Positron emission tomography) 스캔 방법 등이 있다.

이러한 장치들로 볼 수 있는 세포들의 집단적 행동은 「패턴역학」이라는 전문용어로 표현된다. 신경과학에서의 전형적인 접근방법은 인식, 행동, 사고,운동 등에 관련된 뇌의 활동이 보이는 패턴들중 변수를 설정하여 비선형 시스템으로 모델링하고 이를 분석하여 패턴들의 기본 메커니즘을 설정하는 것이다.

52년 호즈킨과 헉슬리는 오징어의 거대 축색세포에서 활동전위의 발생에관한 비선형 시스템을 설정해 노벨상을 수상했다. 이들 이름의 첫 자를 딴 HH 모델은 실험사실에 기초한 나트륨(Na), 포타시움(K) 등 이온채널의 열림,닫힘, 전도도 등을 비선형 미분방정식으로 구체화하여 이러한 이온들의 세포막 내 출입이 만들어내는 활동전위를 정량적으로 보였다. HH 모델은 실제의세포와 가장 가까운 모델이고 이 HH 모델로부터 실제의 세포가 보이는 발화,스파이크, 주기적 발작 등의 다양한 행동을 끌어낼 수 있다. HH 모델에 실제환경을 묘사하는 교류 입력, 시간지연 등의 자유도를 첨가하여 카오스를 볼수도 있다. 근본 메커니즘을 이해하기 위해 HH 모델을 단순화한 위상 모델,모리스르카 모델, 힌드마시로즈 모델들도 많은 수학자나 물리학자의 관심대상이다.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세포 몇 개를 결합한 작은 네트워크는 중앙 패턴생성기라는 신경 회로망에서 볼 수 있다. 중앙 패턴 생성기는 메뚜기나 거머리와 같은 작은 동물의 소화기관, 운동기관 등 간단한 신경계에서 볼 수 있고 수십개의 세포들로 구성되어 있다. 신경세포들의 결합에는 결합상태에 대한 실험적 사실이 매우 중요하게 된다. 운동에 관련된 많은 중앙 패턴 생성기는 교차되는 리듬을 보이는데 이것은 흥분 또는 억제적으로 결합된 세포들의 결합상태가 설명하여 준다.

같은 중앙 패턴 생성기에 여러개의 패턴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데, 이것은 여러 개의 끌림 고정점을 지니고 있는 비선형적인 시스템이 지니고 있는다중안정성(Multistability)이라고 할 수 있다. 신경회로망이 자신의 상태를안정점의 하나로 유연하게 바꿀 수 있고, 주위환경에 따라 수시로 자신의 상태를 대처시킬 수 있는 것은 역학적 불안정성(Dynamical Instabilities)이다. 그리고 이것은 세포, 시냅스, 네트워크 등의 모든 수준에서 일어나는 비선형 과정들의 복합체이다. 생물학적 정보처리계의 유연성, 신속성 등은 이렇나 패턴 역학에 기초한 정보처리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대뇌 피질은 크게 몇 부분으로 나뉘어 있어 시각, 촉각, 후각, 운동, 인식, 언어 등의 역할을 나누어 분담하고 있다. 뇌 신경계는 작은 회로들이 합쳐 더 큰 회로를 만드는 계층적인 구조로 되어 있다. 물론 크고 작은 회로들간에는 피드포워드(Feedforward) 작용은 물론 피드백 작용이 일어난다. 이렇게 복잡한 구조를 지닌 뇌신경계는 활동시 전반에 걸쳐 특정한 주파수의 파가 검출되고 있음이 밝혀졌다.

포유류의 30~70Hz의 뇌의 활동은 대뇌 피질의 정보 운반자로 알려져 있다.

또한 깊은 잠의 초기에 탈라무스(Thalamus)에서 기록되는 7~14Hz의 스핀들파, 인간의 렘(Rem) 수면이나 개, 고양이가 먹이나 새로운 환경을 탐구하는활동시 히포캠퍼스에서 나타나는 테타(Theta) 리듬(4~10Hz) 등도 뇌의 활동이 보이는 흥미로운 패턴이다. 세포들간 혹은 세포의 그룹들간 연관된 (Correlated) 행동은 동기화된 발진이라고 한다. 이것 역시 정보처리의 중요한 수단으로 알려져 있다. 긴 메모리의 생성, 배경 분리, 물체의 결합(Binding)등의 기본 메커니즘이 동기화이며 많은 세포가 결합된 시스템이 수학적으로모델링되어 동기화의 메커니즘을 설명하고 있으나, 부분적인 이해에 그치고있다.

첨단 과학기술을 예견하는 신경과학의 역사는 그 자체로는 10~20년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미 미국, 일본, 독일 등 선진국에서는 신경과학의 중요성을인식, 이러한 분야에 과감한 투자를 하고 있다. 신경과학은 생물학, 물리학,수학, 심리학, 의학, 공학 등 거의 모든 과학, 기술분야에 있는 넓게 열려져있고 이렇게 다양한 분야의 협력적인 공동연구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미국에서 지난해 열렸던 신경과학회에는 약 2만2천명의 과학, 기술자가 등록하여 다양한 생각과 실험사실들을 발표하였고 앞으로는 그 수가 더욱 늘어날전망이다. 우주 전체의 이해와 맞먹는다는 인간의 뇌에 대한 이해는 현재 과학이 풀어야 할 과제이고, 그 바탕 위에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차세대 정보기술이 창출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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