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관람석]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

슬라브는 잠들고 있는가.소련 연방의 붕괴 이후 공산주의와 함께 혼미를거듭하고 있는 러시아의 슬라브 민족은 세계의 주변부 민족으로 시들고말 것인가.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를 보며 이런 의문에 대한 블랙 코미디적인 해답을 얻었다. 슬라브는 마치 고요한 돈강이 때로는 굽이치는 격랑의 물구비를 이루듯이 지금 심한 열병을 앓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광대한땅에서 뿜어지는 자연 치유의 생명력으로 그들의 열병을 다스리는 문화의 패러다임 교체를 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이 영화는 로큰롤이라는 말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최악의 우스꽝스러운 밴드 「레닌그라드 카우보이」가 천국보다 낯설게 느껴지는 미국을 관통해 멕시코에 이르는 여정을 그린 로드 무비다. 감독은 핀란드 영화를 세계 영화의무대로 끌어올린 카우리스마키 형제 가운데 동생인 아키(34세). 오랜 역사동안 러시아의 속국이었던 핀란드는 슬라브 정서의 변방이나 다름 없다.저예산 영화를 속전속결로 찍는 재주가 뛰어난 아키는 파격적인캐릭터를 선보이는 것으로 우선 관객을 코미디의 장으로 끌어들인다.

딱다구리 주둥이 모양처럼 앞머리가 불쑥 솟은 헤어스타일, 타이어를 펑크낼 만큼 뾰죽한 칼구두, 엉터리 연미복같은 멤버들의 의상은 기발하고 황당무계한 촌극들을 별 저항없이 즐기고 웃을 수 있도록 관객을 이완시킨다. 이완된 심리, 즉 너그러워진 관객에게 슬라브 민속음악, 로큰롤, 컨트리뮤직,블루스, 하드 록, 라틴 음악에 이르기까지 음악의 경연을 펼침으로써 양키,멕시코인, 흑인과 함께 슬라브인이 화합하고 상호 침윤될 수있는 길을 암시한다.

또 이른바 브레히트 극이론의 핵심인 「낯설게 하기」 효과를 적절해 활용해 웃음 뒤의 패이소스, 풀어짐 다음의 조여짐의 흐름을 잡아준다. 영화를분절시키는 무려 35가지의 소제목과 카우보이들의 무표정과 양식화한연기,과감한 생략 등이 아키가 감춰 놓은 낯설게 하기의 기법이다.

심리 이완과 낯설게 하기의 영화적 문법을 머리에 넣고 78분의 슬라브식여행을 떠나볼 만하다. 여행중에 할리우드 영화의 풍성함과 느끼함이 양키문화의 꽃이듯 풍자와 우직스러움이 슬라브문화의 큰 줄기임을 알게 되리라믿는다.

<박상기(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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