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지난해 16조원의 외형에 당기 순이익 2조5천억원을 기록했다.
단일기업으로 한 해에 2조원이 넘는 이익을 기록한 것은 「단군 이래」 처음이다. 불과 20여 년전만해도 흑백 텔레비젼과 선풍기를 만들던 회사가 세계최고의 반도체와 정보통신· 가전을 생산하는 종합전자업체로 성장했다.
이 「신화」를 이끈 사람이 바로 강진구 회장이다. 강회장은 최근 고희를맞아 「삼성전자, 신화와 그 비결」이라는 회고록을 출간했다. 그는 현직에서 고희를 맞는 우리나라 최초의 전문 경영인이다.삼성전자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자업계의 산증인인 강진구회장을 만나 「신화의 뒷 이야기」와 후배들에게 주는 조언을 들어봤다.
-73년에 삼성전자의 사장이 되셨습니다. 물론 동양방송 이사로 재직시 이미 방송분야 엔지니어로서는 최고의 평가를 받고 있었지만 삼성그룹의 분위기로 봐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인사로 볼 수 있는데 예상은 했던 일입니까.
『당시 삼성전자 합류는 이병철 선대 회장님의 지시였습니다. 선대 회장님은 동양방송의 평이사였던 저를 가끔 불러 점심을 함께 하기도 하고 위성 중계되는 권투경기가 있을 때는 같이 시청하기도 했습니다. 흔이 있는 일은 아니기 때문에 막연히 「회장님께서 나를 눈여겨 보시나보다」 정도로 생각했지 삼성전자를 맡기실 줄은 몰랐습니다』
-초창기 삼성전자는 적자 행진을 계속하는등 전자업계의 후발주자로 매우어려운 형편이었는데 문제점은 무엇이었습니까.
『사장 부임전 선대회장님의 지시로 회사가 무엇 때문에 어려운가를 파악하기 위해 한달 동안 모든 작업장을 둘러 보고 직원들과의 대화를 병행했습니다. 근본적인 문제점은 두가지라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하나는 적자회사에서 곧 잘 나타나는 직원들의 패배의식, 책임 전가등이 삼성전자에서도 보인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기존업계의 반대에 따라 삼성은 내수 판매는 제한되고 수출만 할 수 있다는 규정이었습니다』
-그같은 난제를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무슨 비결이라도 있습니까.
『왕도는 없습니다. 우선 종업원들과 함께 열심히 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사장이 앞에 나서 일에 「미치면」 직원들도 시간이 흐르면 따라 옵니다.
회사 분위기와 직원들 사기는 그렇게 바꾸어 나갔습니다. 또 일등의식을 강조했습니다. 후발주자가 선두업체들이 하고 있는 제품의 뒤만 따라 가서는영원히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시도하자고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이같은 드라이브의 결과 삼성전자는 컬러 텔레비젼, VTR, 전자레인지 등을 국내 처음으로 개발, 전세계에 수출할 수 있었습니다』
-사내 분위기는 바꿀 수 있어도 내수 판매 금지는 정부의 정책적 차원인데어떻게 풀어나갔습니까.
『한마디로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슨 로비를 한 것도 아닌데정부가 73년 미관세로 도입한 수출 전용 제조설비에 대한 관세를 소급 납부하기만 하면 생산제품의 국판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했지요. 아마 당시의 경제발전 속도에 자신감을 가진 정부의 과감한 결정 탓이라고 봅니다. 아무튼 우리는 곧바로 흑백TV의 시판에 들어갔고 특히 수출품을 내수 판매한다는 점때문에 인기도 좋았습니다』
-오늘의 삼성전자는 종합전자업체입니다. 가전에서 반도체로 다시 정보통신으로 영역을 넓혀나갔습니다. 이것은 그때 그때 경영자의 판단에 의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같은 마스터 플랜은 이미 전자 사장으로 부임하고 난 후 얼마되지 않아 이미 짜여져 있었습니다. 삼성이 처음 전자산업에 뛰어들 때도그랬지만 면밀한 시장 조사에 따른 장기 비젼은 필수적입니다. 외국의 사례를 수집하고 기술 추세등을 감안, 비록 초기의 적자가 예상되더라도 차근차근 계획을 실행에 옮긴 것입니다. 특히 이와 관련해서는 선대 회장의 경영안목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 분은 늘 미국이나 일본의 언론인, 기업가 등을 만나 세계의 최신 기술 동향을 살피고 그것을 한국에 적용할 수 있는 가를 따집니다. 결론이 나면 거시적 차원에서 적극 밀어 부칩니다』
-기업을 경영하다보면 어려울 때와 즐거울 때가 교차합니다. 고통을 발전의 밑거름으로 삼은 사례가 있었습니까.
『회고록에 쓰지 않은 에피소드중에서 전자의 수원공장 화재사건이 있습니다. 78년인가 수원공장에서 용접 작업중 불티가 스티로폼에 옮겨 붙어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눈 앞이 캄캄했지만 전 직원이 달라붙어 두달만에 공장을완전 복구하고 수출 물량을 납기에 처리했습니다. 이 사건은 불행한 일이긴했지만 반대로 그룹이 안전부문에 관심을 기울이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때부터 삼성은 작업장에서 발생할 지도 모를 각종 안전사고에 대비한 방대한 규정을 만들고 이를 철저히 지키고 있습니다. 물론 이후 단 한건의 화재도 없었고 삼성그룹의 안전사고 방지율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습니다. 전화위복이 된 것이지요』
-강회장께서는 삼성의 이병철, 이건희 양대회장과 함께 하셨습니다. 두 분은 각각 어떤 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경영자로서 두 분은 모두 거시적 안목과 추진력이 뛰어난 공통점을 갖고있습니다. 선대 회장님은 기업 경영의 세밀한 부분까지도 엄격하게 다루 었던 반면 이건희 회장님은 보다 장기적인 비젼을 제시하고 세부 내용은 과감히 아랫사람들에게 맡기는 편입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문 경영인으로서 기업가의 자세는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가.
『기업가는 국가의 부를 일부분 책임지는 자리입니다. 열심히 일하고 끈임없는 노력을 통해 기업을 성장시켜야 일자리가 늘어나고 국가의 부가 팽창됩니다. 이런 책임감이 있다면 기업가가 부도를 내서는 안됩니다.』
-그렇다면 어떤 경영 전략을 가져야 합니까.
『경영은 환경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우선 선진기업의 벤치 마킹을 잘해야합니다. 그 다음에는 장기 전략을 수립하는 전략 경영이 뒤따라야 하고효율 경영이 가세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경쟁력의 원천이 되는 기술과사람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할 것입니다』
-이제 막 직장 생활을 시작하는 후배들에게 주는 조언이 있으시다면.
『하루 한시간은 전공과 무관한 책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30년간직장생활을 한다면 그 축적분은 엄청날 것입니다. 또 인간관계의 중요성을인식해야 합니다. 자신에게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상대방에게는 너그러운 것이 출발점입니다』
올해 고희이면서도 정력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강회장은 『나이를 먹어서 인지 요즈음은 화초나 나무 가꾸는 것이 좋다』며 집 근처 산보와 집안에있는 온실 가꾸기가 건강 관리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이택기자>
<강진구 회장 약력>*1927년 경북 영주 출생 *1946년 대구사범 졸업*1957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전자과 졸업*1965-1973년 동양방송 이사*1973-1982년 삼성전자 사장 1975-1979년 겸 삼성전관 사장 1977-1981년 겸 삼성전자부품사장 1977-1980년 겸 삼성정밀 사장*1988년 삼성전자 삼성전기 총괄대표이사 부회장*1992-현재 삼성전자 삼성전관 삼성전기 총괄 회장*비 상임직 경력-전국경제인연합회 고문, 무역협회 부회장,한국표준과학 원 이사장, 대한산업안전협회 회장, 한-헝가리 경제협력위원장, 한-벨기 에 경제협력위원장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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