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반도체 인프라구축 서두르자 (5);일본의 사례(상)

일본의 반도체산업은 미국보다 늦게 출발했다. 하지만 미국의 경기가 70년대 오일쇼크로 침체에 빠진 틈을 타 빠른 성장을 했고 급기야 80년대 중반에이르러서는 세계 최대의 반도체 생산국으로 올라섰다. 이후 일본은 미국과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소자는 물론 장비·재료 등 주변산업에 이르기까지 탄탄한 수직계열화를 구축해 세계 반도체시장을 주도해나가고 있다.

일본 반도체산업의 특징은 통산성 주도하에 NEC·도시바·미쓰비시·후치쓰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에 의해 모든 것이 움직인다는 점이다. 또 그들대기업 가운데 상당수는 반도체와 함께 전자 세트 제품을 제조하는 업체로총 생산의 절반 이상을 자국에서 소화하고 있다. 이는 총 생산의 90% 이상을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와는 크게 대조를 보이는 대목으로 세계시장변화에 대한 대응력이 그만큼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 반도체 산업의 또 하나의 장점은 D램에 편중되지 않은 고른 제품 분포에 있다. 일본은 세계 D램시장에서 거의 절반이 넘는 점유율을 차지하고있지만 총 생산에서 D램을 포함한 메모리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30%를 겨우 넘어설 정도로 비메모리 중심의 안정된 생산구조를 갖고 있다.

일본이 반도체에서 안정된 기반을 갖추고 경쟁력을 확보한데에는 무엇보다정부, 특히 통상성의 산업 정책에 기인한 바가 크며 물량적인 뒷받침보다는정부 산업 정책의 우수성이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일본 정부는 지난 65년부터 80년에 이르는 15년여 동안 각종 특별법을 제정해 반도체 산업을 육성해왔다. 반도체 수입 및 외국인 투자를 74∼76년까지 법으로 규제하는 한편 반도체 산업의 신규 참여를 소수 대기업으로 한정했다. 또 자금 대출 및 각종재정적 혜택을 통해 참여 기업들이 반도체 기술을 공동으로 개발하도록 장려했다. 이러한 각종 지원과 상호 협력에 힘입어 80년대 초부터 D램 시장을석권하는 위치로 부상한 것이다.

나아가 반도체 장비 및 재료 업체들에게도 재정 지원 및 구매 지원을 함으로써 일본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사회 자본적 측면의 육성에도힘을 쏟았다. 이 때문에 반도체 업체들은 계열사로서 반도체 제조장비 및 재료 업체를 대거 거느리고 있으며 이들을 통해 자사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는데필요한 각종 핵심 기자재들을 충당하고 있다.

도시바의 경우 도시바기계 등 13개사, 히다치는 17개사, NEC는 14개사를 장비 및 재료 계열사로 확보하고 있으며 다른 회사들도 3~4개 계열사를주변산업에 포진시키고 있다. 이들은 내수 시장뿐만 아니라 세계 반도체 제조 장비 및 재료 시장의 절반을 장악할 정도의 경쟁력을 지니고 있는데 우리나라만도 반도체 핵심장비의 대일 의존도가 거의 40%에 육박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80년대말부터 시작된 미국의 통상압력 강화 등으로 인해 통상성은반도체 산업에 대한 지원 전략을 대폭 수정했다. 그동안 경쟁력을 갖춰온 업계를 전면에 내세워 대부분을 맡기고 정부는 측면지원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지난 94년에 美반도체산업협회(SIA)를 본떠 만든 반도체산업연구소(SIRIJ)나 95년 설립된 반도체기술대학연구지원센터(STARC), 96년 2월에결성된 첨단반도체기술(ASTI) 등은 바로 일본의 반도체산업정책이 정부중심에서 민간 업계위주로 서서히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통산성은 이를통해 우선 기술개발에 대한 업계의 인식를 제고시킨다는 방침아래 연구 개발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다. 지원 형태도 단순한 자금지원보다는통산성 산하 연구소를 통해 확보한 양질의 연구성과를 업계가 즉시 상용화할 수 있는 기술지원에 대한 비중을 높여가고 있다. 신기술이 개발되면 그가능성을 검토하고 충분히 실험을 거친 후 이를 민간 업체에 이전, 상용화시키는 방법으로 일본 특유의 제품우위 전략을 고수한다는 정책를 확산시켜나가고 있는 것이다.

<김경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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