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국산 컴퓨터 「세종1호」
외국산 하드웨어 공급회사와 소프트웨어 개발용역회사들의 잇따른 출범과함께 모양새를 갖춰 나가기 시작한 국내 컴퓨터업계가 비로 『우리 것』을만들고자 했던 노력을 보인 것은 72년부터이다.
물론 국산화에 대한 노력은 60년대 초반 李萬永(현 한양대 명예교수)의 진공관식 아널로그 계산기 제작(본란 5회 1월22일자)과 70년 KIST가 영문 라인프린터의 한글화(본란 6회 1월29일자)등이 있었다.
그러나 실제의 사용환경을 지원하면서 완벽한 구성을 갖춘 컴퓨터 하드웨어 개발은 73년 2월에 완성된 미니컴퓨터 「세종1호」가 그 효시이다.
「세종1호」는 미국 데이터제너럴(DG)의 미니컴퓨터 「노바 01」을 개량해서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국산 디지틀 컴퓨터로 기록되고 있다.
「세종1호」의 개발과정은 이 프로젝트가 시작된 72년의 국내외 정치적 상황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 흥미롭다. 「세종1호」의 개발이 정치적 목적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애기다. 컴퓨터 기술이 이때부터 정치적 상황에 활용되기 시작했다는 얘기도 된다.
그러나 「세종1호」는 지금은 삼성전자에 흡수 합병된 삼성반도체통신의출범에 직접적인 계기를 제공해 주는 등 산업적 측면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세종1호」의 개발 프로젝트는 청와대 의해 「메모 콜(Memo Call)」이라는 암호명으로 72년 6월에 시작됐다. 이에 앞서 2개월 전인 72년 4월 당시청와대 통신기술처장이던 한 인사가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측에 안병성에게 다음과 같은 기술적 검토 및 제품 개발 가능성을 타진해 왔다.
『청와대의 주요 기관 간 전화통화에 내용에 대해 미국 등 외국의 정보기관이나 기타 외부로부터의 도청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고, 주요 요인들과 신속하게 통화할 수 있으며 통화 도중이라도 언제나 상위권 통화자가 통신상태를 제어할 수 있도록 하는 핫라인용 사설전자교환기(PABX) 개발이 가능합니까?. 73년3월 이내에 개발이 가능하다면 연구개발비 댓가로 6천만원을 제공하겠소.』
청와대 측의 이같은 교환기제작 검토는 당시 李厚洛 중앙정보부장과 북한朴成哲 부수상의 극비 남북교환방문에 이은 7.4남북공동성명과 남북적십자예비회담 등 긴박했던 정치적 상황과 직접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있다. 이를테면 청와대와 중앙정보부간 초특급 핫라인이 필요했던 것이다.
KIST측은 2개월여 동안의 연구조사 끝에 청와대가 요구해온 PABX가 미국과소련 등에서도 극히 일부 고급기관에서만 사용되고 있는 시분할식 특수목적용 교환기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당시 컴퓨터 업계를 휩쓸던 미국 디지탈이큅먼트사(DEC)의 「PDP-11」시리즈나 DG사의 「노바 01」시리즈 등 미니급 컴퓨터를 PABX 시스템제어용으로 활용하면 청와대가 요구한 PABX의 사양을 못맞출 것도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KIST측은 드디어 방식기기연구실(뒤에 전자공학부로 개칭)실장 安柄星(현ETRI기술역)을 팀장으로 하고 하드웨어의 디지털 부문에 余在興(현 한화전자정보통신 전무), 아널로그 부문에 李周炯(현 삼성전자 전무), 소프트웨어 부문에 천유식(현 ETRI 책임연구원)을 각 부문 책임자로 하는 「전자교환시스템팀」(내부적으로는 「노바팀」으로 불렸다고 함)을 구성, 청와대측과 「메모콜」개발 프로젝트 계약을 체결했다.
「메모콜」프로젝트 실질적인 내용은 교환기를 자동으로 제어해 주는 컴퓨터시스템의 개발이었다. 따라서 제어용 소프트웨어의 개발이 필요했고 이에앞서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하드웨어 플랫폼, 즉 미니급 정도의 컴퓨터가 필요했다. 당시 성능이 좋은 미니컴퓨터로는 「PDP 8/E」가 단연 으뜸이었는데 너무 인기가 좋은 나머지 고객의 주문에서부터 제품 인도까지 걸리는 시간이 평균 4∼5개월이었다. 물론 당시 청와대의 「힘」이라면 「PDP 8/E」몇 대쯤은 금방 들여올 수도 있었겠지만 청와대 측이 「메모콜」프로젝트가미국정보기관이나 다른 국내기관에 노출될 것을 꺼려한 나머지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개발 시한이 73년 3월까지였으므로 KIST 측은 「PDP 8/E」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그대신 당시 미국 DG가 일본에서 현지 생산하고있는 「노바 01」을 도입하기로 했다. KIST가 외무부에 협조를 구하는 형식을 취해 「노바 01」 3대가 주문 1주일 만에 방식기기연구실에 설치됐다.
개발된 제어용 소프트웨어들은 「노바 01」환경에서 모두 어셈블리어로 짜여졌다. 그 내용은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기능들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었다.
1.송신자의 번호뿐 아니라 발신자 번호로도 전화를 걸 수 있는 기능.02.우선순위 통화권리(우선권)를 갖는 상위권 통화자(상급자 또는 긴급을요하는 통화자)가 하위권 통화자(하급자 또는 등급이 낮은 통화내용)의 회선을 제어 또는 일방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기능.
3.우선권을 갖는 상위권가 하위권에 의해 불필요하게 호출되는 상황을 차단하기 위한 기능.
4.최우선권을 갖는 상위권통화자가 전국 어디서나 최대 50명까지 동시에호출, 음성회의(컨퍼런스 콜)을 할 수 있는 기능.
5.컨퍼런스콜 도중 특정인 하고만 통화가 필요할 경우 컨퍼런스 콜을 일시적으로 중단했다 재개할 수 있는 기능.
6.단축 다이얼기능
7.피호출자가 1대 이상의 전화를 가졌거나 다른 곳에 있을 경우 피호출자가 있을 가능성이 높은 곳부터 차례로 연결시켜 주는 기능.
사실 요즘 전자식 교환시스템 성능에 비교한다면 이같은 기능은 아무 것도아니었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하드웨어와 기술적 한계 등 여러가지 측면을고려할 때 최첨단이 아닐 수 없었다.「세종1호」의 개발과 제작은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 하드웨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시작됐다.
주요 7가지 기능을 구현하기 위한 소프프트웨어가 자체환경에서 개발됐지만 아이러니컬 하게도 「노바 01」은 교환제어를 위한 시분할 처리기능을 지원하지 못했다.
따라서 데이터를 생성하는 중앙스위치 및 모뎀에 접속된 지방 스위치장치를 시분할 방식에 의해 리얼타임으로 제어해 주는 새로운 하드웨어 사양이요구됐고 「세종1호」는 바로 이같은 목적에 의해 개발됐던 것이다.
「세종1호」는 「노바 01」의 사양과 기능을 그대로 복제한 일종의 호환컴퓨터였다. 처리용량도 12KW(킬로워드)로서 표준 사양의 「노바 01」기종과같았고 명령코드와 주소로 구성되는 인스트럭션 구조도 같았다. 그러나 「세종1호」는 당시 미국 인텔사가 개발해서 화제가 된 1KB짜리 D램을 메모리로사용, 처리속도를 크게 개선시켰고 기능을 모방은 했지만 설계는 완전히 독자적인 것이었다.
「세종1호」는 마침내 2백40회선을 지원하는 중앙스위치 및 지역스위치장치 연결됐고 KIST측은 이 PABX 시스템을 「K1T-CCSS」라고명명했다. 모든개발 과정은 청와대 측과 약속한 73년 3월까지 끝을 맺었다.
청와대 측은 그러나 「K1T-CCSS」가 납품되는 시점에서 시스템의 신뢰성에의문점이 많다는 이유를 들어 KIST측과의 계약파기를 선언해 버렸다. KIST 측은 또 시스템은 납품하되 6천만원의 돈은 지불할 수 없으며 대신 기업을 통해 이 제품을 상품화할 수 있다는 「허가」만을 받아낸 것이다.
그러나 당시 국내업계는 기계식 교환기 생산에만 열을 올렸을 뿐 컴퓨터를이용한 첨단장비인 전자식교환시스템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 와중에 KIST의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개발능력을 높이 산 미국의 GTE社가 「K1-CCSS」의 상품화를 결정하고 나섰다. GTE는 KIST 측에 50만 달러를 제공하면서 「KI-CCSS」의 상용화 개발 프로젝트를 새로 발주했던 것이다. 이 프로젝트에는 高健(현 서울대 교수)·金東圭(현 아주대 교수)·韓永哲(현 삼성전자 상무) 등이 소프트웨어 개발팀으로 참여했다.
이렇게 해서 75년 초에 개발된 것이 「KIST 500」이다. 「세종1호」가 일반에 알려지게 된 것도 사실은 KIST와 GTE의 공동프로젝트로 개발된「KIST 500」의 발표가 계기가 됐다.
GTE는 이 시스템과 「세종1호」 등을 대량 생산하기 위해 77년 2월 삼성그룹과 삼성GTE라는 합작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삼성GTE가 바로 89년 삼성전자에 흡수 합병된 삼성반도체통신이다.
삼성반도체통신은 「KIST 500」을 「GTK 500」 「센티넬500」 등으로 개량하면서 86년 교환기 4사에 의한 국산 전전자교환기 TDX-1개발의 밑거름을 제공했다. 「세종1호」 역시 80년대 중후반 삼성반도체통신이 국내 처음으로독자모델로 개발한 「SSM」시리즈 수퍼 마이크로 컴퓨터의 기술적 토대로 되었음은 물론이다.
한편 「세종1」의 개발 들떠 있던 국내업계는 그로부터 몇 달 뒤인 95년9월 동양전산기술(OCE)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오리콤」이라는 한글배치터미널을 개발, 생산에 나섰다는 소식에 접하게 된다. 「오리콤」은 DEC으로부터 중앙처리장치(CPU)인 「PDP 11_05」, 데이터프로덕츠사로부터드럼프린터 장치, 다큐메이션사로부터 카드판독기 등을 공급받아 조립한 것이었으며 여기에 당시 국내에 가장 많이 보급돼 있던 컨트롤데이터사(CDC)의 배치터미널 「200_UT」기능을 에뮬레이션해 주는 한글 소프트웨어를탑재한 것이었다. 이때 KIST 측에서 全州植(현 서울대 교수)등이 기술지원을 해주었다.
OCE는 76년부터 본격적으로 「오리콤」의 성공과 대량생산에 나서, 본격 공급에 나섰으나 가격경쟁력에서 다른 제품에 뒤져 큰 성공을 거두지못했다.
OCE의 노력은 비록 크게 빛을 보지는 못했지만 외국 부품들을 들여와조립생산 해본 다음 기술이 축적되면 자체 모델을 개발해 보겠다는 국산화 의지의 발로였다는 점에서 지금도 업계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서현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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