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정부 및 공공기관.교육기관.기업들의 컴퓨터 도입은 나날이 증가했다. 과기처 조사에 따르면 69년 말까지 불과 17대였던 국내컴퓨터 도입대수가 71년 36대, 73년 66대에 이어 75년에는 1백29대로 급증하는 등 2년을 주기로 거의 1백%씩 늘어나는 양상을 보였다.
시대별로 살펴보면 60년대 말까지 초창기 컴퓨터도입은 정부 및 공공기관이주도했고 70년대 초반은 금융기관.교육기관이 많았다. 기업은 72년께부터서서히 증가하기 시작했는데 75년의 경우 도입된 전체 39대 가운데 60%가넘는 24대가 기업의 몫으로 나타나고 있다.
70년대 컴퓨터도입의 증가는 금융 및 제조 분야에서 기업의 외형과 업무가팽창함에 따라 전산처리 수요가 급증했고 기술의 발전에 따라 도입비용이 낮아진 데 따른 것이었다.
제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67년-71년)의 성과와 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진입시점에서 정부가 기업 등을 대상으로 컴퓨터도입을 적극 유도한 것도하나의 이유가 됐다.
90년대와 비교하면 1백여대 내외의 숫자는 그야말로 조족지혈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당시로서는 대단한 규모가 아닐 수 없었다. 적어도 70년대 중반까지는 어느 기관 또는 어느 기업이 컴퓨터를 도입한다는 것 자체가 사회적 뉴스가 됐다.
전산실 개통때면 기관과 기업에 관계없이 정부 고위인사가 참석, 테이프를잘랐다.
산업현장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성역화도구로서 컴퓨터는 70년대 경제부흥의최선봉장으로 추앙을 받았다.
컴퓨터를 도입했거나 도입예정인 기관과 기업들은 대통령이나 장관, 또는기업총수가 산업현장을 순시할 때마다 몇년 이내에 몇%의 인력절감.경비절감.생산량 증가와 같은 수치를 내놓는 것이 유행병처럼 번졌다.
컴퓨터에 대한 무지의 소치였겠지만 전산실만 구경한 사람들이 라디오나 TV에 출연해서 만능기계나 지능로보트 쯤으로 컴퓨터를 설명해 대는 통에 당시전문가들이 애를 먹었다는 일화는 지금도 적잖게 구전돼 오고 있다.
한 출판사가 "콤퓨터 국어"니 "콤퓨터 수학"이니 하는 이름의 참고서를 출판해서 큰 돈을 벌었다는 얘기도 이때 등장했다.
실제 70년대 들어 컴퓨터는 만능기계로서 중학교 무시험추첨, 대학 예비고사채점, 서울 부산간 외환은행 온라인뱅킹 등 적잖은 신화를 창조해 냈다.
이와중에서 비록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 미국의 복싱 챔피언 캐시어스 클레이와 로키 마르시아노간 시공을 초월한 헤비급 타이틀매치는 일반인들의 컴퓨터 신드롬을 극에 달하도록 한 사건이었다.
71년 2월 21일 동양텔리비전(TBC)을 통해 방영된 이 경기는 당시까지 역사상단 2명뿐이던 무패의 챔피언끼리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복싱경기 그 자체만으로도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그러나 이 복싱경기는 실제 경기가 아닌 영화였다. 그도 그럴것이 캐시어스클레이(75년 "무하마드 알리"로 개명)는 29전승 가도를 달리던 WBC헤비급현역 챔피언이었고 이미 56년에 49전승의 무패 신화를 남기고 은퇴한 로키마르시아노는 영화가 제작되기 1년여 전에 비행기사고로 사망했던 터였다.
"슈퍼 챔피언(Super Fighter)"이라는 제목의 이 영화는 미국의 한 기획자에의해 과거 경기의 TV중계 필름 등을 합성해서 제작된 것이었다.
그러나 단순하게 경기 필름을 모은 것은 아니었다. 챔피언들의 훅.잽 등몸동작이나 펀치 교환회수를 비롯해 경기 중 버릇.특징 등 경기운영 스타일을분석한 컴퓨터 데이터를 토대로 구성한 시나리오에 의한 필름 편집이었던것이다.
당시 이들 데이터분석에 동원된 컴퓨터는 당시로서 성능이 가장 뛰어나다고평가 받고 있던 미NCR의 "NCR 315"기종이었다.
이 영화는 결국 46세의 할아버지 복서 로키 마르시아노가 26세 혈기왕성한캐시어스 클레이를 13회에 KO시키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컴퓨터로 분석한 데이터의 결과가 영화 스토리를 그렇게 이끌어 간 것이다.
"슈퍼 챔피언"은 영화역사에서 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제작되기 시작한 컴퓨터 합성 또는 컴퓨터 데이터에 의한 시나리오 영화의 모티브가 됐다.
TV 등에서는 19세기 초반에 생존했던 피아노 천재 쇼팽과 금세기 최고 피아니스트로 꼽히는 루빈스타인과의 가상 피아노연주 대결 등이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70년대 중반까지 계속된 이같은 컴퓨터신화는 이른바 컴퓨터 마인드 확산에큰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모든 신화의 속성이 그렇듯 컴퓨터신화 역시, 생성과정보다는 결과만 중시됐고 실패나 악의 측면에 앞서 성공이나 선의 형태로 확대 포장되는 것이 다반사였다.
언론에 비친 컴퓨터의 모습도 본래 기능이나 성질과는 무관한 이를테면,말초신경을 자극하기 위한 가십거리 수준밖에 되지 못했다. 따지고 보면 "슈퍼챔피언"도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같은 가십거리는 당시 실무자들이 정부의 정책결정자들을 설득할수 있는 시청각교재(?)로서 더할 나위없이 훌륭한 것이었다. 당시 정책결정자들이 얼마나 무지했고 관료적이었던가를 보여주는 70년대의 한 일화가 있다.
당시 기업들의 반도체산업 육성 건의가 잇따르자 상공부 담당국장은 실무책임자에게 반도체가 무엇이며 왜 육성해야 되는가를 조사.보고토록 지시했다. 전전긍긍하던 책임자가 어느날 우연히 TV에서 6.25때 동강난 한강철교장면을 보다가 생각해낸 것이 바로 강물이 가르고 있는 두 뭍을 연결해 사람과자동차를 통행시키는 다리 그림이었다.
다리 부분에 교각처럼 여러 가닥의 리드프레임이 뻗어나와 있는 반도체 그림을 그려 넣었다는 것이다. 즉 반도체를 동맥같은 개념으로 설명한 셈이다.
당시 국장이 반도체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여부를 떠나서 우리나라 반도체산업 육성결정이 이같은 배경에서 내려졌다는 점에서 실소를 금할 수 없다고이 책임자는 회고하고 있다.(이광호 전상공부 전자부품과장)정부 관료들의컴퓨터에 대한 이해도 반도체 수준에 못지않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경제개발에 컴퓨터를 적극 이용하고자 했던 박정희대통령은 각료들이나 비서진들이 컴퓨터에 문외한이라는 사실에 늘 불만이었다.
이 때문에 박대통령은 자신이 컴퓨터를 직접 이해하기 위해 틈이 날 때마다당시 컴퓨터활용이 가장 활발했던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전자계산실을찾았다.
이때마다 전산실장 성기수(현 동명정보대 총장)는 박대통령이 만족할 만한컴퓨터 능력들을 시연해 주곤 했는데 당시 KIST에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한번은 성실장이 어거지로 레지스터(Register)를 조작하여 (별로 의미도 없는)컴퓨터 음악을 연주하고 그림을 그려보이기도 했다"고 회고하고 있다(이명재부산대 교수)
한편 사회 전체가 컴퓨터의 신기로 감탄에 감탄을 연발하고 있을 무렵인 73년 10월 이른바 서울 반포AID차관아파트 부정추첨사건이 발생했다. 사람들은신문 사회면에 대서특필된 이 기사를 부패한 정부 관리가 개입한 추문사건쯤으로 생각하고 읽어 내려가다 아연실색하고 만다. 사건 내막에 컴퓨터가깊숙하게 개입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포AID차관아파트는 정부가 서울 강남지역 개발계획에 따라 미 국제개발국(AID) 자금을 들여와 짓고 있던 대규모 아파트단지였던데다 입지여건도 좋아분양 전부터 높은 인기를 얻고 있었다. 당국은 일반인들의 입주신청이 몰리자 최종 입주자선정을 컴퓨터를 통해 추첨해 내기로 하고 그 용역을 과기처산하에 있던 중앙전자계산소(NCC.현 총무처 정부전자계산소)에 맡겼다.
NCC가 이 추첨건을 맡게 된 것은 당시 국내 도입된 컴퓨터 가운데 최대인1백31KB의 용량을 가진 "유니백1106"을 보유하고 있었던데다 정부산하 기관이었다는 점에서 부정이 개입할 소지가 적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사건은다름아닌 NCC소속 프로그래머 정모에 의해 저질러졌다. 정은 수 십명의 입주신청자들로부터 뇌물 청탁을 받고 추첨프로그램 처리과정을 임의로 조작하는방법을 통해 이 가운데 9세대 분을 부정 당첨토록 한 것이다.
NCC의 추첨프로그램은 컴퓨터 기능의 한계때문에 데이터의 처리과정이 콘솔(Console Printer)이라는 감시용 출력장치에만 나타나고 오래 보관할 수있는 디스크장치에는 남을수 없도록 짜여져 있었다. 따라서 이 콘솔장치의출력과정만 조작하면 논리적으로는 완전범죄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시스템상의 허점을 간파한 정은 청탁자들이 당첨될 수 있도록 시스템 처리과정을 변경시킨 25장의 프로그램카드를 별도 작성하고 이를 정상적인 프로그램카드에 끼워넣고 컴퓨터에 입력처리한 다음 최종 프로그램 컴파일 과정에서 다시 25장의 카드를 빼내는 수법을 사용했다. 즉 콘솔장치에 부정한 25장의 카드처리 흔적이 나타나지 않도록 했던 것이다.
완전범죄일 것만 같았던 이 부정추첨사건은 청탁과정에서 정에게 불만을샀던 NCC직원의 검찰투서에 의해 드러났다. 실제 당첨된 9세대 가운데 5세대가NCC직원이었다.
이 사건은 국내에서 최초로 발생한 컴퓨터범죄였던데다 프로그램 개발과정에직접 참여했던 프로그래머가 범인이었다는 점에서 사회 일각에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 줬다. 조작자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많고 다양한 형태의 컴퓨터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경고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반포AID차관아파트 사건은 엄청난 컴퓨터 신드롬에 빠져있던 많은일반인들에게 컴퓨터의 본질에 좀 더 객관적으로 다가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줬다는 점에서 또다른 측면의 평가가 내려지기도 했다. 만능으로만 여겨졌던 컴퓨터가 사실은 "손을 봐줘야 할 곳이 많은" 엄청난 허점투성이 기계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 사건을 통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됐던 것이다.
서현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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