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자금난으로 고전해 왔던 미국 최대 PC업체인 패커드 벨이 일본의NEC와 프랑스 불사로부터 7억달러에 가까운 거액을 긴급 수혈 받음으로써일단 숨통이 틔게 됐다.
지난 7일 이들 3개사가 공동으로 밝힌 바에 따르면 이미 지난해 1억7천만달러를 출자해 패커드 벨의 지분을 20% 소유하고 있는 NEC가 이번에 다시2억8천3백만달러의 현금을 추가로 지원하고 그에 상응하는 주식을 우선주형태로 배정받는 한편 역시 20%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불사는 이른바 현물출자 형식으로 미국 현지법인인 제니스 데이터 시스템스(ZDS)를 패커드벨에 넘겨주는 대신 이 회사로부터 4백달러 상당의 우선주를 배정받기로 했다는 것이다.
경영구도도 현 베니 알라겜 회장체제를 그대로 유지키로 했다.
이렇게 되면 패커드 벨은 현재 40여억달러의 매출에 13억달러의 제니스 매출규모를 합쳐 연간 매출 55억달러가 넘는 업체가 된다. 이는 미국 전체 PC시장의 13%를 차지하는 비중으로 현재 이 시장에서 1위를 지키고 있는 컴팩컴퓨터의 점유율 12.2%를 훨씬 앞지르는 수치다.
일반소매점을 통한 가정용 PC시장에서 확고한 자리를 잡긴 했지만 제한된영역으로 운신의 폭이 좁았던 패커드 벨은 기업및 정부기관과 같은 대형수요처를 대상으로 노트북 PC와 네트워크 서버판매에 위력을 보이고 있는제니스의 인수를 통해 시장을 확대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셈이다. 더구나13억달러 정도 되는 제니스의 연간매출중 절반이상을 해외시장에서 거둬들이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수출비중이 매출의 10%도 안되는 패커드 벨로서는제니스의 해외거점을 이용, 수출에 좀 더 유리한 위치에 설 수도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알라겜 회장은 "지금부터 패커드 벨의 제2의 도약기가 시작됐다"며 강렬한의욕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거래에 대한 시장전문가들의 시각이나 평가는 그리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것 같다.
우선 제니스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 89년만해도 노트북시장의 20%를점유하며 메이저업체의 하나로 군림했던 이 회사는 점유율이 3%미만으로 곤두박질치면서 세력도 급격히 약해져 지난해에는 10억달러 이상의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텔 펜티엄기종의 출하시기를 제대로 맞추지 못한 것과 대형기관에 대한공급물량도 줄어든 것등이 그 이유다. 일례로 가장 큰 수요처의 하나였던 공군과의 7억달러 상당의 데스크톱기종 공급계약도 이미 만료된 상태다.
이에 따라 불사는 1년전부터 제니스의 매각대상을 물색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양사의 합병에 따른 시너지효과를 충분히 거둘 수 있겠느냐는 것이시장전문가들의 우려다.
패커드 벨로서도 이번 자금수혈로 일단 숨을 돌리긴 했지만 올해의 시장상황이 그리 좋지 못하다는 점에서 힘겨운 싸움을 해나가야 할 것이라는 의견이지배적이다.
알라겜 회장은 지난해 패커드 벨이 적잖은 손실을 보았다는 사실은 공식적으로 시인하지는 않았지만 이 회사의 경영이 곤경에 처해 있다는 적신호는그동안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그중 가장 큰 요인은 PC 가격경쟁 격화에 따른 채산성의 악화다.
특히 가정용 PC시장에만 주력해 왔던 패커드 벨로서는 컴팩이나 휴렛 패커드(HP)처럼 기업고객을 대상으로 한 고가기종 판매로 이 부문의 적자를만회할 수익구조를 갖지 못한 취약점이 있다. 급기야 이 회사는 지난해말 인텔에 대한 대금결제를 하지 못해 4억5천3백만달러의 빚을 지게 되었다.
지난 연말 성수기의 판매실적도 목표량에 미치지 못함에 따라 패커드 벨은지난 1월에 자사 새크라멘토공장의 직원 2백50명을 감원하기에 이르렀다.
더구나 올해는 더욱 암울하다. 대부분의 시장전문가들이 내놓은 전망에 따르면 미국 PC시장은 지난해 22% 증가에서 올해는 16%로 성장률이 크게둔화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업체간 경쟁이 더욱 심화될 것이 자명한 상황이고 보면 여전히 이시장에 승부를 걸어야 하는 패커드 벨로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패커드 벨 내부의 경영체제로 NEC의 이번 지분 확대에따른 경영권행사 여부다. 일단은 알라겜 회장의 현체제를 유지하는 조건으로합의를 봤지만 앞으로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하는 시점에서는 NEC의지분이 압도적으로 많아져 경영구도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패커드 벨은 일본업체를 새로운 주인으로 맞아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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