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고선명 텔레비전(HDTV) 개발전략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개발업체를 지원하기 위해 추진하던 와이드TV 보급계획이 역내 국가간 이해가 엇갈리면서 차질을 빚더니 아날로그방식의 개발 계획이 도중에 디지털 방식으로 급선회했다.
유럽 고유의 고선명TV 개발 전략은 표류하고 업계의 불신이 커지면서 일부업체가 독자 전략을 표방하고 나서는 등 혼란이 빚어졌다.
유럽의 이런 난맥상은 개발계획의 졸속성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었다.
80년대초 일본이 고선명TV 개발에서 앞서나가자 기술적 검토를 충분히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지난 86년 성급하게 독자방식의 개발계획을 확정했던 것. 미.일과의 기술경쟁에서 계속 밀리고 있던 유럽으로선 고선명TV 개발에서 마저 밀리면 설 땅이 없어진다는 초조함을 떨쳐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유럽은 당시 고선명TV 기술개발이라는 당위와 이미 보급된 PAL방식 TV의 활용이라는 현실을 접목시켜 최종단계를 HD MAC으로 하되 가로 세로의 비율이 16대 9인 와이드TV 전용의 D2 MAC 방식을 거친다는 전략을 세웠다.
여기서 MAC이라 불리는 방식은 6백25개의 주사선을 사용한다는 점에선 기존의 PAL방식과 같으나 위성을 이용 광범위한 전송대역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으로 80년대 초반 유럽에서 개발된 아날로그 방송방식이다.
따라서 유럽은 주사선이 1천1백25인 일본 소니 시스템과 달리 PAL 주사선 의2배인 1천2백50선의 고선명 시스템을 개발하되 별도의 디코더를 부착할 경우기존 텔레비전으로도 고선명TV 방송을 시청할 수 있게 하려는 의도를 갖고PAL MAC HD MAC으로의 단계적인 발전을 상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전략은 일본의 아날로그 방식인 뮤즈와 큰 차이가 없다는 비판 과함께 과도기를 설정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역내 국가간 이견에 봉착했다. 가전업체인 필립스와 톰슨을 갖고 있는 네덜란드와 프랑스가 고선명TV의 세계 경쟁에서 뒤지지 않으려면 중간 단계를 설정하고 TV기기 등의 빠른 상품화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지지했다.
그러나 영국 등 일부 국가들은 D2 MAC 방식을 도입할 경우 방송 업계가 D2 MAC 방송 설비를 도입한 후 다시 HD MAC 설비를 도입해야 하는 불합리한 사태가 발생한다며 이 방식을 채택하는 데 강력히 반대했다.
이같은 갈등은 유럽 방송업계와 가전업계간 갈등의 표출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EC위원회는 중간 단계로 D2 MAC 방식을 도입하되 방송 업계에 방송 설비 자금을 지원한다는 중재안을 제시, "불안한 타협"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이 불안한 타협도 얼마 안가 미국으로부터 일격을 당하고 맥없이무너졌다. 일본과의 경쟁을 의식한 미국이 아날로그방식 대신 완전 디지털방식의 고선명TV 개발추진을 밝혔던 것.
미국의 디지털방식이 실용화하면 유럽과 일본의 아날로그방식은 한 세대 뒤진 낡은 기술로 전락하고 제품 수출 길도 막힌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결국 EC는 92년 들어 기존의 고선명TV 개발계획을 철회하고 미국과 같은디지털방식 개발 전략으로 수정, 사실상 미국에 백기를 들었다.
유럽의 중도 전략 선회는 당연히 많은 문제를 야기시켰다.
그때까지 유럽형 고선명TV 개발 전략에 따라 D2 MAC용 와이드TV 개발을 끝내고 생산라인까지 갖췄던 필립스.톰슨 등이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EC의 전략 선회로 95년까지 D2 MAC 방식에 의해 프로그램을 제작.송출해 야한다는 제약에서 자유롭게 된 방송국들이 과도적인 방송 체제를 위해 막대 한자금과 시간을 투자하려 하지 않게 됐으며 그 결과 당연히 D2 MAC 제품의 판로가 막힌 것이다. 개발에 소요된 투자비 손실액만도 10억달러를 넘었다.
이는 D2 MAC 방식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자 다음 단계인 HD MAC으로의 발전 경로가 차단됐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유럽은 이제 좋든 싫든 디지털방식의 고선명TV 개발에 매달리지 않을 수없게 됐다.
현재 유럽엔 필립스.톰슨 및 영국의 BBC 등을 중심으로 10여개 연구팀이 구성돼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이중 필립스와 톰슨은 미국의 대연합(G rand Alliance)에까지 가세하고 있어 미국 주도의 디지털방식 고선명TV 규격 이 유럽에서도 채택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 93년 12월 역내 12개 국가의 85개 업체가 독일 본에 모여 결성 한"디지털 비디오 브로드캐스팅 그룹"의 활동이 주목받고 있다.
현재 유럽 전역에서 1백50개의 업체가 참가하고 있을 정도로 규모가 커진 이단체는 유럽에서의 디지털 방송의 성공을 최종 목표로 삼고 영상압축규격 으로 세계 표준화가 되고 있는 MPEG2를 채택하는 등 디지털 방송의 규격 제정작업을 본격 추진하고 있어 그 결과가 유럽의 고선명TV 개발에도 적지 않은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오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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