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폭시원판 품귀 심상찮다

요즘 산업용 PCB업계의 상황은 한마디로 "풍요속의 빈곤"으로 표현할 수 있다. 수요는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는데 핵심 재료인 에폭시 원판이 모자라 생산에 심각한 차질이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까지는 원판업체들의 잇따른 가격 인상으로 인한 채산성 악화가 PCB업 계의 주된 이슈였으나 이제는 가격도 가격이지만 원판을 공급받는 것 자체가 큰 문제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산업용 PCB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는 에폭시원판 품귀사태의 주범은 다름 아닌 글라스패브릭(유리섬유)의 주원료인 얀(yarn). 동박(UCF)、 에폭시레진과 함께 산업용 PCB를 구성하는 핵심재료인 얀이 세계적으로 심한 품귀를 빚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함에 따라 국제 얀 시세는 지난해 야드당 1달러에 서 올초 1달러40센트로 오른데 이어 최근에는 1달러 80센트까지 치솟았다.

이런추세라면 2달러 돌파도 시간문제라고 업계는 관측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수직상승중인 가격이 아니라 공급자체가 달린다는 사실이다.

얀 품귀의 원인은 대략 수요와 공급 측면에서 두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우선 수요측면에서는 지난 몇년간 급증세를 보여온 얀의 수요가 최근들어 한층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얀의 주요 수요처인 글라스패브릭시장이 크게 확대됐다. 컴퓨터 및통신시장의 급부상으로 양면.MLB(다층기판) 등 산업용 PCB수요가 폭증、 결국 글라스패브릭을 사용하는 에폭시원판시장이 그만큼 커진 것이다.

글라스패브릭 이외에 얀의 응용분야가 늘어난 것도 얀 품귀의 또하나의 요인으로 풀이된다.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낚싯대 요트 골프채 수상스키 등 얀을 사용하는 레저용품 시장이 얀 수요의 상당부분을 잠식하고 있다"고 관계자들 은 전한다.

얀의 수요는 이처럼 매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데도 불구、 공급은 제자 리걸음을 하고 있어 품귀로 이어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선진국을 중심으로 "원자재 무기화" 분위기가 가속화돼 코닝(미국), 니토보(일본), 셍고뱅(프랑 스) 등 대형 얀 생산업체들이 그나마도 부족한 공급량을 조절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들리고 있다.

얀-글라스패브릭-에폭시원판으로 이어지는 연쇄적인 품귀로 인해 국내 원판 및 산업용 PCB업계의 사정은 심각한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두산전자 코오롱 한국카본 등 에폭시원판업체들의 공급량은 수요의 80% 안팎을 커버하는 데 그치고 있으며、 이로인해 대덕전자 LG전자 삼성전기 코리아서키트 새한전자 우진전자 남양정밀 등 PCB제조업체들은 원판이 달려 생산에 큰 차질을 빚고있다. PCB업체들은 통상 한달 정도는 재고를 갖고 생산계획을 수립해왔는데 요즘은중견업체들마저도 그날 그날 끼워 맞추는데 급급하고 있다. K사의 한 관계자 는 "당일 들어오는 원판의 양에 따라 생산계획을 잡는 실정이며 일부 수출물량의 경우 선적이 지연되는 등 원판 구득문제로 인한 각종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고 토로한다.

그러나 이는 월 1천㎡ 안팎의 생산규모를 지닌 대다수의 중소 산업용 PCB업 체들에는 "부자 몸사리기" 쯤으로 비춰지고 있다. 원판업계가 적은 물량으로 많은 업체에 혜택(?)을 주기 위해 선별공급에 나서고 있기 때문에 자연히 중소업체들이 상대적인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중소 업체 관계자들은 "이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원판공급 차질로 납기를 못맞춰 도산하는 업체가 속출할 것"으로 우려하며 "업종전환 등 다각적인 대책을 모색해야할 형편"이라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그럼에도 현재로서는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에폭시원판 품귀사태는 쉽사리 풀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의 핵심인 얀 수급이 앞으로도 상당기간 원활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는데다 중견 산업용 PCB업체들의 대단위 설비투자가 예약돼 있어 수요는 지금보다 더욱 늘어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중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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