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컴퓨터업체들은 노트북PC 수출물량을 확보하려면 먼저 일본에 물어봐야 한다. 디스플레이인 LCD, 그 중에서도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486기종에 주로 탑재되는 TFT LCD는 샤프를 비롯 일본업체들이 거의 독점공급하기 때문이다. 비록 일본이 독점하더라도 물량만 충분하면 별 문제가 아니지만 사정은 그렇지가 않다. 일본의 현재 생산능력이 시장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에만 70만개 이상이 부족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자연히 일본으로 부터의 TFT수입을 원활히 하는 것이 국내컴퓨터업계의 "능력"이 되고 있다.
이런 사정은 미국이나 대만의 PC업체도 마찬가지 이다.
그런데 최근 변수가 생겼다. 얼마전 일본에서 개최된 반도체 LCD장비전에서 한국의 삼성전자가 단연 화제의 주인공이 되었다. 국내업체로는 유일하게 참가한 삼성전자는 자체개발모델인 10.4인치 제품을 선보였다.
일본이외의 업체가 독자 완제품을 선보인것도 주목거리였지만 관람객들의 시선은 성능의 우수성에 모아졌다. 화질은 물론 2W대의 저전력을 실현했다는 점에서 일본이나 미국의 관계자들이 경악(?)했다는 소리도 들려온다. 자연히 삼성관이 가장 붐볐고 질문도 제일 많이 받아 화제를 낳았다는 후문이다.
한국과 일본이 최첨단 디스플레이시장에서 격돌한다. 전 세계의 전자시장을 대상으로 TFT LCD부문에서 맞부닥치는 것이다. 물론 현재의 양측 전력을 볼때 아직 대등한 경쟁은 될 수 없다. 압도적 우위에 있는 일본에 대해 한국이 도전장을 내민 모습이다.
한국과 일본은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이미 한차례 힘겨루기를 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 브라운관시장은 일본의 독무대였다. 마쓰시타.소니.히타치.
NEC등 쟁쟁한 멤버들이 왕좌를 지켰다. 그러나 80년대 중반부터 한국의 추격 전이 시작돼 삼성전관을 선두로 LG전자, 대우의 오리온전기 등 디스플레이3 사로 불리는 국내업체들이 무서운 속도로 이 시장을 잠식해 나갔다.
90년대 들어와서는 한국업체들 쪽으로 승부가 기울고 있다. 컬러텔레비전용C PT는 이미 우리나라가 세계최대생산국이 됐고 이제 모니터용 CDT도 선두입성 을 바라보고 있다. 삼성전관은 올해 매출 2조원의 최대디스플레이업체가 됐다. 일부에서는 일본이 경쟁에서 패했다기 보다는 15.17인치 이상 대형CDT 등 고부가가치제품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얻은 반사이익이라고 말하기도한다. 그러나 기업간의 경쟁원리를 볼 때 한국기업들이 일본을 밀어낸 것은 분명한사실이다. 이제 마지막 남은 승부처 TFT LCD와 와이드 브라운관에서까지 한국기업들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기대한 만큼의 결과를 낼 수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일본이 긴장하고 견제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일반 브라운관과 반도체에서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더욱 더 경계하는 것이다.
특히 디스플레이중에서도 최대승부처인 TFT분야에서 한국이 성공할 수 있는요인은 많다. 한국주자들은 삼성전자.LG전자.현대전자 등 이른바 "빅3"로 불리는 거대기업들로 이 사업의 열쇠인 자본.기술.생산력 등 3박자를 모두 갖추고 있다.
우선 초기 설비투자가 3천억원이상 소요되는 장치산업을 감당할 능력이 있다. 삼성전자가 3천억원을 들여 이미 기흥에 공장을 완공했고 LG전자와 현대 전자도 비슷한 규모를 투입, 구미와 이천에 건설중인 공장도 각각 연말과 내년초 본격가동에 들어간다.
업체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오는 2000년까지 설비및 연구개발을 합쳐 1조원 이상을 투자, 생산능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지난해와 올해, 내년까지 대호황이 예상되는 반도체부문의 수익만 가지고도 투자 여력은 충분하다는 평가다.
기업총수들의 의지가 확고한 것도 지나칠 수 없다. TFT3사 모두 이 사업을 최고 경영자가 직접 챙기고 있다. 반도체에 이어 2000년대의 "화수분"으로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일본은 이에 대해 설비증강과 대화면제품개발로 맞서고 있다. 이미 1기투자 를 모두 끝낸 일본업체들은 한국이 시장에 참여하는 시점에 맞춰 설비를 더욱 늘리고 가격을 인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과 국내기관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최대업체인 샤프의 경우 지난해부 터 덴리(천이)공장의 2기투자를 추진, 생산능력을 10인치기준 월18만개에서 지난 3월에 24만대로 늘렸고 9월에는 31만개까지 확대한다. NEC는 가고시마 록아안 공장의 2기투자에 따라 이미 월8만개에서 10만개로 생산능력이 확대 됐고 아키타(추전)공장에서는 월5만개를 생산한다.
도시바는 올해 4.4분기까지 기존 DTI공장의 생산능력을 월 10만개에서 20만 개로 확대하고 이곳에 월 20만개 수준의 제2공장을 건설, 역시 4.4분기중 가동할 계획이다.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당분간 한국의 빅3가 이들을 추월하기는 어렵다.
한국기업의 문제로는 가격과 부품기술의 취약을 들 수 있는데 이같은 요소는 일본기업들에게는 오히려 강점이 되고 있다.
아직은 TFT가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고가격을 유지하고 있지만한국기업이 가세하고 일본의 설비증설이 완료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10인치를 기준으로 했을 때 지난해초 개당 15만엔선을 유지하던 가격이 지난해 가을에는 11만원으로, 다시 올해 1.4분기에는 8만엔까지 떨어졌다. 불과1 년만에 40% 이상 하락한 것이다. 연말이나 내년초에는 5만엔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벌써부터 공급과잉우려가 일고 있고 이것은 곧바로가격인하 압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와 LG전자.현대전자가 본격양산에 들어가는 내년에는 일본이 전략적으로 가격인하를 단행할 가능성도 높다. 한국기업의 추격의지를 꺾기 위해 일본이 사용해 오던 전형적인 방법이 여기서도 재현될 것이라는 예상이 다. 일본은 지금부터 지속적인 가격하락에 대비하고 있고 또 인하폭이 예상 보다 크다하더라도 어차피 한국에 비해 상대적 수율이 당분간은 높아 훨씬 강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컴팩을 비롯한 일부미국업체들이 한국제품이 양산된다면 구매선을 이들로 돌리겠다는 의사를 표명하고 있는 것이 위안이 되긴 하지만 이것은 좀 더 큰폭의 일본의 가격인하를 유도하기 위한 전략일 수도 있어 무조건 믿을 수는없다. 이 때문에 한국의 "빅 3"는 초반부터 일본의 집중견제에 거의 무방비 로 노출되어 있다는 분석이다. 또 수율이 일본수준인 70%이상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원가상승압박도 무시못할 위협요소 로 작용할 전망이다.
핵심부품의 대일의존도가 높은 것은 시급히 풀어야 할 숙제다. TFT가 반도체 부문에 비해 경쟁력열세를 보이는 것은 반도체가 재료의 50%이상을 국내에 서 조달하고 장비의 50%가량을 일본이 아닌 미국 등 제3국에 의존하는 것과달리 TFT는 이들의 80%이상을 일본으로부터 들여오는데서도 원인을 찾을 수있다. 또 주요부품기술의 경우도 일본과 대등한 수준에 도달한 것은 개발단 계의 백 라이트만이 꼽히고 컬러필터.드라이버.LSI.글라스기판 등은 모조리" 절대열세"에 처해 있다.
이런 점에서 일본은 유독 삼성전자를 주목한다. 삼성은 전자 소그룹의 축적 된 노하우를 총동원, LCD부문의 경쟁력확보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은 재료에서 완제품까지 일본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공급한다는 목표아래 TAB필 름은 전기가, 반도체는 전자가,그리고 컬러필터와 글라스는 전관과 코닝이 각각 담당하는 총체적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이같은 계획이 본궤도에 오른다면 단순히 삼성계열사에만 경쟁력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이를 공급받게될지도 모를 LG전자와 현대전자도 만만치 않은 상대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한국기업들이 유리와 컬러필터까지 자체 조달하고 그룹차원에서 총력 지원에 나선다면 일본의 견제구에 쉽게 걸려들지는 않을 것이다. 몰론 이런 상황이 되려면 적어도 98년이후 2000년께 에나 가능하기 때문에 한국은 양산초기시점을 잘 넘겨야 한다는 부담을 갖고있다. 소위 "제2의 반도체신화"를 창조하겠다는 한국기업과 "전철을 밟지 않겠다" 는 일본기업간의 흥미진진한 싸움의 1라운드는 이미 시작됐다.
<이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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