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평그룹, 시그네틱스 인수 배경

그동안 끊임없이 매각설이 나돌았던 반도체조립업체 "한국시그네틱스"가 결국 거평그룹에 의해 인수됐다.

시그네틱스매각이 수면위로 떠오른 것은 2년전부터. 필립스가 더이상 신규투자를 할 의사가 없고 경영진과 근로자간이 불화가 계속된다는 소문과 함께 시그네틱스매각설이 본격적으로 나돌기 시작했다. 이어 필립스 경영진이 지난해 7월 내한、 국내유수업체들과 접촉을 시작하면서 시그네틱스매각은 기정사실화됐다. 그러나 당초 예상보다 1년여 늦게 거평그룹으로 최종 낙찰된 것은 필립스측 이 인수업체의 향후 투자능력과 관리능력들을 세심하게 실사하는 등 조심스럽게 매각을 추진했기 때문이라는 후문.

거평그룹이 이번 시그네틱스를 인수하게된 것은 그동안 건설.유통시장을 중심으로 성장한데서 탈피、 제조업으로의 진출을 강화해보자는 전략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거평그룹은 이번 시그네틱스인수를 계기로 제조업비중을 현5 0%에서 향후 2년내에 80%이상으로 확대한다는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함께 반도체패키징시장전망을 밝게 본 점도 거평의 시그네틱스 인수의 원동력이 됐다. 거평그룹측은 전세계적으로 웨이퍼생산량에 비해 패키징능력 은 크게 부족하며 한국시그네틱스가 축적하고 있는 노하우를 적극 활용하면 수주증대를 통한 매출확대는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지난 66년 해외투자법인 1호로 국내에 진출해 반도체산업인력의 산실로 수많은 전문가들을 양성해온 한국시그네틱스가 매각된 데 대해서는 여러가지 분석이 나오고있다. 현재로서는 반도체패키징부문을 전문화하고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디지털오디오 및 통신용전자시장에 주력하겠다는 필립스측의 의도가 매각의 주요인으로 분석된다. 또한 기존자체보유패키징장비 및 테스트 설비의 교체에 대한 필요성이 크게 제기됐으나 지난 3년간 필립스측으로부터 별다른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첨단패키징시장에서의 경쟁력이 저하된 것도매각을 부추기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따라서 신규설비도입을 위한 과감한 투자와 능력이 걸림돌로 작용해왔고 부동산및 유통시장에서 특유의 저돌성을 보여온 거평그룹의 경영방침이 필립스 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분석이다.

거평그룹은 그동안 시그네틱스물량의 50%이상을 필립스에서 수주해온 상태 에서 향후 3년간 현수준의 60%를 필립스가 제공한다는 계약을 맺는데 성공 、당분간 안정된 물량확보가 가능하게 됐다. 이를 토대로 오는 98년까지 신제품설비에 5백40억원、 기존제품생산능력증설에 35억원、 테스트설비확충에1백63억원 MOB에 1백10억원 등 총8백49억원을 투입、 세계적인 반도체 조립전문업체로 육성해나갈 계획이다.

거평그룹은 이와함꼐 기존 필립스의존형 영업형태에서 탈피、 자체적인 해외 영업망을 조기에 구축하는 등 판매부문도 크게 늘릴 방침이다. 거평은 이에따라 올해 수출 1천9백60억원을 포함해 2천3백1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오는9 8년에는 4천1백90억원의 수출을 포함、 총5천3백억원의 매출을 달성할 계획 이다. 이번 거평의 시그네틱스인수로 국내 반도체조립시장은 전문업체인 아남산업 과 반도체3사중 자사제품은 물론 외부물량까지 패키징하고 있는 현대전자를 포함해 3파전양상을 띠게 됐다.

국내 반도체조립시장은 지난 93년 27억1천5백만달러에서 지난해에는 31억5천 3백만달러로 늘어났고 올해는 41억9천1백만달러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이미 지난 1.4분기중 수출 8억9천1백만달러를 포함해 9억5천만달러의 판매실적을 기록、 호황세를 이어나가고 있다.

반도체조립산업의 기술수준을 대변하는 주문형반도체기술은 초고집적화 및다핀화를 중심으로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가고 있다. 지난해 게이트어레이 70 만개, 핀수 3백핀에서 오는 98년에는 3백50만게이트에 7백50핀제품이 선보일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같은 조립기술추세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서는 패키징장비 및 테스트 장비 의 고급화가 절실히 요청되고 있고 이를 위한 과감한 투자가 관건으로 작용 하고있다. 반도체조립산업은 초창기저임을 바탕으로 성장했으나 이제는 고임 금구조로 이미 전환됐고 기술력도 첨단의 문턱을 넘어섰다. 고임금과 엄청난 기술개발투자 등 2중고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업체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고있고 이에따라 일부에서는 국내조립산업의 공동화현상까지 우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이번 거평그룹의 시그네틱스 인수는 업계의 관심을 끌기에충분하다. 최고경영진의 과감한 투자결정과 투자능력면에서 거평은 일단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이같은 장점들을 최대한 살려 향후 5년간 시그네틱스 의 전문성이 보장될 경우 국내반도체 조립산업의 위상은 한차원 높아지고 이를 통해 반도체소자업체의 국제경쟁력도 높아질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있게 제기되고 있다. 신흥 거평그룹의 시그네틱스인수에 국내반도체업계가 관심을집중시키는 것도 사실 이같은 기대감때문이다. <이경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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