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톨샤임은 정부가 선사로 하여금 컴퓨터를 개발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1970년대말 여러 대학 연구소에 자금을 지원했던 미국방고등기술개발처 DARPA 는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는 대학 연구원들 이 컴퓨터로 정보를 서로 교환하고 새로운 하드웨어에서 기존의 소프트웨어 를 운용할 수 있게 하기를 바랐었다.
그러나 그당시 거의 대부분이 디지털 이퀴프먼트사(DEC)의 제품을 사용했기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했다. DEC는 널리 사용되고 있는 VAX컴퓨터에 운용되는 운용체계를 독점했으며 그 소스 코드를 알려주지 않아 대학 연구원 들이 자유롭게 그것을 사용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각자 필요에 따라 특화시킬수 없게 했다.
그래서 연방 정부는 버클리 대학의 연구 프로젝트에 수백억 달러를 투자, 그당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유닉스 코드를 개정하여 최신 기술에 부응한 기능 을 갖추고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독점 불가능한 시스템 개발을 지원하게 되었다. 이런 공산주의적 발상의 계획은 버클리 대학에서 추진되었고 다름아닌 정부가 지원했다는 사실은 실로 역설적이다. 그러나 더 역설적인 것은 다른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이 프로젝트를 통해 미국 경제가 쇠퇴하지 않고 더 견실해졌다는 사실이다.
스탠퍼드 및 버클리 대학에 대한 DARPA의 지원은 대학 연구소에서 터전 을 잡은 여러 사람들이 기업을 창립하는데까지 영향을 주었다. 선 마이크로 시스템즈사뿐 아니라 또다른 컴퓨터 워크스테이션 업체인 실리콘 그래픽스 그리고 다른 몇개의 회사가 바로 그 부류에 속하며, 1990년 초 이들 모두를합친 자산이 1백억달러를 상회하여 정부가 초기에 투자한 금액의 몇배의 가치를 창출했다.
실리콘 밸리에서는 자유 기업정신을 저해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쉽게 들을 수있다. 그러나 백톨샤임은 반대 의견을 주장하여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그는선사가 설립될 수 있었던 것은 천재적인 경영 재능 때문이 아니라 정부의 지원을 받아 연구 활동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운용체계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 위해 수백만 달러를 투자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새 컴퓨터를 디자인하고 만들어 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이미 정부 가 비용을 부담한 버클리 유닉스를 사용할 수 있었다.
1981년 백톨샤임은 스탠퍼드에서 약 20개의 새로운 제품을 개발했는데 이 소문은 대학가에 빨리 퍼져 나갔다. 모든 사람들이 그 제품을 가지려고 했지만백톨샤임은 공부를 해야했기 때문에 방해 받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는 매우 완벽한 해결책이라고 생각되는 대안을 제시했다. 그는 회로기판의 배치도, 모형 및 필요한 부품 목록을 포함해서 회사 스스로 그 제품을 개발할 수 있는 정보를 주는 대가로 1만달러의 라이선스료를 받을 계획을 했었다. 회사는 제품을 생산하여 유통시키고 그는 로열티를 받으며 대학 친구들은 제품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게 되어 모두가 만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어떤 대형 제조업체도 그런 제품의 라이 선스를 사려하지 않았고 같은 이유로 대학은 그런 기계를 갖지 못해 안달이 었다. 그 디자인에는 독점할 수 있는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다시말해 기본부품을 조립하는 비용 이외에 프리미엄을 붙여 팔 수 있는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8개의 작은 회사가 백톨샤임으로부터 라이선스를 샀지만 그 기계의 핵심인 보드를 만드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6개월이 지나도 아무도 그제품을 제조.판매하는데 성공하지 못했으며 선사가 제품을 상업화시키는 작업이 거기서 끝날 것처럼 보였다.
바로 이때, 1982년 초 백톨샤임은 스탠퍼드대 MBA출신인 비노드 커슬라로부 터 전화 연락을 받았다. 그는 컴퓨터 지원 엔지니어링(CAD)을 위한 특수 워크스테이션을 제조하는 회사의 창립을 도왔고 그 당시 회사를 막 그만 둔 상태였다. 커슬라는 백톨샤임처럼 다양한 기능을 갖춘 동시에 보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백톨샤임이 그에게 라이선스 를 제의하자 그는 "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갖고 싶은 것이지 황금알에는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처음에 백톨샤임은 회사를 같이 창립하자는 커슬라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는박사과정을 마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커슬라는 모험자본가로부터 자본을 끌어들여 백톨샤임이 원하는대로 빠른시일 안에 증가하는 수요만큼의 선 기계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그를 설득했다. 그들은 백톨샤임의 스탠퍼드 대학 연구실에서 기본계획을 짠 다음 맥도널드 햄버거 가게에서 제조활동을 감독 하도록 커슬라의 친구이자 룸 메이트이며 스탠퍼대드 NBA 80학번인 스콧 맥 닐리를 끌어 들였다.
그당시 시판되었던 워크스테이션은 주로 컴퓨터지원 디자인을 했는데 가격이 2만달러에서 20만달러 사이였기 때문에 회사측에서는 모든 엔지니어들 앞에각각 워크스테이션 한대를 배당하기에는 큰 부담이 되었다. 그들은 바로 그 점을 노렸다.
그들의 첫째 경쟁상대는 동부지역에 위치한 아폴로라는 회사였는데, 그 회사 는 다른 업체처럼 독점 부품으로 제조된 워크스테이션을 2만5천달러에 판매 하고 있었다. 선사의 창립자들은 그들의 경쟁업체보다 50~70% 저렴한 가격 으로 유사한 제품을 제조하여 소매가를 1만달러에서 2만달러 범위로 끌어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들의 제안은 사람들을 압도하여 엔지니어 한명당 기계 한대의 배치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도록 했다. 커슬라가 예측한 대로 창립 3총사들은 설립자금을 쉽게 확보할 수 있었다.
국제 많이 본 뉴스
-
1
공중화장실 휴지에 '이 자국'있다면...“절대 사용하지 마세요”
-
2
필리핀, 두테르테 대통령 체포…ICC 체포영장 집행
-
3
“인도서 또”… 女 관광객 집단 성폭행, 동행한 남성은 익사
-
4
“초상화와 다르다”던 모차르트, 두개골로 복원한 얼굴은
-
5
“하늘을 나는 선박 곧 나온다”…씨글라이더, 1차 테스트 완료 [숏폼]
-
6
중국 동물원의 '뚱보 흑표범' 논란? [숏폼]
-
7
가스관 통해 우크라 급습하는 러 특수부대 [숏폼]
-
8
“체중에 짓눌려 온몸에 멍이” … 튀르키예 정부도 경고한 '먹방'
-
9
'Bye-Bye' 한마디 남기고....반려견 버린 비정한 주인 [숏폼]
-
10
영화 같은 탈옥... 인도네시아 교도소서 50여 명 넘게 도주
브랜드 뉴스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