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베일벗는 북한 정보산업 (4) ;체신사업

북한은 체신에 대한 정의를 통신(전기.전화.우편)을 접수, 전달하는 사업이 라고 내리고 있다. 다시말해 사회주의 체신은 당 및 국가경제지도 기관들의 지도와 지휘를 보장하는 수단으로 사상.기술.문화 등의 3대혁명을 수행하는 대중교양 수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체신의 기능에 관해서는 "자본주의 아래의 체신은 지배계급인 자본가계급의 수중에서 인민대중에 대한 통치 수단으로, 인민대중의 혁명의식을 마비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된다"고 주장하면서 "사회주의 체신"은 "당 및 국가경 제지도기관들의 지도와 지휘를 보장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사상.기술.문화 등3대 혁명을 수행하는 유력한 대중교양수단(체신절 10주년기념 보고회, 82.6.

27)이라고설명하고 있다.

북한은 인민들의 통신 및 방송수요를 원만히 보장하기 위해 전신.전화.우편.

방송등 여러가지 통신망을 설치, 운영하고 있다.

북한의 통신이란 일반적으로 신문.방송.잡지 등 각종 보도매체 및 이를 통해 수집된 정보나 사실의 전파를 의미하기 때문에 우리가 통신을 사회간접자본 으로 분류하는 개념과는 기본부터 다르다.

따라서 체신사업은 전기통신(유.무선 전신, 전화), 우편통신(편지, 소포, 송금 방송(유.무선, 라디오, TV)등으로 분류되며 체신부를 비롯해 체신관리 국과 체신소, 전신전화국, 방송국 등에 의해 업무가 추진된다.

북한의 체신업무는 46년 2월에 조직된 북조선 임시 인민위원회 산하에 체신 국이 발족되면서 시작됐다.

48년 9월 9일 정권수립과 동시에 체신국이 체신부로 승격돼 발족되었고 63년 에는 체신업무에 대한 지휘제도와 집중화를 위해 모든 체신기구를 통합시켜 단일 운영체계를 갖게 되면서 각종 우편물 및 출판 배포 업무까지 관장하게 됐다. 67년에 체신성에는 1명의 상(장관급), 3명의 부상(차관급)을 두었으며 9개국 5개처 1개부 1개실로 확대 개편됐고, 산하에 9개도와 2개 직할시에 각각 체 신처를 두는 한편 3개의 체신청 직속공장과 5개의 방송국, 중앙우편국과 중앙전신전화국 송금감시국 등 4개의 국을 두었다.

각도 단위의 체신처에 각각 1개씩의 전신전화국과 우체국이 있으며 각 시.

구.군에는체신소 그리고 각 리와 노동자 구간에는 체신분소가 편성돼 있다.

72년신헌법이 채택됨에 따라 내각이 정무원으로 개편되면서 행정통제기관이 중앙인민위원회 산하에 철도성과 해운 및 육운성을 통합해 교통체신위로 단일화시키면서 체신성도 체신부로 바뀌었다.

체신부의 관장업무를 보면 *체신정책의 수립과 집행지휘 감독시설 *각종 우편물과 배포업무 관장 *전신전화 시설의 계획과 설비관리 무선전파의통제와 감시감독 *체신요원 양성과 확보에 관한 계획실시 및 지휘감독 *체 신분야에서 소요되는 일체의 자재설비에 관한 계획과 분배 전시체제하에서의 체신업무 관장 *성산하 전체기관의 영리 업무에 관한 계획과 분배 *체 신분야에 대한 총괄적인 업무실적보고와 통계작성 및 유지 등이다.

군단위의 체신소 임무와 그 편성을 보면 군내의 전신전화, 우편, 유선 방송 의 증폭, 중계 등의 업무와 각 리 단위의 체신분소를 지휘 감독하는 것으로알려졌다. 특히 북한 통신분야의 교육역사를 살펴보면 58년 까지는 전후 복구와 사회주의적 소유양식 개조를 위해 많은 유학생들을 소련과 공산권 국가에 유학을 보내 전적인 체신부문의 기술을 습득하도록 했다.

북한은 첨단 통신분야의 기술인력 양성을 위해 84년 이후 부터 단과대학을 비롯해 공장대학, 고등전문대학을 신설했다. 그중 전자자동화 대학을 함흥.

청진.해주에세웠다. 이는 당시 80년대 10대 전망 목표달성등의 과제를 놓고장기적 기술인력 확보문제에 시간을 돌린 결과다.

북한의 통신인력 양성은 크게 학교와 연구소로 구분 할 수 있다.

평양공과대학(통신기술학부), 김책공과대학, 함흥경공업대학, 회천체신대학 유선통신학부 무선통신학부, 전자공학부) 및 각 지역의 전자자동화 대학에 서 현재 주요 통신분야 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연구소는 체신부 산하의 약전연구소(LVI:Low Voltage Institute)가 있다.

84년 이후 첨단통신분야에 투입될 인력의 양성을 위해 단과대학을 비롯해 다수의 공장.대학.고등전문대학을 신설해 왔다.

UNDP의 보고서에 따르면 약전연구소는 전화국간의 접속케이블에 사용할 수있는 저용량의 PCM을 개발할 수 있는 수준의 기술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기술수준 향상책으로 외국의 사회주의 국가들과 과학기술 교류를 꾸준히 추진해 왔다. 주로 소련 동독 등인데 그중에서 동독과의 과학기술교류 는 북한의 과학기술발전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북한 통신의 발전과정을 보면 *체신사업의 개조 단계(46~50년) 전후복구단계 53 60년 *정책단계(60년대) *근대화.국제화 시도단계(70~80년대) 현대화단계 등 5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체신사업은 46년 2월 체신국을 창설하고 산하에 각 도 단위별로 체신국을 설치해 총 4백5개소의 우편국과 8개소의 통신공무국, 8개소의 중기국을 개설하면서 근대적 의미의 통신시설을 갖추게 됐다.

직속기관으로는 평양.청진.원산 등에 3개 철도우편국과 약간의 방송국이 설치됐다. 46년 평양-원산, 평양-함흥간에 전화가 개설된 것을 시작으로 전신.

전화통신망에 대한 정비가 본격화 되기도 했다.

전후복구단계인 53년 부터 60년 까지는 전쟁중에 파괴된 통신시설을 복구하는데 주력한 시기로서 54년에 평양과 각 도사이 시.도간의 전신전화망이 거의 복구됐다. 57년에는 평양에 현대식 자동전화국과 신의주에 자동전화교환 기를 설치했고 시외전화에 고주파를 이용해 다중화 장치등이 도입되었다.

60년대들어서는 정책단계로 볼수 있다. 북한은 이 기간에 주민의 통신수요를 충족시키고 통신의 질을 개선하는데 정책의 초점을 맞추었다.

61년 북한은 시외전화 자동화 비율이 21.5%, 전신전화회선의 다중화 비율이 33.5%라고 발표했다.

70년대 이후부터는 증가되는 통신수요의 해소와 방송출력의 강화, TV화 등에주력하는 한편 평양과 각 도사이에 초단파 중기통신에 대한 다중화를 추진해 주요 기업소들을 중앙과 직통으로 연결시키고 군체신소들과 주요기관 내지는 기업소들의 구내통화를 자동화 했다.

8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는 현대화 단계로 88년 3월에 북한 노동당은 중앙 위원 제6기 13차 본회의에서 제3차 7개년계획(86~93)의 일환으로 낙후된 통신시설의 현대화를 내세우고 93년도 까지는 전화회선수를 2백만 회선으로 늘리고 장거리 통신망을 대폭 확충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것은 북한이 광케이블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 이 부문의 투자계획을 밝힌 점이다. 중도에 계획자체가 무산되고 말았지만 북한 은 컴퓨터 기술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기술과 광전자 공학에 관한 기술을 ITU.UNDP등과 합작해 최초의 광전송시스템을 평양-함흥간에 부설하는 시범 광 케이블 부설계획과 기술인력 훈련계획을 수립했다.

이 광케이블 개설계획은 결국 실행에 옮겨지지는 못했다. 첨단통신기술의 중요성을 인식, 기술도입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했다는 점에서 북한 통신정책에 커다란 변화가 생기고 있다고 할 수 있다.

80년대 이후 북한은 대외적인 고립의 심화, 군사분야인 중공업.화학 등의 부문에 과다한 투자로 인해 주민의 생활고와 심각한 경제난에 직면했다.

이에따라 북한은 부분적으로나마 개방을 실시하기 시작했으며 통신분야의 발전에 각별히 정책적 배려를 통해 상당한 투자와 노력을 뒤늦게 추진했으나 통신분야의 기반이 워낙 취약해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구근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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