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전자산업 경쟁력을 높이자(43)

세계적인 기업들이 경쟁하고 있는 컴퓨터산업분야에서 최근들어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기업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주저하지 않고 미국 의 "컴팩 컴퓨터사"를 꼽을 것이다.

정보통신산업 가운데 가장 발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PC시장에서 올해 선두의 자리를 차지한 컴팩은 강력한 기술력과 뛰어난 영업전략으로 실질적으로 세계 하이테크산업을 이끌어 가는 선두주자 가운데 하나다.

무엇보다도 세계 PC산업을 일구어낸 "원조"이자 PC시장의 양대 산맥으로 자리잡아온 미국 IBM과 애플컴퓨터를 누르고 올해 당당히 세계 1위의 왕좌를 차지했다는 사실이 컴팩에 더더욱 깊은 관심을 갖게 한다.

성공한 기업의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히는 컴팩의 이름 뒤에는 명성에 걸맞는 나름대로의 비법이 숨겨져 있다. 그것은 오랜 세월의 연구성과로 일구어낸 든든한 기술력일 수도 있고 시장흐름을 주도하는 독특한 마케팅전략이기 도 하다.

창립 12년만에 세계 PC시장의 정상을 차지한 컴팩컴퓨터사는 특히 참신한 아이디어와 시장의 흐름을 읽어내는 경영기법이 오늘의 밑거름이 됐다.

"남들 보다 한발 앞서 생각해내는 능력". 이것이 바로 창립시부터 컴팩을 이끌어온 원동력이었다.

1982년, 미국 반도체업체인 텍사스인스트루먼츠(TI)사의 세명의 엔지니어가 자신들의 사업을 해보겠다는 청운의 꿈을 안고 회사를 뛰쳐나와 게이트웨이테크놀로지즈사를 설립한다. 그들이 바로 로드 캐니언, 짐 무토, 빌 해리스 였으며 그들의 꿈을 담은 게이트웨이 테크놀로지스가 오늘날 PC시장을 정복 한 컴팩컴퓨터의 전신이다.

81년 발표된 IBM PC가 급증하면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던 당시 컴팩은 "호 환PC"의 필요성을 남들보다 한발 앞서 생각해냈다. 그때까지 IBM이외에도 PC를 만드는 업체들은 많았지만 서로 다른 구조로 컴퓨터를 만들어 팔았기 때문에 "호환 기종"의 개념이 등장하기 이전이었다.

그러나 컴팩은 IBM과 같은 기능을 가지고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PC를 만든다는 아이디어에 착안했다. 물론 캐니언, 무토, 해리스 등 세사람 이 아무리 원대한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지만 처음부터 IBM에 직접적으로 맞서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그들은 "휴대용 IBM호환 PC"에서 기회를 찾아보기로 했다.

휴스턴에서 열리는 PC쇼에 참가해 IBM PC를 면밀히 검토해보던중 그들은 전시회장 근처의 식당에서 냅킨에 그들이 구상하고 있는 휴대용 컴퓨터를 그려보았다. 그들이 식당 한구석에서 냅킨에 휴대용 PC를 스케치하던 일은 PC시 장에 전해내려오는 유명한 일화로 컴팩은 나중에 이것을 기업광고에 활용하기도 했다.

당시 IBM PC의 성공으로 PC산업은 유망한 분야로 주목을 받았고 모험자본을 손쉽게 끌어들일 수 있었다. 컴팩을 설립한 세사람은 초기 사업자금으로 1백 50만달러의 자금을 모았고 곧이어 "하이테크 업계의 대부"로 알려진 모험 자본가인 벤 로젠의 지원을 약속 받았다. 벤 로젠은 로터스 디벨럽먼트사나 볼 랜드 인터내셔널사등 실력있는 젊은 기업가들의 사업에 과감하게 투자하는 인물 이었다.

사업의 방향을 잡은 컴팩이 시작한 일은 아이디어를 지탱해낼 수 있는 기술 을 갖추는 것이었다. 하이테크 산업에서 입지를 다지기 위해서는 남들에게뒤지지 않는 기술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한 요건이었다.

컴팩은 설립 당시 어렵게 모금한 자금의 대부분을 IBM이 IBM PC에 사용한 바이오스 BIOS 기본 입.출력시스템)에 대한 분해공학에 사용했다. IBM은 바이 오스에 대한 특허를 가지고 있었으며 어느 누구에게도 라이선스를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그것을 개발해내는 것이 IBM 호환PC를 만드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IBM 바이오스의 규격을 본적이 없는 프로그래머들로 팀을 이뤄 당시 가장 폭넓게 사용됐던 "워드스타"나 "비지캘크" 등 30종의 응용 프로그램을 취합, 각 프로그램에서 PC하드웨어로 보내지는 신호와 되돌려 받아야 할 응답을 분석했다. 노력끝에 컴팩은 모든 작동을 올바르게 수행해내는 소프트웨어를 작성할 수있었고 호환 PC업체로 등장했다.

1983년 PC를 판매한 첫해에 컴팩은 1억1천1백만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역사상 사업 첫해에 그보다 많은 매출을 기록한 업체는 없었다.

컴팩은 곧이어 원래의 사업구상을 되살려 휴대용 PC로 제품라인을 확장해가기 시작했다. 캐니언은 경영의 스타로 탄생했으며 컴팩은 오래지 않아 최상 의 품질과 최상의 디자인을 갖춘 기업이라는 명성을 얻으며 PC시장에서 발판 을 굳혔다.

다른 경쟁자들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초고속 성장을 이룬 컴팩은 3년만에 "포천"지가 선정하는 5백대 기업에 진입하게 됐다.

컴팩이 내세웠던 "호환PC"의 개념은 PC시장의 보통명사로 자리잡았고 컴팩은 IBM호환 PC군단"을 이끄는 선봉으로 IBM에 맞서는 위치로까지 껑충 뛰어올랐다. 지칠줄 모르고 고속성장의 "아우토반"을 달리던 컴팩에게 급정지 신호가 들어온 것은 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였다. 급성장에 제동을 거는 걸림돌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것은 델컴퓨터나 게이트웨어 2000, 팩커드 벨등 신생 PC업 체들이 주도했던 PC시장에 극심한 가격경쟁의 장벽이었다.

IBM에 뒤를 잇는 PC업체로서 컴팩이 가진 자존심은 처음에는 신생업체들이 주도하는 가격 경쟁에 뛰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컴팩은 나름대로 브랜드 이미지를 굳건히 하고 있었고 기술력을 가진 기업으로서의 신뢰도를 내세워 고가의 "프리미엄 정책"으로 경쟁호환업체에 맞선다는 전략이었다.

PC가 차츰 고부가가치를 가진 기술집약적인 산업에서 벗어나 일상용품화 돼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적극적인 가격정책으로 추격하는 경쟁업체들의 추격을 받으며 매출성장이 둔화됐던 컴팩은 91년,창업이래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하는 경영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위기에서 벗어나는 몸짓은 누구보다도 민첩했다. PC시장에서 선두그룹을 형성하며 컴팩과 같이 가격면에서 브랜드이미지를 내세워 고가의 프리미엄 정책을 고수해왔던 IBM.애플컴퓨터등이 추락하는 이익 곡선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때 컴팩은 해결책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컴팩의 창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경영에 참여한 벤 로젠회장은 즉각적으로 창업자인 로드 캐니언사장을 해고하는 결단을 내렸다. 컴팩의 고속성장을 사실상 전면에서 주도했던 캐니언사장을 한해 적자를 기록했다고 몰아내는 것이 업계의 충격을 안겨주었지만 벤 로젠회장의 판단은 정확했다. 과거의영광을 이뤄낸 캐니언은 결코 컴팩의 과거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컴팩에게 필요한 것은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는 PC시장의 흐름을 맞출 수 있는 혁신적인 사고와 전혀 새로운 정책이었다.

캐니언의 뒤를 이어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에카드 파이퍼사장은 벤 로젠 회장이 요구하는 것들을 빈틈없이 수행해내며 컴팩을 거인으로 성장 시켰다.

파이퍼 사장이 처음 기획한 사업은 델이나 AST등 저가전략으로 밀고 들어오는 경쟁업체들을 오히려 선도하는 획기적인 가격인하정책이었다. 컴팩은 92 년 6월 저가형 PC "프로리니어"를 발표하며 PC시장의 가격인하 흐름을 선도해나가기 시작했다.

PC가격을 1천달러로 끌어내린 "프로리니어"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컴팩은 어려웠던 경영상의 문제를 말끔하게 해소시켰다. 컴팩에 이어 경쟁업체들이 잇따라 가격인하를 발표하고 뒤를 바싹 쫓게될 즈음이면 컴팩은 다시 대폭적인 가격인하와 뛰어난 성능의 신제품을 내놓으며 성큼 한걸음을 앞서나가고 있다. 지난해 11월 발표한 가정용 PC "프리자리오" 또한 대히트를 기록하며 올해미국 PC시장의 "가정용 PC 열풍"을 이끌어냈다.

컴팩에게 있어 1994년은 그 어느해 보다도 소중하게 기억될 것이다. 컴팩이 그토록 바라던 "세계 1위"의 왕관을 획득한 해로 기록될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 1.4분기와 2.4분기 연속 IBM과 애플을 앞질러 세계 PC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했던 컴팩은 9월까지의 3.4분기에서도 1위를 놓치지 않았다. 계속해서 매출이 늘고 있어 올해 전체 실적에서도 PC시장 1위로 부상할 전망이다.

세계 PC시장의 최강자로 부상한 컴팩은 숨돌릴 틈도 없이 선두를 지켜가기 위한 발걸음에 채찍을 가하고 있다.

최근 컴팩은 향후 PC시장은 컴퓨터 기술과 "엔터테인먼트"의 기능이 합쳐진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판단하고 가정용기기 시장에 진출할 계획을 발표 했다. PC시장에서 다져놓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시장규모가 엄청난 가전 시장 을 공략하겠다는 야심이다. 컴팩은 정보기기로서의 PC기능과 함께 스테레오 .전화 및 텔레비전의 기능을 한데 결합해 일반 대중들이 요구하는 다기능 제품개발에 주력할 것으로 알려졌다.

컴팩사의 벤 로젠회장은 "오늘 우리가 이뤄놓은 결과에 만족하고 안주하는 것은 곧 내일의 패배를 의미한다"고 말해 새로운 시장개척의 의지를 강조했다. <이지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