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국가연합)의 전자부품산업이 질.양 양면에서 일본의 최대 라이벌로 성장하고 있다. 이들의 급부상은 일본계열 업체들의 기술.생 산이전을 토대로 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급신장하는 현지업체도 등장하고 있다. 또 이지역의 각국 정부들도 부품산업의 유치. 육성에 적극적이다.
그러나 가격경쟁의 격화로 현지진출업체들이 도산할 우려도 있다. 일본 닛케이 일경 비즈니스 최근호에 실린 내용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말레이시아 최대의 샤람공업단지에 들어서면 대부분의 건물에서 "Panas-oni c(파나소닉)"이란 간판을 보게 된다. "마쓰시타(송하)촌"이라 불리는 이름에 걸맞는 이 공업단지는 마쓰시타전기산업의 세계 최대의 생산거점이다.
이곳은 에어컨과 TV공장을 중심으로 상품개발, 설계, 금형가공, 부품양산, 최종조립까지 일관생산체제를 갖추고 있다. 기술적으로도 일본을 능가한다.
말레이시아에는 이처럼 일본계 업체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조립공장이 집중 되어 있다. 때문에 전자부품업체들은 기본적으로 이곳에 관심을 쏟을 수밖에없다. 종래 일본의 부품업체들은 아세안중에서도 마쓰시타 등의 조립공장이 몰려있는 말레이시아나 태국, 싱가포르에 생산거점을 두었다.
그러나 최근들어서는 임금이 낮은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에 새로운 생산거점 을 확보하려는 부품업체들이 많다. 특히 외국자본도입이 늦은 인도네시아에 서는 대규모 부품공장이 설립되기 시작했다.
일례로 대형 콘덴서업체인 일본케미컨사의 자회사 인도네시아 케미컨은 최근동자카르타공업단지내에 있는 콘덴서공장의 라인확장으로 분주하다. 현재 5천만개인 월산규모를 2억개로 늘리기 위한 공사다. 현재 생산제품의 20%는 일본으로 역수출되며 나머지 80%는 일단 싱가포르로 보내진 뒤 그곳에서 아시아 전역의 가전조립공장 등으로 재분배되고 있다.
일본케미컨은 92년 40%였던 해외생산비율을 내년에 60%로 높이기 위해 생산체제의 해외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같은 공업단지에 있는 오므론의 공장에서는 8백명이 넘는 젊은 여성들이 릴레이나 커넥터를 조립하고 있다.
오므론의 인도네시아 공장은 동사 제어기기총괄사업부의 새 생산거점으로 지난해 4월부터 가동을 개시했다.
오므론은 아세안지역에서 제품별 분할생산을 개시했다. 에어컨의 제어 등에사용되는 고부가상품 PCB파워릴레이는 말레이시아에서 집중생산하고 범용제품은 인도네시아에서 만든다. 말레이시아 공장의 중고 생산설비를 인도네시아로 이전했다.
오므론은 또 공정이 단순한 스위치의 생산도 올해 말레이시아에서 인도네시아로 전면 이관했다. 생산이전에 따른 인도네시아인 기술자의 연수도 말레이시아에서 하고 있다.
아세안에서 부품공장이 증강되는 것과 병행, 이곳에서 생산된 제품에 대한 평가도 차츰 좋아지고 있다.
"아세안에서 조달하는 부품의 품질이 날로 향상되고 있다"고 소니의 아시아 지역 담당조직 소니 인터내셔널 싱가포르(SONIS)의 한 관계자는 밝혔다. 가령 TV브라운관의 프레임은 용접 등 몇개의 공정을 결합한 특수가공이 필요한 데 3년전까지만 해도 일본에서밖에 만들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세안지 역내의 협력공장에서 가공할 수 있다. 프레스가공부품도 마찬가지다. 3년전 에는 20미크론의 정밀도가 한계였지만 현재는 50미크론 수준의 정밀가공부품 도 조달할 수 있다.
소니는 SONIS를 통해 아세안에서의 부품조달을 시스템화하고 있다. SONIS 산하에는 싱가포르의 정밀부품공장이나 브라운관공장, 태국의 반도체공장, 말레이시아의 TV용 부품공장 등 14개나 되는 제조회사가 있으며 협력업체로 기술지도를 통해 육성한 현지기업 등이 있다. 이들을 통해 부품을 일괄적으로조달 아시아지역의 조립공장에 보내고 있다.
아세안에서는 일본계 부품업체들의 대거 진출과 함께 일본으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아 급성장하는 현지부품업체도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업체로 싱가포르의 금속프레스가공업체인 세키선사가 있다.
이 회사는 아세안에 제조거점을 둔 미모토롤러나 일아이와 등 미.일의 전자 업체들에 금속프레스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싱가포르에 본사공장이 있으며말레이시아의 조호르와 페낭에도 생산거점을 두고 있다. 직원수는 총 5백명 정도이며 9월에는 싱가포르에서 새 공장을 가동시켰다.
이 회사의 강점은 금형의 설계, 제작에서 양산가공까지 일관처리한다는 점이다. 일례로 모토롤러의 무선호출기개발에서는 설계단계부터 참여, 양산까지 담당하고 있다.
이같은 현지업체의 부상에는 싱가포르 정부의 적극적인 육성책도 한몫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경우 국토가 협소, 공장용지에 한계성이 있다. 때문에 고부가가 치제품을 통한 기술입국 이외에는 사실상 생존할 길이 없다. EDB(싱가포르 경제개발청)의 림칭톤 기업개발국부국장은 이와 관련, "제조업이 국력의 기반이다. 이것이 쇠퇴하면 서비스산업도 동시에 쇠퇴한다"고 단언한다.
이를 배경으로 싱가포르는 특히 플라스틱성형, 주형, 금형가공, 금속프레스 등의 저변을 지탱하는 부품가공기술의 육성에 비중을 두고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이의 일환으로 약 5백개에 달하는 현지기업들에게 인력교육훈련 등을지원하고 있다. 세키선사 등 부품업체들은 EDB로부터 지원을 받아 해외연수 등을 추진하고 있다.
아세안에서 정부차원의 지원은 싱가포르에 국한되지 않는다. 싱가포르 이외의 국가들도 "산업의 지원육성"을 기치로 내걸고 있다.
이의 일환으로 각국 정부들은 최근 2, 3년동안 각종 투자우대책을 마련, 선진국 부품업체들 자국에 유치하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일본전자기계공업회(EIAJ)의 통계에 따르면 일본의 경우 전자업체들의 지역 별 생산거점은 아시아가 60%로 가장 많다. 분야별로는 가전제품 등 조립공 장이 55.4%이고 전자부품공장은 67.2%나 된다.
그러나 일본부품업체들의 아세안진출에 따른 문제도 적지 않다. 아세안으로의 기술이전이 진행되면 국내공장은 고도화가 불가피하다." 오므론의 한 관계자는 아세안진출에 따른 문제점을 이같이 지적한다.
오므론의 경우 지금까지 시가현 쿠사쓰사업소내에 "릴레이조립", 커넥터조립 "금형.부품가공"의 3개 양산거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지난 10월 이 3개공장을 집약, "생산센터"로 명칭을 변경했다. 이 생산센터에서는 범용부품 의 양산은 하지 않고 항상 한발 앞선 기술을 개발, 양산공장으로 기술을 이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처럼 국내공장을 개발센터화 하려는 움직임은 부품업체들 사이에서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AV기기용 스위치의 대형업체 신명전기의 경우는 내년에 국내에서의 양산을 중단하는 대신 중국과 인도네시아 공장에 양산을 모두 이관할 계획이다. 후 쿠시마공장은 상품.제조기술의 개발에 주력할 방침이다.
아세안에 진출한 일본계 부품업체들에는 이같은 국내적인 문제와 함께 해외 생산 자체에 대한 불안도 있다.
이와 관련, 한 관계자는 "아시아에서의 지나친 가격경쟁이 파행을 초래하고 있다"며 아세안의 부품산업을 우려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같은 가격경쟁이 "아시아가격"으로 지칭되고 있는데 아시아에서 부품을 조달하면 가격이 20~ 30% 낮다.
부품업체들이 저가로 부품을 판매할 수밖에 없는 것은 세계시장에서 가격경 쟁을 벌이고 있는 세트업체들이 강력히 가격인하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여기다 현지업체들간의 경쟁도 가중되고 있다.
이 때문에 아세안에 진출한 일본 부품업체들은 연구.개발경비의 부담을 본사 에 떠넘기고 사실상 체력전을 벌이고 있다. 이같은 파행에 대해 한 부품업체 의 간부는 "이런 모순이 해결되지 않으면 일본본사뿐 아니라 해외공장도 공 멸하기 쉽다"고 경고한다.
이렇게 보면 세계 부품공급기지로서의 입지를 굳히고는 있지만 아세안 국가 들도 그 기반은 취약한 셈이다. 또 일본기업들의 과도한 가격경쟁 결과, 사실 아세안에 기반을 둔 현지기업들도 일거에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 아세안 부품산업의 미래가 결코 밝지만은 않다. <신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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